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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히 Aug 25. 2024

고통 없이 행복이 존재할까?

인간이라는 것의 숙명


그대,

어찌 인간으로 태어나서 고통 속에 사는가.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는지,
어쩌다 세상에 나와보니 인간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인간과 고통은 뗄 수 없는 운명인 것은 분명하다.

평범하게 살고 있다 믿는 나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스타들도, 사업을 멋지게 성공한 사업가도, 재벌 2,3세로 태어난 금수저들도, 길 가다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모두 고통 속에 산다.

다만 고통의 종류와 정도는 다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본인의 고통이 본인에게는 가장 크게 느껴지는 일인지라 고통의 정도를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다.

 


고통 없는 삶을 꿈꾸는 우리의 바람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고통이 사라지면 어떨까?


가난이 사라지고 모두가 부유한 세상.
병들지 않고 아프지 않으며 모두가 건강한 세상.
시기, 질투 따위는 없어지고 배려와 신뢰로 가득한 세상.
싸움도 전쟁도 없고 오직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감정만을 느끼는 평화로운 세상.


말만 들어도 정말 가슴이 벅차오른다.
바로 우리가 원하고 원하는 천국과 다름없는 세상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딱히 특별함은 없다.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고 가지고 싶은 걸 가질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무조건 날 사랑하고

운동과 식이요법을 따로 하지 않아도 건강이 나빠지지 않는다. 여행은 언제나 갈 수 있고 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런 삶이 지속되면 결국 어떻게 될까.


꿈도 목표도 욕심도 욕구도 사라질 것이다.
한마디로 표현해 ‘욕망’(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인간은 욕망이 없으면 권태를 느낀다.



백수 생활 3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무렵쯤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신경을 쓸 일도 없고, 건강 관리도 따로 하지 않았던 때라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게임을 하며 밤을 새우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배고프면 밥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아주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냈다.


애인과도 별다른 문제없이 지냈고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았기에 삶에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문제들이 없었다. 퇴사 직후에는 정말 행복했다. 아직 고통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노동이 제일 큰 고통이었기에 ‘역시 백수가 최고야.’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정말로 행복했다.


앞날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지금 내가 편한 게 마냥 좋았다. 평생 이렇게 살면 좋을 것 같았다. 고민이라고는 밤마다 다음날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게 전부였던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나 본 것 같은 삶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의미 없이 엄지만을 움직이며 핸드폰을 내려보다가 눈이 아파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자세로 누운 후 눈을 떴다. 침대 위의 하얀 천장이 날 둘러 감싸고 있었다.


안락함. 편안함.


그것들이 감싸는 나의 육체는 이미 달콤한 나태함의 늪에서 허덕이며 삶에 권태를 느낄 뿐이었다.


-


내일이 기대되지 않았다.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었고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목적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숨 쉬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뭐 하냐고 물으면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냥 있어." 뿐이었고, 내일 뭐 할 거냐는 질문에는 ‘’ 나도 몰라."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평생 백수로 살 계획은 아니었지만 지금이 너무 편했다. 그런데 즐겁지 않았다.  지금 이 기분은 마치 우울과 비슷했다. 권태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여행. 맛있는 음식. 신나는 음악. 좋아하는 연예인.
떠올리는 순간에 잠깐 기분이 좋아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평소에 행복하기 위해 찾았던 것들이 이제는 행복과 먼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내가 지금 너무 행복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렇지만 점차 나태해도 상관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편안함이 당연해지다 보니 ‘행복’이라는 게 도대체 뭐지?라는 생각에 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정말 지금 행복한 걸까?



출근을 할 때는 퇴근을 하고 싶었고,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여행 계획을 세우고 휴가만을 기다렸다. 평일에는 ‘주말에 아주 끝내주게 놀아야지.’하는 생각으로 버티며 주말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어트를 할 때에는 맛있는 음식을 왕창 먹고 싶었고 외로움을 느낄 에는 날 사랑해 줄 사람이 운명처럼 나타나기를 바랐다. 너무 피곤할 때에는 하루종일 잠만 자는 게 소원이다 싶었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팬미팅을 하면 연차를 써서라도 꼭 가고야 말았었다. 인생에 바라는 것이 많았다. 욕망이 가득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라던 것들이 이루어졌을 때 행복을 느꼈다.


퇴근 후 치맥을 먹는 것과 같은 짧은 순간에도 ‘아 이게 행복이지.’하며 행복이 별거냐며 웃어 보였. 소소한 것 고통받고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던 사람이 이제는 고통도 행복도 느끼지 못하게 된 거다. 이제는 스로에게 '나는 행복해’라고 증명해하는 일이 없어진 거다.


현실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들이 사실은 아갈 수 있는 에너지이자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욕망을 만들어야 했다. 수 없이 고통의 문턱에 자발적으로 발을 올려야 했다. 그래야 행복할 수가 있으니까. 그 길로 나는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인생에 목표를 세웠으며 취업을 하여 고통을 받으며 살았다.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나 자신과의 싸움을 반복했다. 이 모든 건 인생에 권태를 느끼지 않기 위함이자 행복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소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던 ‘나’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그 자체가 욕망이다. 고통 없이 마냥 평안하기만 한 삶을 살면 그 평안에 만족하지 못한다. 지금이 평안한 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파봤기 때문에 건강이 소중한 걸 알고
가난을 알기에 금전적인 안정을 원하고
전쟁의 고통을 알기에 평화를 기원하고
배신과 거짓을 경험했기에 신뢰를 주는 사람을 따르고
외로움을 알기에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별의 아픔을 알기에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배고픔을 알기에 음식의 소중함을 안다.


그리고 우리는 보편적으로
건강하고 금전적으로 안정되고 평화롭고 사랑하고 배부를 때 행복을 느낀다.

만약 고통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행복이라는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행복은 고통 없이 존재할 수 없고,
인간은 고통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이기에,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겸허히 맞이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욕망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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