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썸 Apr 29. 2018

저는 이산가족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저는 이산가족입니다.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매년 세뱃돈은 5만 원이었습니다. 10만 원을 넘기는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죠. 학교에 가면 30,40만 원씩 받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부모님은 친척이 없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해주실 뿐 왜 친척이 없는지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우리 가족은 이산가족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왔습니다. 전쟁통에 모든 가족과 헤어지고, 홀로 남게 된 할아버지는 연고도 없는 곳에서 악착같이 사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습니다. 첫 이산가족 상봉이 열리기 전 돌아가셨죠. 나는 그때 어려서 할아버지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세뱃돈이 적어서 이산가족이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싫었습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더 이상 이산가족이라 부르기도 애매해졌습니다. 유일한 연결고리인 할아버지께서 세상에 안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함께 손을 마주 잡던 날, 정전 선언을 하던 그날,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뜨거움을 달래려 물을 마셔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날 잊고만 지냈던 할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왔습니다. 공부한다고 부모님과 떨어져 있었지만, 부모님은 제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부모님은 제가 많이 그리웠나 봅니다. 할아버지는 얼마나 북한에 남은 가족들이 보고 싶었을까요? 비록 할아버지는 이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에 눈물이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산가족입니다.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가 참으로 좋습니다. 
할아버지 대신 제가 평양에서 냉면을 먹고 백두산을 올라가 보는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하나 된 봄날을 꿈꾸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알쓸신잡에 유희열이 꼭 필요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