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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윤영 Apr 13. 2021

모두가 미아가 되는 이야기

영원한 미아들이 있는 이 세상

십수 년 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호주에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영상 통화나 그런 것이 없어 공중전화에서 전용 카드를 구입해 전화를 걸어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이 나의 산소통 같은 것이었다. 아빠는 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 싫어 암이 재발해 검은 덩어리가 아빠의 숨을 통째로 삼키고 아빠의 소처럼 껌벅이던 눈까지 집어삼키고 있음을 내게 말하지 않았다. 매번 통화에서 가늘게 꾸역꾸역 밀어내는 목소리로 "응, 잘 있어?" 할 때마다 나는 아빠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타박했다. 나는 전혀 몰랐다. 아빠가 나에게 아픈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물도 못 마시는 상태로 온 힘을 다해 소리를 겨우 내 나랑 통화했었다는 걸. 좋은 성적을 얻었다고 할 때마다 "우리 딸 장하다." 하던 목소리가, 말 많은 내가 아빠를 힘들게 할까 엄마가 전화를 이내 넘겨받고는 "응, 이제 가야 해. 잘 지내고 있어." 해야 한 것도. 


바다 건너에서 지구 하부 허벅지 언저리 다운 언더(down under)에서 나는 여름을 맞았고, 부활절 하루 전이었다. 학교는 쉬고, 거리도 지구 멸망의 날 하루 전처럼 종이 쪼가리나 나뭇잎이 바람결에 휘리릭 날려가는 그런 장면이 연출되기 딱 하루 전 밤이었다. 12시가 넘었는데 핸드폰에 국제전화라는 표시가 뜨기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오빠였다. 


지금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왜? 무슨 일인데?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어서 아빠한테 말해.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 다해.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용케 꾸역꾸역 밀어서 내느라 숨이 가쁘게 들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알았겠지만, 모르는 척을 계속했다. 아빠가 없는 세상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무의미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무엇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도 대응을 할 수가 없었고 모르는 체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 싶다. 


나는 그래서 TV에서 봤던 것처럼 하지 않으면 후회할 말인 그 말을 했다. 


아빠 사랑해

나는 그때 "아빠"라는 말을 이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내 입이 그 발음을 하게 될 일이 없어 얼핏 그 단어를 소리 내어 말했을 때 어색함을 느낄 것임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바위가 부서져 마그마가 흐르는 것처럼 목구멍 전체가 뜨거운 무엇으로 온통 꽉 막히게 돼서 숨도 쉴 수 없고, 꿈도 꿀 수 없고, 앞을 내다볼 수도 없고, 사람의 눈을 들여다 보고 티끌 없이 웃을 수 없고, 누군가의 손을 한번 잡으면 놓기도 무섭고 계속 잡고 있기도 두려운, 하늘을 날 때, 야경을 볼 때, 무겁게 저미는 마음을, 아빠가 좋아하던 산을 볼 때, 아빠가 엄마 사주고 싶어 하던 차를 볼 때, 남이 방치해 죽어가던 식물도 살려내던 아빠, 죽어가던 모든 것을, 나를, 투박한 손으로 따듯하게 잡아서 겨울 산을 올랐었던, 적당한 나뭇가지를 주어 내 등산 스틱으로 늘 쥐어주던 아빠가 "이"세상에는 없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나는 다음날 날이 밝은 대로 가장 빠르게 한국에 갈 수 있는 비행기표를 사고 학교 근처 기념품 가게로 가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엄마 것, 오빠 것, 그리고 아빠 것. 아빠는 건강이 좋지 않으니까, 학생 주머니에서 꽤 큰 지출을 했다. 마누카 꿀을 샀다. 그 가게에서 가장 큰 것으로. 


다음 날 새벽같이 공항으로 갔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가족들에게 줄 요량으로 선물을 배낭에 넣었다. 호주에 오고 근 1년 만에 한국에 가는 길이었다. 


비행기를 타기 마지막 관문, 게이트를 통과하려는데 가방을 검사한다. 마누카 꿀이 나왔다. 


You can't take this with you. It's over 100ml. (이건 100ml가 넘기 때문에 기내에 가지고 탈 수 없어요.) 


It's for my dad! It's the present for my dad! (제 아빠를 위한 거예요! 이건 제 아빠 선물이에요!)


눈앞에서 그 검수관이 나를 쓱 쳐다보고는 가차 없이 꿀을 뒤로 치웠다. 나는 정말 법을 어길 의도가 없었고, 이건 실수였고, 다음에는 꿀을 짐칸으로 부치는 가방에 넣을 자신이 있었는데, 나에게 다음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소멸할 것 같았다. 회색 가루로 변해서 바스슥 한 번에 흔적도 없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꿀 한 통도 아빠에게 가져다줄 수 없는 것이. 꿀 한 통 가져다 줄 아빠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는 것 같은 것이.


내가 여기서 마구 발 닿는 대로 걷다가도 무례한 백인들이 나를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대해도 꿋꿋할 수 있었던 건 아빠가 아빠 있는 곳에 있었기 때문인데. 길을 잃은 것 같으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면 되었기 때문인데. 나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었고, 그렇게 미아가 됐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제 나는 갈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아빠가 아빠 있는 곳에 더 이상 없으면, 나는 되돌아갈 데가 없는데. 


비행기 안에서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꺼이꺼이 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 알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으면 꺼이꺼이 소리가 나더라. 옆에 앉은 인도인 아주머니가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처음 가족들 품을 떠나 외국으로 가는 것은 힘들지만, 곧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여줬다. 아주머니에게, 나는 이 세상에 돌아갈 곳이 없음을, 이 세상 모든 곳이 외지이며, 나는 어디를 가도 계속해서 되돌아가는 길을 찾아 도돌이표처럼 한 자리를 서성이다 지쳐 길바닥에 누워 꺼이꺼이 우는 미아가 되어버렸음을, 말하지 못했다. 아주머니도 아마 벌써 아주머니가 미아라는 것을 오래전에 알아차렸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새로운 얘기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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