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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썸 Nov 01. 2021

오징어

낯썸 단편선 1



낯썸 단편선 1 


삐삐삐.

눈을 떴다. 오늘도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유일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카시오 디지털 손목시계에서 짧고 강렬한 알림 소리를 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시계의 알림을 껐다. 점점 소리가 얕아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시계가 꺼지면 이제 세상의 시간은 아무도 모르겠지.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제 몇 시에 잤더라? 아니 내가 자려고 한 적이 없는데. 아마 해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하듯 잔 것 같다. 뭐,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니다. 


옥상에 올라갔다. 물이 받아져 있었다. 이미 끊겨버린 수도로 자체적으로 물을 저장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아침 이슬과 빗물을 받아 재활용하며 최대한 아껴 쓰고 있다. 며칠 전 크게 내린 비 덕분에 아직 여유가 있다. 작게 물을 떠 얼굴을 씻었다. 수염 깎는 사치는 못 부리지만 세수는 꼭 해야 하는 의식이다. 아직 살아있다고 뇌에 알리는 일종의 행위다. 


옥상에서 집 주변 바리케이드를 간단하게 육안으로 확인하고 1층과 2층의 보안장치들을 확인했다. 불을 피우고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맥심 커피를 타서 한 잔 마시고 나니 그제야 정신이 맑아지는 듯하다. 자 오늘은 뭘 해야 하지? 


기본적인 식량은 충분하다. 맛은 이미 포기했지만 영양공급에 부족함이 없다. 스미스 요원과 함께 멋진 식량창고가 있는 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 스미스 요원은 내 가방에 항상 붙어 다니는 특수 인형 요원이다. 나의 유일한 동지이자, 이 지옥고를 헤쳐나간 불굴의 용사이다. 용사의 마음을 지녔지만 외모는 피카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상대방을 방심하게 만드는 훌륭한 전략이다.


맥심 커피를 들이키며 스미스 요원과 오늘 탐색 루트를 토의했다. 6개월 동안 세이프 하우스 구축에 온 힘을 썼고, 몇 주 전부터 겨우 반경 3~4 킬로 내외를 탐색하는 여유가 생겼다. 스미스 요원은 섹터 5 지역 탐색을 제안했다. 이곳은 하수도 처리장이 위치해 있고 강과 연결된 곳이다. 현재로서는 미탐 색이자 주변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생각되는 곳이다. 항상 그곳 방향에서 밤마다 기괴한 비명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탐색을 위한 장비들을 점검하고 방탄복과 선글라스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오후 3시. 오늘 날짜를 대충 가늠한다면 일몰까지 3시 40분 정도 활동 가능시간이 예상된다. 최소한 오후 6시까지는 집 주변으로 돌아와야 한다. 오토바이로 섹터 5까지 거리는 약 25분에서 30분. 중간에 어떠한 장애물이나 돌발상황이 없는 가정하에 거리이기 때문에 1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최소 수색시간은 1시간 반 정도. 최대한 간결하고 신속해야 한다. 남는 게 시간이지만, 남는 게 시간이라 문제다. 


다행히 섹터 5까지 35분 만에 도착했다. 중간에 자동차들끼리 박은 사고 현장들이 있어 지나가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오늘은 뭔가 잘 풀릴 것 같다. 임시로 만든 횃불이 타올랐다. 지금으로써 가장 유용한 무기는 불이다. 이미 화염병 몇 병도 가방에 들어있다. 하수도 처리장에 조심스레 들어갔다. 거대한 수조들이 늘어져 있는 처리장은 예전에는 수십만 시민들의 뒤처리를 담당하던 곳이었다. 한낮의 태양 덕분일까. 매번 기괴하게 질러대는 소리는 잠잠했고, 이곳에 누군가의 인기척 조차 없었다. 분명히 이곳이 가장 중요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없고 그저 처리하다만 똥물들만 썩으며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내가 1년 동안 싸워온 그것들은 대체 무엇일까. 밤마다 나는 그들과 싸워왔다. 사람의 눈으로 확인을 못하는 걸까. 그들은 빛을 싫어했고 어둠 속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이곳의 불빛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기는 사라졌고, 사람들도 사라졌다. 내가 살아있는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그저 히키코모리였고, 밀리터리 덕후였고, 그 사건들이 터질 때에도 FPS 게임 속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됨을 알아챈 것은 인터넷 접속이 3일째 되지 않았을 때였다. 곧이어 전기가 나가 더 이상 게임을 하지 못하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분명 부모님이 나를 나오게 만들려고 수작을 부린 것 같다. 내가 속을 줄 알고? 


3일 동안 전기와 인터넷이 되지 않자, 3년 만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부모님이 전기를 끊어버린 줄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었고, 격렬한 빡침을 부모님께 해소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도시 전체가. 마치 증발한 것 마냥. 전기와 인터넷은 먹통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도 끊겼다. 밤마다 기괴한 비명소리가 도시 전체에 들려왔다. 나는 좀비가 도래한 세상이 온 것으로 착각했다. 히키코모리였지만 수만 마리 좀비를 온라인에서 죽여본 베테랑 전사이기에 빠르게 이성적 판단을 하고 집을 요새화 시켰다. 기괴한 비명소리는 매일 밤마다 들려왔지만 정체모를 무언가는 밤마다 집 주변에 움직였다. 그렇다. 밤에만 움직였다. 형체를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움직였다. 좀비는 분명 아니다. 나는 모든 시간을 식량 확보와 집을 요새화 시키는데 주력했다. 아직 닥쳐오지 않은 미지의 적을 막기 위해. 그리고 적의 정체를 보기 위해 조심스레 주변 탐색을 했고, 비명소리가 들리는 섹터 5에 이르렀다. 


하수도 처리장을 확인하고 하수물이 흘러나가는 강에 도착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은 광경을 마주했다. 

내가 본 건 다름 아닌 오징어였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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