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의 양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by 영주






창밖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 건널목 앞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 느릿느릿 여유를 부리는 사람, 꽤 쌀쌀한 날씨에도 얇은 운동복을 입고 뛰어가는 사람, 걷다 멈추는 사람, 멈췄다가 걷는 사람. 모두 두 발로 땅을 밟고 간다.

밟는 발이 있다면 밟히는 땅이 있다. 나를 받아내는 땅이 있어서 그것을 디디고 살아가는데, 나는 그 사실을 쉽게 잊는다. 잊기 전에 이미 잊혀 있다. 잊힘은 모든 당연한 것들의 숙명이다.

어떤 슬픔은 가볍고 어떤 슬픔은 무겁다. 어깨에 앉은 먼지처럼 툭툭 털어낼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끈덕지게 매달려 걷는 걸음을 버겁게 하는 것들도 있다. '슬픔이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이 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 무게와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는 슬픔이 있어, 각자의 슬픔에 이름을 지으면 그 사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 슬픔은 고유한 발자국을 남기고, 그 발자국을 들여다보면 지문처럼 그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

사람들이 밟는 땅을 보면서 슬픔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작용하는 힘이 있으면 반대로 작용하는 것들이 함께 있다는 우주의 법칙을 사랑한다. 걸음의 양면. 밟는 발아래에서 밟히며 버티는 것들. 그것들 덕에 슬픔을 걸음마다 찍으면서도 나는 앞으로, 때로는 뒤로 걸어간다.

'그럼에도'라는 말을 '슬프다'라는 낱말 뒤에 열심히 끌어온다. 규칙적인 숨을 고르게 쉬며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어젯밤에 끝맺지 못한 슬픔 앞에 내민다. 산책이라는 칼과 좋아하는 시집에 밑줄 친 구절이라는 방패를 들고, 슬픔의 공격 앞에 방어의 자세를 취한다. 이런 것들이 나를 받치고 있음을 믿으므로 나는 걸음걸음 슬픔을 찍으면서도 걷는다. 그리고 내가 걷는 순간 이런 것들이 다시 발아래가 되어 내 걸음을 받아냄을 다시 믿는다. 그러니 슬퍼하며 걸어도 괜찮다. 나보다 더 믿을 만한 것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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