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를 읽고
취업이 결정되고 한 달 정도 시간이 남았다. 시간을 빈둥빈둥 놀면서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같이 여행을 가자고 물어보았다. 짧게 다녀올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그 전에 아버지랑 단 둘이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우리는 3박4일 동안 교토와 오사카를 다녀왔다. 첫 날 저녁을 먹을 때까지 무언가 알 수 없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안하던 짓을 할 때 느껴지는 느낌이랄까. 밥을 먹고 숙소까지 가는 중 산책하기 좋은 하천을 만났다. 많은 현지인들이 이곳에서 조깅이나 자전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우리도 배를 끄기 위해 하천을 따라 걸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애이야기로 흘러갔다.
처음 들었던 이야기다. 얼핏 듣기는 했었지만 28년 동안 단 한번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듣지도 않았던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어머니도 10대 시절이 있었고, 20대 시절이 있었고, 연애하던 시절이 있었다. 연애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긴 하천을 두 바퀴나 돌아버렸다. 또 다른 부모님을 만난 느낌일까. 그 전과 후에 부모님에 대한 느낌이 사뭇 달라진 느낌이 든 건 우연일까.
이슬아 작가님의 <나는 울 때 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책을 읽었다. 지인이 추천해준 책이었는데 만화와 중간 중간 짧은 에세이가 담긴 책 이었다. 만화라서 금방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 든 내용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엄마라고 말하기보다 복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3인칭으로 지칭하면서 한 사람의 엄마가 아닌 개인의 인격체로써 바라보고 있는 게 인상 깊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이슬아 작가님과 복희 여사님의 일대기는 대부분 잊힐 것이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남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점은 책을 통해 우리 부모님을 다르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땠을까? 아마 술 한 잔하면서 넌지시 물어보면 온갖 이야기가 다 튀어나올지 모른다. 꼭 책으로 나오지 않아도 되니 소중한 추억과 역사는 내 손으로 직접 기록해보고 싶다.
책의 후반부에서 이슬아 작가님이 18살이 된다. 그 전과 후가 책의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작가 본인보다는 작가가 바라본 복희씨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18살 독립을 선언하던 해부터 본인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자연스럽게 세대가 교차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책을 덮을 때는 오히려 이슬아 작가님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지금의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경험과 환경의 결과이지 않은가. 작은 결정들과 작은 환경들. 만난 사람들. 특히나 가장 많이 접촉한 부모님의 영향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복희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이슬아 작가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왜 지금의 작가님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성향과 취향, 성격들이 이해가 된다고 할까. 만난 적 없지만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공개해주어 깊이 감사드린다.
오늘 이 책을 덮으면서, 괜시리 울적해졌다. 카톡을 보니 오늘도 어느 단톡방에서 퍼왔는지 모를 좋은 글귀를 어머니께서 올려놓으셨다. 에이씨. 안하던 전화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