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집 - 손원평 책 리뷰
[단편소설 리뷰] 타인의 집 - 손원평
아몬드로 유명한 손원평 작가님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이 책은 트레바리 모임 선정 책이라 구매해서 읽어보았다. 아몬드와 프리즘 소설들에서 보듯이 작가님은 뭐랄까 사회적 메시지를 동화적으로 잘 풀어내는 것 같다. 그래서 이야기의 끝이 아름답거나 해피하게 끝이 난다고 생각한다. 아몬드도 청소년 문학상을 받아서 그런가 이야기가 자극적이거나 부정적이지 않다. 이게 개인적으로 비평하고 싶은 포인트이면서 작가님이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그만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들을 발견하고 이야기로 풀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타인의 집 소설집은 손원평 작가님이 여러 군데 올렸던 단편 소설들을 하나로 모았다. 단편이라 이야기의 호흡이 짧고 메시지가 명확하게 보이지 않기도 하다. 때로는 결말이 애매하게 끝나서 독자로 하여금 결말을 상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임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경향이 있었다.
4월의 눈
이야기에서는 에어비앤비로 추정되는 여행자에게 방을 빌려주거나 집에 초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부가 등장한다. 그들은 핀란드에서 오는 마리를 초대하게 되고, 마리를 만나기 전 부부의 관계가 소원해져 함께 방을 쓰지도 않는다. 마리는 갑자기 연락이 되지 않다가 갑자기 돌연 다시 초대를 요청하게 되고 마리와 함께한 3박 4일 동안 부부의 관계는 다이내믹하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4월의 눈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메시지를 중점적으로 만나기보다 개인적 경험이 먼저 떠올랐다. 2014년 카우치서핑으로 1년 동안 30여 명의 집에 초대받아 숙박을 한 적이 있다. 카우치서핑은 여행자들에게 집의 소파(카우치)를 내어주고 서로 문화를 교류하는 커뮤니티이다. (말이 문화교류이지 정확히는 돈 없는 대학생들이 숙박비를 아끼는 목적과 현지인과 친구과 되고 싶은 목적이 더 컸다. ) 필리핀에서 한국을 너무 좋아하는 부부를 만나기도 했고, 캐나다 밴쿠버에서 게이 부부와 일주일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친구들이 다양한 생활과 이야기를 저마다 가지고 있었다. 4월의 눈에서 마리는 산타가 있다는 핀란드에서 왔다. 부부는 평소 동경하고 가보고 싶었던 곳에서 마리가 왔고, 마리는 서울을 동경하며 한국으로 왔다. 내가 처한 문제와 현실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비참하게 보일지라도, 모두가 이야기하지 않을 뿐 다 비슷하게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치열하게 살고 있다고. 내가 여행자의 눈으로 본다면 멋지고 신기하고 특별해 보여도 그들에게 나 역시 멋지고 신기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임을.
괴물들
손원평 작가님이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 이야기를 쓰시는지는 몰랐다. 괴물들은 아이들이 괴물이 아닐까 의심하는 한 엄마의 이야기다. 아이들이 뭔가 좀 이상해 보인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힘은 역시나 필력에서 오는 것 같다. 모임에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찾기도 했지만 나는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그냥 장르 소설 그대로의 재미를 살려, 정말 아이들이 악마의 아들이었다는 설정이나 알고 보니 엄마가 광신도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있었다거나 혹은 자신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허상이었던 것은 아닐까 반전까지 생각해보았다. 재밌지 않은가?
아리아드네의 정원
SF까지 섭렵하는 손원평 작가님. 뭐랄까 SF 장르이지만 소재 자체는 앞으로 근미래에 충분히 고민해볼 법한 문제를 가지고 SF 세상에서 풀어보았다. 개인적으로 김초엽 작가님의 굉장히 좋아하는데 장르소설을 재미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사회문제 혹은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재미까지 보장한다. 오징어 게임 역시 장르적 재미와 함께 그 속에 인물로 보는 사회상과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깊이감이 더해져 명작이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냥 재미만 추구했다면 이 정도로 성공했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아리아드네 정원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또한, 한국에서 장르소설이 약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좀 더 장르소설이 문학으로써 대중적으로 인정받고 작품성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타인의 집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처음 서울로 올라왔을 때,
한 셰어하우스에 정착했다. 집주인 형은 한 달에 한 번 들어올까 말까였고, 같이 사는 친구는 마치 히키코모리같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끔 방문 여는 소리가 나면 으레 화장실을 가는구나 생각했다. 큰 거실과 부엌까지 마치 혼자 쓰는 기분이었고 약간 수고로움으로 적당히 깔끔하게 청소하며 지내면 전혀 얼굴 붉힐 일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내 방은 너무 작았고, 고요하고 적막한 공기가 싫어졌다. 해외생활 때 친구들과 한 집에서 재밌게 지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자 다시 새로운 셰어하우스를 찾게 되었다.
새로 들어간 셰어하우스는 일주일에 3번 이상 밤에 술파티가 열렸다. 집주인 형은 돈이 많았고 친구가 많았고 여유가 있었다. 항상 술과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고 함께 지내는 사람들도 너무 좋았다. 그래 이런 왁자지껄 분위기를 원했어.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 즐거움이었다. 편한 분위기는 으레 서로가 그어놓은 각기 다른 선을 넘기 시작했고, 매일 이어지는 파티는 내 일을 방해할 지경이었다. 오해는 쌓여갔고 서로의 불편함을 웃음으로 무마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폭발은 우연으로 시작되었다. 우연히 밖에서 만난 하우스 메이트와 짧은 커피 타임에서 집주인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모든 불만이 전부 터져 나왔다. 내 돈 주고 들어간 집이고 방이지만 들어가기 싫어 일부러 밤늦게까지 밖을 배회한 적도 있다. 그래 이제 곧 계약이 끝나. 조금만 참자.
새로운 방을 계약했다. 그리 크지 않은 원룸이었다. 내 벌이에 비해 조금 무리했다. 그럼에도 온전히 내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누군가의 인기척이 없는 공간.
넓은 거실과 부엌도 없었지만 온전히 내 방이었다. 물론 계약한 기간 동안만.
새로운 집을 찾을 때 부랄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넓은 서울에 내 한 몸 편안하게 누울 곳이 없구나.
책에서 재화 언니에게 확실하게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인다. 딱 내가 가진 권리만큼만. 서로에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선이 만들어진다.
첫 하우스는 너무 선이 뚜렷해서 싫었고 두 번째 하우스는 선을 제멋대로 넘나들어서 싫었다.
결국 적당한 선은 없다고 결론짓고 나의 선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무리해서라도.
책을 읽으며 특히 단편선 중에 타인의 집이 더욱 공감이 갔다. 집주인이 집에 오는 해프닝은 없었지만 함께 살아간다는 것. 온전히 내 이름으로 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집이 없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에 마치 나 자신을 빙의할 정도로 몰입되었다. 부동산에 대한 담론은 조심스럽다. 누구는 정책의 실패, 누구는 자본 통화량 공급의 문제, 누구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 누구는 왜 땅에 대한 권리를 개인이 소유하는가 하는 문제로 격렬하게 부딪힌다. 누가 답이고 누가 오답인지 사실 판가름할 깜냥도 되지 않는다.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싸움보다 다양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다른 모습들을 함께 공유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