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피어나라.
청춘을 곱씹어보며 너의 어머니가, 아버지가
혹은 다른 그 누군가가 너에게 했던 말과 행동에
ー 아름다운 청춘이었습니다.
참으로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아마도,
네가 반드시 해낼 수 있으리라 보는데.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삶을 곧
지옥이라 생각했던 네가 택한 현명한 위로 법.
글에 『담아내기』.
다 담아내고서 들춰보지 않은 건
네가 결코 잊어버린 게 아니라,
아직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청춘이라 생각하고 싶다.
긴 말 할 것도 없이, 네 아버지가 말하기를
“이런데도 살아있잖니.”
너는 그 말이 당장에
아무런 부질없다 느꼈을지 몰라도,
ー 그래서 살아주면 안 될까
하는 네 아비의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을.
네 어머니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새벽녘
잠에 들지 않고,
너울성 파도에 빠져 죽으려 했던 너를 떠올리며
하늘과 함께 실컷 통곡했던 그날,
네 어미가 너에게 죄책감을 안겨주기보다
ー 그러니 살아주면 안 될까
하는 마지막 바램이었다는 것을
과연 네가 알고나 있을까.
어른이 눈물을 무기로 삼는다는 건,
그만큼 간절하다는 거 아닐까.
세상이 고작 이게 전부인 줄 알고서
금방 우는 어린아이처럼
그냥,
단순하게 떼를 쓰는 게 아니라
너를 제발 좀 살려보려고.
청춘을 공감받으려 하는 애석한 행동은
이제 그만 멈추도록 하고,
이제 겨우
꽃을 피우길 바래.
그들에게 청춘은 없었으니
그래도 한없이 미안한 마음뿐.
파도가 매서워 가까이 가지 말랬잖아.
더 이상 몸에 상처를 내선 안된댔잖아.
낼 곳도 없다고.
이제 그만 일어나.
나아지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살면 되잖아.
그냥 죽고 싶었던 것처럼
그냥 살고 싶어 주면
그렇게 해주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