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때는 살 만했다.

: 다들 아픈 사람이잖아.

by 호연

그래도 그때는 살 만했다.

옥상에 올라가 답답했던 숨을 트고,


어느 날에는 길을 지나다니다

공황발작에 그만 주저앉아

헛구역질을 하며 숨을 고르지 못했을 때도,


내가 비판 아닌 막연한 비난 속에서

‘나’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미움을 받고,

삿대질을 받고,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막 들었을 때에도,


나와 함께 지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무참히 짓밟히던 내 사람을

내 두 눈으로 보았을 때에도,


끝내, 내 사람이 내 곁을 떠났을 때,

ー 나는 역시 혼자가 되었을 때에도


그래도 살 만했다.


한 명 한 명 나를 떠나갈 때에도,

그렇게 떠나간 사람들을더러

ー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이미 벌써 죽어버린 사람이라며

나를 최면하였을 때도,


그래도 살 만했다.


그러나, 나는 보다 작고 사소한 일에

생과 사를 논했다.


이제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제는 아무런 사건도 사고도 없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살기 싫다.

죽고 싶다.

죽음을 곧 구원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

비록 구원이길 바란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 일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잠들고 싶다.


아주 깊은 잠에 들고 싶다.

이 무게를 버틸 힘이 없다.


살다 보면 더 아플 테고,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상처가 덧날 테고,

이 또한 쉴 새 없이 반복되겠지.


내게는 근사한 용기도, 의지도 없다.

껍데기뿐이 남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

내 지난 과거에서 허우적거리다

그만 길을 잃고, 끝내 찾지 못하고

선잠에 드는 것.


울고 싶은 날이다.

마음껏 우울하고 싶은 날이다.


그러게 그땐 정말 죽고 싶지 않았는데,

그 근처에 갈 만한 용기조차 없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버티듯 살아왔는데


지금보다 ‘그냥 살아가는 것’을 잘 해냈던

나였는데.


이룬 것 하나 없이

후회로 가득했던 한 해를 보내고,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고,

다짐했다.


악순환의 연속으로 지금 여기,

이렇게 병원에 와놓고서

다 같은 환자임에도 나는

ー 완전히 다른 사람, 어쩌면 저들은 틀린 사람.

그렇게 생각하고는 했다.


“다들 아픈 사람이잖아.

어딘가 상처가 있고,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아

모인 사람들이잖아.“


나는 이 말을 듣고,

무언가 허무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지, 나도 환자였지.

나도 아파서 이곳에 있는 거였지.


언제부터 아팠더라?

왜 그토록 죽고 싶어 했더라?

어쩌다 매차례 실패했더라?

..

.

수많은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내 실패에 꽂혀 그만,

생각을 멈추었다.


죽기에는 용기가 없고,

용기를 위해 술을 마신다.

술을 무턱대고 들이킨다.


이때 나는 죽고 싶다는 욕망만큼

많은 양을 한꺼번에 털어 넣는다.


그 후 계획은 무너지고

죽음을 실패한다.


어쩌면 더 취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죽고 싶지 않아

목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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