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를 통해 끊임없이 윤회한다
흔한 희망으로,
나는 행복하고 싶었다.
여지껏 인생을 불행하게 살았다 한들,
아직 남은 여생이 있으니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희망은 곧 강박으로 바뀌어
나를 옥죄고 있었다.
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하다 못해 병원에서도
행복을 찾고 있었다.
행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미련하게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면,
나는 어느 날에 어떤 불행을 맞이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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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상태.
나는 그 어느 날에도 충분하고 기쁘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고, 나의 가여움을 수긍하며
미처 몰랐던 외로움을 깨달았을 무렵,
쓸쓸히 사람 온기 따위 없는 집에 홀로 있으며
나는 내가 불행하다 여기다가도
현실에 안주했다.
“
오늘 하루 동안
아무런 사건, 사고 없었으니 괜찮아.
자그마한 상처가 나지 않았으니 괜찮아.
식구들이 해맑게 웃지 않아도 괜찮아.
그러니까,
그래서 나는 괜찮아.
”
꽤나 잘 살아왔다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할 만큼의 곤란에 처했을 때도
훗날 그 순간을 담대히 이겨냈다며
나 자신을 토닥이고, 쓰다듬어주었으니.
누군가 알아주는 삶만이 행복은 아니니까.
시간이 흘러 이 세상에 내 가죽만이 남게 되더라도,
상상치도 못한 장소에서
내 낡은 유언을 발견했을 때,
참 용감하고 씩씩한 아이였구나.
잘 자라줘서 고맙구나.
ー 하며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거칠고 고단한 시간을 지내고,
그 역경 앞에서 이성을 되찾았을 무렵에는
난 누구와도 힘듦을 나누지 않았으며,
나 자신과의 싸움만을 지속하며 시간을
참도 어리석게 살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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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게 곧 죽음은
구원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내 우울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암울했던 과거와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과
..
.
내가 바라던 행복은 보다 추상적인 탓인지
점차 악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 같다.
행복은 불행의 전야제라는 값은 변하지 않는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불행해야 한다.
불행하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불행이 두려워 불안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 그려지지도 않는 내 미소가
모두들 해맑다 보기 좋댔던 웃음이
내 오랜 우울에 묻혀 스며들지도 모르겠다.
보기 싫은 옷차림,
듣기 싫은 목소리,
걷기 싫은 차가운 복도,
어쩌면 집보다 따듯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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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잘 살아왔다 생각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