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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YMassart Apr 04. 2022

지금은 울기 싫다.

Y. Y. Massart, <프로메테우스의 고통>, 2022년 4월 (루벤스의 그림에서 영향)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그렸다. 카우카소스 산 절벽의 바위에 묶여있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독수리가 쪼아 먹는다. 독수리의 날카로운 부리가 살을 파고들 때마다 고통스럽다. 선지자 프로메테우스는 미래를 아는 신이다. 그런데 왜, 그는 제우스의 형벌을 피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바로 인간을 향한 그의 사랑 때문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맛있는 신의 음식을 나눠주었고, 인간에게 신의 문명(불)을 나눠주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일로 인해 제우스에게 받게 될 고통스러운 형벌을 미리 알았지만, 신들이 누리는 삶을 인간에게 나눠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게다가 머지않아 헤라클레스가 그를 풀어줄 것이라는 자신의 미래도 알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특히 아낀 이유는, 그가 인간을 빚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만들라는 제우스의 명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는 열심히 진흙을 짓이기며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빚기 시작했다. 순간 그의 손이 멈췄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프로메테우스는 진흙에 한 가지를 더 넣고 다시 반죽을 했다. 그것은 바로 눈물이었다. 그 연유로 인간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눈물을 선물했다. (이솝우화 <눈물과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의 배려로 나는 원 없이 눈물을 흘렸다. 쏟아내고 또 쏟아내도 눈물은 계속 솟아올랐다. 쏟아낸 눈물의 양만큼 나의 아픔도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만약 눈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란 생각을 한다. 내가 흘린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꼭 연고 같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의 상처에 바르는 연고. 피눈물을 흘리며 나는 아물어갔다.


지금은 울기 싫다. 우는 것이 힘들어졌다. 눈물을 거부하는 마음은 ‘이제 그만’이라고 외친다. 새 삶을 준비하라는 신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뜩 치솟는 울컥, 그때마다 눈물은 몸 밖으로 샘솟을 준비를 한다. 하지만 나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다시 꾹꾹 누른다. 마음속에 만들어 놓은 눈물 항아리에 저장한다. 그래서일까 가슴 한 구석이 늘 먹먹하다. 아무리 울기 싫어도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때는 거부할 수가 없다. 살기 위해 눈물을 흘린다. 내 삶에 연고를 다시 바른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선물한 눈물은 다양하다. 나는 가끔 상상을 한다. 언젠가 남편과 다시 만났을 때 흘릴 눈물을... 환한 미소와 함께 흘릴 그때의 눈물은 행복이다.



Y. Y. Massart, <눈물>, 2022년 1월 (클림트의 그림에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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