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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기로에 놓인 인생길

by YYMassart
Y. Y. Massart, <어느 길을 선택할까?>, 2021년 11월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오늘은 어떻게 살까? 작은 선택이 쌓여 우리의 인생길이 정해진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우리가 다다를 인생의 종착지는 정해져 있다. 죽음.


여기(아래) 파울 클레의 <큰길과 샛길>을 소개한다. 수직선과 수평선이 서로 만나면서 큰길과 샛길이 형성되었다. 중앙에 큰 길이 쭉 뻗어있다. 순탄한 길로 느껴진다. 하지만 다양한 색으로 표현된 그 큰길에도 인생의 희로애락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큰길 옆엔 샛길이 많다. 그 샛길에는 좁고 고달픈 고난의 오르막길 내리막길도 보인다. 수많은 길 중에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할까?


화가는 큰길과 샛길의 표현에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다양한 인생길을 강조했다. 파란색은 하늘의 색이다. 하지만 파란색은 삶의 어둠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색유리로 세상을 보면서 그때그때의 느낌을 적곤 했는데 그 역시 청색 유리로 물체를 바라보고는 그 “물체들은 우울한 빛으로 보이게 되었다.”라고 써놓았다. 파란색은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색상이다. 파란색이 슬픔과 고통을 표현해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피카소는 가장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의 그림을 ‘청색 시대’라 불렀다.


괴테가 생각했던 어둠의 색은 파란색이다. 다시 표현하면 빛이 삭제된 공간의 색상이 어두운 파란색인 것이다. 우리는 이 ‘파란 시간’에 하루 일과를 마친다. 살아가면서 ‘파란 시간’을 잘 이용하면 긴장을 푸는 시간이 될 수 있지만 잘못하면 우울증에 빠지는 위험한 시간이기도 하다.


샛길에는 노란색이 많이 보인다. 괴테는 “경험상 황색은 전적으로 따뜻하고 안락한 인상”을 주며, 그래서 “황색은 회화에서 밝고 활동적인 부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흐린 날에 노란색은 쾌활함을 되찾아준다. 한마디로 낙천적인 느낌을 발산하는 노란색은 행복의 색으로 기쁨을 선사한다. 그러므로 노란색은 우울한 분위기를 날려버리고 싶을 때 좋다. 그래서 비관적이고 슬픈 사람에게 좋은 색이다.


색채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노란색은 중심부에서 주변으로 방사하는 색이다. 밖으로 내뿜어지는 열기를 지닌 색상이므로 소리가 퍼지는 색이다. 그러므로 경고의 색에 노란색을 사용한다. 그림을 보자. 인생의 ‘엘로우 카드’가 샛길에 많이 표현되었다. 삶에 엘로우 카드가 나타나면 다른 선택을 하고 올바른 길을 찾아 걸어야 한다. 그런데 샛길에 너무나 많은 엘로우 카드가 있다. 이처럼 무궁무진한 선택이 주어지는 길이 샛길 인생이다.


큰길은 순탄하지만 샛길처럼 재미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표현한다. ‘한 번 사는 인생’. 그렇다. 한 번 사는 인생 다양한 경험, 체험과 다양한 도전을 위해 샛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길엔 많은 고난이 기다린다. 그럼에도 그 샛길을 잘 헤쳐 나가며 한 번뿐인 인생을 알차게 사는 사람도 많다.


이 그림을 보며 ‘남편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보다는 더 많은 샛길을 경험했다. 분명 파란색의 우울한 분위기도 경험했을 것이고 노란색이 날리는 경고 카드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부부가 되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샛길에서 만날 수 있는 다툼과 충돌 같은 갈등은 없었다. 정말 다행히 우리는 평탄하고 평범한 길을 걸었다. 끝없는 대화가 선물한 인생길이었다.


화가 클레의 그림 속에는 질풍노도의 삶을 겪은 사람도 겪지 않은 사람도 도달할 종착지에는 파란색이 우리를 기다린다. 검은색이 아닌 파란색이라 정말 다행이다. 파란색은 신성한 색이며 평화의 색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보고 죽음은 암흑이 아닌 평온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오늘 내가 선택한 방향의 그림 읽기이다. 나를 위한 선택이다. 하지만 내일은 다른 시선으로 이 그림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은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따뜻한 노란색의 짧은 샛길을 선택했다.



파울 클레, <큰길과 샛길>, 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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