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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스토리 Oct 23. 2024

태어난 걸 칭찬해 2

생일은 부끄러운 건 줄 알았다.

죽을뻔한 나를 두 번 살렸다며 가슴을 쓸던 할부지 할매의 모습은 언제까지나 되새겨 지곤 했다.


태어나던 그날 춥고 어둡던 시골집은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와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아닌 곡소리가 함께 울렸다. 그 시골 동네 수 십 년 된 베테랑 산파는 그날 후로 더 이상 아이 받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작은 심장을 열 달 동안 만들어 세상밖에 내어 놓고 정작 그 어미의 심장은 멈추었다. 고통을 오롯이 한 몸에 안은채 일그러진 얼굴로 콸콸 터져 내린 피는 흰 속옷을 빨간색으로 물들여 피떡이 되었다.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는다. 심장이 뛰지 않는 어미는 죽었다.


죽은 어미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말을 하지도 않는다. 반응이 없다. 어린아이는 귀가 트여 사람들의 소리를 이해하지 못할 때부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아이 저년 낳다 즈그 어매가 죽어 버렸소안" "에효 불쌍한 것" 아이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은 혀를 찼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알게 된 아이다. 죽음이 멀리에 있지 않았다. 아이의 존재와 함께 죽음은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모두가 슬퍼했지만 슬프지 않았다. 슬픈 것인 줄 몰랐다.


심장을 가진 사람들은 1년마다 생일이 온다. 아이의 생일은 어미의 제삿날이기도 하다. 생일 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혀를 차는 소리들이 생일 축하 노래처럼 들렸다.

생일이 되었다고 여느 아이들처럼 선물 꾸러미를 받았던 기억은 없다. 단지 할매의 정성스러운 소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이 최고 맛있는 날이었다. 내 밥그릇 옆에는 정성스럽게 밥 한 그릇과 미역국 한 그릇이 올려졌다. 어미의 젯밥이다. 한살이 먹어질 때마다 노부부는 말했다. "그새 몇 년이 되았어야"라며 세월을 헤아렸다. 어미가 죽은 날이다. 내 나이와 똑같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때문에'라는 국어사전에 명시되었듯 의존명사를 그러니까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이라는 뜻풀이와 너무나 맞게 결국 "나 때문에" 어미가 죽었다는 게 자명한 사실을 몸에 베인체 살았다. 숱한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미는 나를 낳다가 죽었다.

그러니 나는 내 생일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렇게 여겨졌다.

생일을 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학교생활에서도 생활기록부상의 기록만으로 알려지게 된 늦가을의 생일은 거의 잊힐 때쯤이었으니 생일에 축하를 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생일에 축하를 받는 일은 세상 부끄러운 일이었다.


아이는 결혼을 하고 아이 엄마가 되었다. 역시나 아이 엄마가 되어도 별 의미 없는 생일날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생일만큼은 지극히 챙기는 엄마다.

어린 자녀들의 생일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그랬듯이 반 친구들을 집안 가득 초대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차려내고 아이의 기를 세워주는 바빴다. 정작 내 생일은 의미 없다 생각하던 어느 날, 의미가 없다 생각됨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생일을 축복하지 않고 축하해 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자녀들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남을 어떻게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나 소중한 태어남 그 무엇도 한 몸에 두 개를 만들 수 없는 소중한 하나의 심장으로 쿵덕거림을 만들어 내는 일. 생각할수록 소중하고 고귀했다. 만약 그때 나의 심장이 멈췄더라면 소중한 내 아이들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던 날, 나는 왕왕왕 울며 나를 껴안았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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