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존재하길

by YYMassart
Y. Y. Massart, <남편의 산책>, 2021년 3월



남편은 초록색을 제일 좋아했다. 초록색은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하는 봄의 색이다. 그래서 초록색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색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색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색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록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색으로 상징된다.


나는 초록색을 생각하면 두 명이 즉시 떠오른다. 한 명은 초록색이 죽였다는 나폴레옹 1세.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초록색을 증오한 화가 피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1944)이다. 나폴레옹 1세(Napoléon Ier, 1769-1821)는 초록을 선호했다. 그는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한 후, 같은 해 10월 남 대서양 한가운데 위치한 유배지 영국령 세인트 헬레네(Saint Helena) 섬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6년 동안 살게 된다. 평소 초록색을 좋아했던 그는 유배지의 집안 인테리어에 초록색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녹색은 건강을 상징하는 색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녹색 물감 속엔 독 성분이 함유되어 있었다. 1814년부터 '슈바인푸르트의 녹색'(vert de Schweinfurt)이 생산되었다. 이 색은 '비소 녹색' 또는 '파리의 녹색'이라고도 불린다. ‘파리의 녹색’이라고 칭한 이유는 바로 세잔 등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 많이 사용한 색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구리 조각의 비소로 만들었던 슈바인푸르트의 녹색은 20세기 초부터 생산이 금지된다.


비소 중독은 구토와 설사는 물론 위장염으로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는 의학적 소견이 있다. 그렇다. 나폴레옹 1세는 습도가 높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생활을 했다. 그곳은 ‘초록 독’이 용해되기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가스로 변한 초록 독을 흡입하며 생활했을 것이라는 설도 나왔다. 나폴레옹의 머리카락과 손톱에서 다량의 비소도 검출되었다. 물론 나폴레옹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양은 아닌 것으로 검증되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수많은 가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세계를 정복하려 했던 나폴레옹. 그도 결국엔 초록색의 위험은 감지하지 못했던 것인가?


반대로 화가 피트 몬드리안은 초록색을 증오했다. 그는 자주 파리 카페테라스에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가 앉은자리에서 초록색의 나무가 보이면 자리를 바꿔 앉았다고 한다. 그의 시선에서 초록색이 사라져야 마음의 안정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기하다. 자연의 초록색은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긴장을 완화시켜 주는 장점이 있는데 말이다. 화가 몬드리안의 개인 취향이니 더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가 추구한 수직선과 수평선에서 질서와 균형을 연구한 것과 도시와 건물을 선호한 예술세계를 보면 초록을 싫어한 것에 납득이 간다.


초록색을 좋아한 남편. 초록색은 균형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의 색이다. 빨간색의 뜨거움도 아닌 파란색의 차가움도 아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색이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신의 삶이 초록색을 닮길 바랐다.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리고 숲 속을 걸으며 초록의 안정감과 편안함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초록색은 새로운 시작의 색이다. 나는 남편의 2층 서재에서 이 글을 쓰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내 시선에 초록이 보인다. 창밖에 초록색 잎을 자랑하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와 저 멀리 뱅센 숲(Bois de Vincennes)과 하늘이 그리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아니 간절히 바란다. 남편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저쪽 세상에 초록이 존재하기를...




Y. Y. Massart, <2층 서재에서>,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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