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의 시간들

by YYMassart
Y. Y. Massart, <글을 쓴다>, 2021년 6월



"일할 시간과 사랑할 시간. 그밖에 또 다른 어떤 시간이 필요하단 말인가!" 코코 샤넬(Gabrielle Chanel, 1883-1971)의 말이다. 일요일과 같은 휴식의 날을 가장 싫어했다고 할 정도로 그녀는 창작의 시간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패션계의 제국을 이뤄낸 코코 샤넬은 긴 여정의 생을 1971년 1월 10일에 마쳤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샤넬은 산책을 마치고 방돔 광장(Place Vendôme)에 위치한 리츠 호텔(Hôtel Ritz)로 들어섰다. 심한 피로감을 느낀 샤넬은 침대에 누웠다. 순간 가슴에 통증을 느낀 샤넬은 가정부를 불렀다. "쟌느, 숨을 쉴 수가 없어", 잠시 뒤 샤넬은 "이렇게 우리는 죽는 거야"라고 말한 뒤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일할 시간>은 그렇게 마감되었다.


그녀의 유일한 <사랑할 시간>은 아튜 카펠(Arthur Capel)과의 시간이었다. 칠흑 같은 어두운 시절을 보낸 샤넬의 탁월한 재능을 알아보고 후원해준 카펠은 영국 폴로 선수이자 사업가였다. 그의 도움으로 샤넬은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옷을 팔 수 있는 매장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1919년에 교통사고로 절명한다. 그의 나이는 서른여덟이었고 그녀의 나이는 서른여섯이었다. 훗날 샤넬은 "카펠을 잃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채울 길 없는 공허를 남기고 카펠은 떠났다."라고 회상했다.


TV영화 「코코 샤넬」을 찍은 크리스찬 두가이(Christian Duguay)는 샤넬은 카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다녔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1926년에 탄생한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는 그녀의 상복에서 기원된 것이라고 영화는 해석했다.


불편한 코르셋에서 여성을 해방시켜 준 사람이 바로 샤넬이었다. 코르셋은 16세기부터 여인들의 배와 허리를 속박했었다. 그리고 여성의 활동이 자유로울 수 있게 샤넬은 질질 끌리는 긴치마를 과감히 무릎 근처까지 잘라 버렸다. 심플하면서도 편리한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는 별다른 장식이 없어도 여성의 아름다움과 기품이 유지된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샤넬의 시간은 알찼다. 카펠의 죽음 후, 절망의 늪에 빠져 헤맸을 때도 그녀의 영감과 손은 쉬지 않았다. 평생 창작의 시간을 멈추지 않고 <일할 시간>을 충실히 보낸 그녀의 굳센 의지가 부러운 나는 오늘도 글을 써보려 노력 중이다. 비록 나의 <사랑할 시간>은 마감되었지만 나에게 남은 <일할 시간>을 어떻게든 제대로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나의 <일할 시간>은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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