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
어릴 적 나는 공상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외계인을 굳게 믿고 있어 외계인을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전공마저 항공우주공학을 선택할 정도로 SF와 우주를 좋아했다. 혼자 공상할 때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만약 외계인이 들키지 않고 공생한다면? 내 주머니 속 이어폰을 꼬이게 하는 요정이 있다면? 도서관에서 책을 아무렇게나 꽂아놓으면 어떻게 될까? 맨홀 뚜껑 아래 돌연변이 쥐가 살까? 황당한 생각을 하며 가끔씩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다.
김초엽님의 소설을 북카페에서 우연히 만났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지부터 약간 로맨스 느낌 나는 소설이었다. 사실 이 책이 SF소설 인지도 모르고 읽었다. 하지만 어릴 적 외계인을 상상하던 꼬마로 돌아가는 기묘한 경험을 만들어주었다.
저자 소개를 포니 포스텍 화학과 석사를 졸업한 이과 만렙이었다. 그런데 글솜씨가 더해지니 이런 역작이 나오나 싶다. 글의 중심적인 주제가 되는 소재들이 있다. 이 소재들은 공대생들이 엉뚱한 상상을 할 때 나오는 소재들이었다. 나 역시 비슷한 소재들을 상상하곤 했다. 다만 작가님과 차이라면 간단한 상상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구축하고 그 속에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까지 넣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와 액션 활극 청춘 SF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이야기를 다시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까지 있었다.
넷플릭스에 러브 데스 로봇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5~15분 사이 짧은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구성되어 있다. 총기획자가 있으면서 각각 회차마다 감독들이 달라서 전혀 다른 색감과 느낌을 준다. 몇몇은 장편으로 만들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멋진 소재도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 까. 조금 더 찾아보니 몇몇 이야기는 원작 단편소설이 있었다. 시즌2가 만들어질 예정이라는데, 개인적으로 시즌2를 이 책의 이야기로 다 만들고 싶을 정도이다.
작가님의 다음 소설도 너무너무 기대가 된다. 이과적 상상력과 문과적 필력이 합쳐지니 이런 역작이 나오나 싶다. 세계관을 구축하고 흥미로운 전개를 하면서 메시지까지 전달해주는 작가님이 부러움을 너머 질투까지 느껴진다.
여담으로 갠 적으로 추천하는 에피소드는 단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공생 가설"이다. 물론 모든 에피소드가 주옥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