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걸 칭찬해1
생일이 부끄러운 건 줄 알았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어린 시절 나를 등에 업혀 길이려니 하고 나선 한밤중 캄캄한 밤 길을 걷는 급한 발걸음 중에 들리는 소리를 기억한다. 등허리 뒤에서 나는 거친 숨소리와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며 가는 밤 길이었다. 몇 번을 눈을 감아도 떠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마치 훤히 보이는 듯 할아버지는 잘도 걸으셨다. 체하고 열이 나는 나를 업고 무려 2킬로 미터나 되는 시골길 언덕 산 길을 올랐다. 그 중간 어디쯤에는 사과나무 과수원이 있었고, 길 곁에는 공동묘지도 있었다. 할부지가 평소 신뢰하는 그러니까 의사 면허증은 없지만 동네 명의라 불리었던 할부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안뱅욱"이 한테 가는 길이다.
왜 잠들면 안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할부지는 그랬다.
내 이름을 부르며 "영미상 자지말어" 하며 두런두런 아픈 내게 하루의 일과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킬로미터의 거리에서 할부지는 삶의 지혜 보따리를 한껏 내게 풀어내 주시기도 했고, 윗집 얼평양반의 과욕이 할부지의 흥분을 불러일으킨 사건들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할부지의 언어 속엔 간혹 일본어가 묻어 있다. 나를 향한 애정이 가득한 호칭은 언제나 "영미상"이었다. 일제의 억압은 잊을 수 없는 삶의 큰 부분이었던 할부지이기에 일본어는 삶의 한 부분이 된 줄도 모르게 녹여져 있었다.
할부지의 등에서 들리는 심장소리와 거친 숨소리를 통해 어디까지 왔는지 더 가야 하는지를 2킬로 미터의 길 목에서 나는 알아차린다. 드디어 안뱅욱이 집에 도착했고, "어서 오쇼야 오메 캄캄헌디 오니라고 욕봤어라우"안뱅욱이의 말이다. 꼭 감았던 눈을 떠도 되었다.
따뜻한 방에 그러니까 병원에 병실 같은 바깥채인지 사랑방인지 모를 200 볼트짜리 붉은 전구 밑이다. 바닥에 깔린 이불은 알록달록 장미가 넓적 넓적 그려진 빨강 이불 보로 야무지게 바느질한 이불 위에 눕혀졌다. 우리 삼촌은 안뱅욱이를 돌팔이라 불렀다. 할부지의 명의와 삼촌의 돌팔이의 간극은 너무 컸지만, 한 밤중 열이 펄펄 나는 나를 보며 할부지는 돌팔이 아니라 돌팔이 아들이라도 급했을 것이다. 그 자락의 온 동네 사람들은 아프면 안뱅욱이게 찾아갔으니 삼촌 말마따나 돌팔이라 하더라도 명의급 그러니까 돌팔이 중 수준급 이상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간간이 들려오는 말로는 "오메 안뱅욱이가 자포실 양반 침놔주고 잽혀 갔당게"하는 어른들의 말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안뱅욱이의 처방과 침술로 열이 내리고 체증이 가라앉게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은 깡시골촌이었다. 그래도 옆동네에 비하면 우리 동네는 양반이다. 우리 동네엔 보건지소도 있었으나 그날 밤은 왜 그 먼 곳까지 가야 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렇게 그 일이 나에게 죽을뻔한 일이었는지 몰랐는데 할부지 말씀에 따르면 죽을 뻔했단다. 또렷이 기억하는 캄캄한 밤에 있었던 그날의 살아야 하는 열망과 살려야 했던 심장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그렇게 사십 년이 훌쩍 넘게 뛰고 있는 심장은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그러나 멈추지 않을 것 같던 힘차고 웅장하게 뛰던 할부지의 심장은 멈춘 지 벌써 7년이 넘어간다. 할부지는 딱 백 년 동안 심장이 뛰었다가 쉬었다. 심장이 콩콩거려야만 살아 있음에 증명이 되는 모든 생명체는 신비롭다. "응애"하고 자궁밖의 빛을 보게 되는 순간까지 잘 다듬어지고 몇 십 년 많게는 백 년 넘게까지 끄덕 없이 쿵쾅거릴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하늘의 섭리를 가슴에 품고 태어난다.
나는 아주 어릴 적 "나는 왜 태어나야 했을까?"라는 질문을 무의식 중에 한 번씩 던졌다. 나는 지금 왜 살고 있지? 그러다가 "어? 얼마 전까지 더웠는데 이제는 춥네? 눈이 오네 왜 춥지?" 추운 날이니 미리 준비해 둔 겨울옷을 깨끗이 꺼내주는 엄마의 손길은 없었지만 "와 눈 온다라고 외치는 중 심장은 벌써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의 표현은 "옷 빼닫이 열어서 따숫게 입어야혀"라고 한마디 하시면 방 웃묵에 자리한 여섯 칸의 서랍장을 열어 동굴 속 사냥하듯 파헤쳐 건진 지난해 입었던 겨울잠바를 하나를 꺼내 입는다. 한 뼘이나 팔 소매가 모자라다는 걸 알면서도 입고 좋아라며, 마당으로 나가면 꼬랑지를 360도 선풍기 날개처럼 돌릴 줄 아는 능력 있는 똥개 미순이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눈을 맞이했다. 왜 태어났는지 질문은 잊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보지 않은 말 "할매 나는 왜 태어났어?"였지만 머릿속으로는 아주 가끔 무의식 중에 생각했던 말이다. 심장이 어디쯤 붙어 있는지 모르지만, 몸 어딘가 멀리에서 잘 뛰고 있다는 의식까지 하며 살진 않는다. 심장이 왜 뛰는지 알게 되는 생물학 배움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답안지 잘 풀기 위해 배운 심장 모양을 적나라하게 각 기관의 이름을 적어 맞추기 위한 중학생의 처음 시작의 흥미로움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내 생일이 가장 부끄러운 날이었다. 그래서 생일을 잘 말하지 않았다. 어릴 땐 나도 내 생일을 잘 몰랐다. 미역국을 참 좋아하는 나였다. 그러나 어떤 날은 여느 날과 다른 미역국이 상에 올라오는 날이 있었다. 소고기미역국이다. 할매는 "오늘 아적이 (아침이) 우리 영미 생을(생일)이여"라며 내 국그릇에는 크게 한 국자 퍼 상위에 올려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했다. 할매는 달력에 내 생일을 동그라미로 표시하지 않았어도 알았다. 그 말을 마치고 나면 할부지와 할매 눈은 잠시 울적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날을 이야기하셨다. 내가 태어나던 날 이야기다.
"나는 우리 영미상이 꼭 죽을 종 알았제 그 핏덩이가 죽을 것만 같았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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