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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Nov 03. 2019

내가 게이 부부를 만났던 그날 밤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고


내가 처음 게이를 만난 곳은 캐나다 밴쿠버였다. 여권을 잃어버려 꼼짝없이 일주일을 더 있어야 했던 나는 지인이 초대한 파티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다. 파티에서 딱 한 번 보았는데 내 사정을 들은 게이 친구는 자신의 집에 초대해주었다. 그들의 호의와 별개로 나는 게이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라왔다면 성소수자를 접하기는 매우 어렵다. 사회적으로 터부시되기도 하고 혹시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기라도 한다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매우 어려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여성스러운 남자애들이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게이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나 역시 게이를 만나지도 못 했다.


25살이 되던 해, 캐나다에서 처음 게이를 만날 줄 이야. 그들의 집에 들어왔을 때 멋진 남자 두 명이 환하게 웃으며 정장을 입고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이 거실 한쪽에 크게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문화충격을 받았다. 25년간 게이의 게 자도 들어보지 못한 세계에서 살다가 갑자기 토끼를 따라간 앨리스 마냥 새로운 세계로 덜컥 떨어진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기쁜 마음에 짐을 싸들고 집에 들어왔지만, 이내 불안감이 엄습했다.


첫 날밤 (뭔가 어감이 이상하지만) 저녁을 먹고 같이 영화를 봤다. 맥주 한 병씩 들고 소파에 앉았는데 나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 앉는 것이었다. 고백하건대 영화 이름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영화에 집중을 못했다. 들어올 땐 쉬웠지만 나갈 때 어렵다는 말이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인가.. 눈을 질끈 감고 그들이 덮쳐오면 저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했다. 부끄러운 기억이다. 다행히 아무 일도 있지 않았지만 그만큼 나는 폐쇄적이고 편견에 뒤덮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에도 유럽 여행을 다니며 몇 명의 게이들을 더 만났다. 덕분에 간접적으로 나마 게이들의 생활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들도 사랑을 했고, 결혼을 하고,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생활을 했다. 물론 유럽이라고 게이들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보자마자 무섭게 느끼고 두려워했던 나의 편협함을 반성했다.  


<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는 데다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그런데 게이의 이야기였다. 내용을 전혀 모르고 보았기에 깜짝 놀랐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처럼 써서 정말 작가가 게이인가 싶었는데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토록 피부에 와 닿게 쓰는 것은 작가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만큼 성소수자들을 깊이 바라보고 나처럼 편협함 없이 하나의 인격체로 인식했다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매년 퀴어 축제를 열면 찬성과 반대가 극렬하게 충돌한다. 이해한다. 나 역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아직도 있는데 이전 세대의 분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어떤 게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보다 다양한 미디어에서 피부에 서서히 젖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 성소수자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게끔 말이다. 성소수자들 콘텐츠의 불모지였던 소설에서 <대도시의 사랑법> 같은 책들이 나오는 점에 박수를 보낸다. 게다가 베스트셀러까지! 사회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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