인간은 어째서: 공황장애

타인의 긁어부스럼을 모아, 자신을 채우는 겁니까?

by 호연

처음엔 공황장애인 줄 몰랐다.

마치 저항 없이 물속에 잠겨 물을 먹고

온몸에 수분이 가득 차 몸이 무거워진 듯하고,

숨구멍은 모조리 막혀 숨을 쉴 수 없었다.


가장 처음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건

다름 아닌 집이었다.

집은 편해야 하는 곳이라 알고 있다.


그렇게 배워왔고, 줄곧 ‘집’이라는 것의 정의는

/다른 곳에서 불편했어도

충분히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곳/.

ー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내가 잘못하여 훈육 과정에서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을 때,

/

내가 잘못하지 않고 떳떳한 상황에서

아버지가 나를 부르셨을 때,


어린 마음에 그저, ‘혼날까 봐’

불안한 마음에 숨이 막혔다기보다,


늘 가파른 숨을 쉬게 되는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했던 나약한 인간이었다.


그래서 좋은 의도로, 칭찬을 해주려

나를 부르셨을 때에도 두려움을 느꼈고,


집 밖에서 아버지를 마주쳤을 때

나는 그때마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진정 아버지가 내게

악을 쓰며 손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훈육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내 잘못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저 무서워했던 것 같다.


가장 처음 숨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건

집이 맞지만, 그건 진정 공황이라 할 수 없을 일을

훗날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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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고등학생 때,

다수로부터의 손가락질을 받고 손지검을 당했을 때

내가 그저 걸어서 지나가는 것뿐인데

내 사진을 찍고, 깔깔 대고 웃는 사람들.


어떤 것을 먹고 있든, 누구와 대화를 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든,

가벼운 가십거리로 시작하여

부스럼내기 좋은 타겟이 된 거다.


불안한 마음은 시나브로 커져만 갔다.

커져가는 줄 몰랐던 마음을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나를 살피지 못했다. 돌보지 못했다.


나라도 나를 진정시키고 토닥였어야 했는데,

그때는 도망치는 게 꼭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직면해야만 한다고 강박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무서워도 다가갔고,

무서워도 마주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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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서 무너졌다.


내 사진을 찍던 카메라의 눈을 두려워하다

모든 인간의 눈초리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작은 추임새 하나만으로도 지레 겁을 먹고는

“모두 나를 향한 것이다.

모두 나 때문에 생긴 일이며,

모두 내가 없으면 평화로울 것이다.“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


사실은 내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 세상은 늘 평화로웠을 텐데.


지나치게 평화로운 그들만의 세상에서 나는

‘재미‘를 위해 잠시 필요했던 존재.


이곳을 때려도 저곳을 때려도

늘 한결같은 반응에 재밌고,

음주가무 중

가무와도 같은 역할.

/

어제와 같은 일을 오늘도 똑같이 당할까 봐

집 밖을 나가는 것이 무서웠고,

또다시 당하는 상상을 하다


ー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한복판에

주저앉아서 마른기침과 헛구역질을 하는 일이


때당시 내게는 일상이었다.

하루의 일과 중 하나.


세상을 거부하는 몸을 갖고서

몇십 분 동안 숨을 쉬지 못하는 일.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수능을 준비하느라 다녔던 독서실의

옥상에 올라가 자살을 체험하고,

매일 그렇게 자살을 했다.


10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것을 상상하고,

더 이상 이 세상과 마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잠시,


내게 삿대질을 하던 인간들이

떨어진 내 모습을 보고

놀람도 잠시, 깔깔 웃으며 모습을 사진 찍고


나는 그들에게 있어, 하나의 재밌는 썰이 되어

내 마지막 가는 길까지 편하지 못할까 봐.


그래서 체험만 하고서,

직접 자살을 하지 않았다.


사지가 부러져 영혼 없는 눈빛에

피를 흘리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우습게 보일 거 같아서.


그 순간만큼은 재밌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래서 살았다.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10층 옥상에 올라가

달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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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인간은

타인의 긁어 부스럼을 모아

자신을 채우느냐고.


달님은 반짝이며 나를 비추고

이에 대답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해방과도 같은 타지로 이사를 가는 날,

나는 해방을 느끼기도 했지만

공황으로부터의 해방은 실패했다.


인간의 눈은 언제나 똑같았고,

인간의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스토킹을 당하고, 소외감을 느끼고,

또다시 괴롭힘을 당하고,

따가운 눈초리에 몸 둘 바를 모르고.


그렇게 편안하지 않은 세상에서의 해방은

결국 죽음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토록 자살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나 보다.


그래도 살고 싶었나.

숨이 막힐 무렵에 늘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갔다.


산소호흡기를 끼고 한숨 잘 수 있도록

침대를 마련해 주고 유유히 떠나는 구원자들은

나를 더러 환자라 불렀고,

치료를 권장했다.


집보다 편안하게 느껴졌던 응급실의 천장은

그때 당시에는 어쩌면 포근했을지 모르겠다.


내게 공황장애의 시작과

지금 현재까지의 모습은 이와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쉽게

‘트라우마’라 부르기로,

그렇게 정의하기로 했다.


고통스러운 상처는 시간이 지나

흉터로 남아 내 몸에 평생을 머물고,

흉터는 고통의 시간을 상기시켜

매번 나를 아프게 한다.


추운 계절에, 쌀쌀한 날씨에

유독 상처가 아리는 이유는


10층에서 달님을 보았던 그날의 계절이

겨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시간이 지나 트라우마는 서서히 잊혀져가고

일상생활이 가능해질 무렵에는


이유없이 공황발작(공황패닉)을 느끼곤 했다.

이제는 이유마저 사라진 거다.


내가 원망할 수 있을 일말의 사건마저

나를 외면해버린 거다.


나는 물 속에 잠겨 늦게나마 엄마를 외친다.

늦게나마 아빠를 부르고,

늦게나마 그대를 부른다.


나를 좀,

나를 조금만

아주 조금만 도와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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