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효과(Isolation effect)
부모-자녀 간의 애착 형성 단계가 지난 4살쯤이 되면 아이는 혼자 놀이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때 흔히 보이는 행동은 넓은 공간보다 식탁 밑에 들어가거나 좁은 장롱 안, 혹은 가구와 벽틈 사이에 들어가서 놀고 있는 경우를 관찰하게 된다. 부모가 보기에는 넓은 곳을 놓아두고 굳이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놀이를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답답하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아이가 자율성과 독립성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4~5살쯤 되면 아이는 부모와의 애착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스스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커지지만, 여전히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 존재한다.
그래서 아이는 넓은 공간보다는 상대적으로 아늑하고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좁은 공간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고립 효과(Isolation effect)라고 한다.
고립 효과란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할 때 사람의 심리와 행동이 민감해지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려는 심리 현상을 말한다.
실례로 군대나 기숙사, 교도소 등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할 때 심리와 행동이 격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고립 효과의 실례로는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많은데 누군가 내 곁에 와서 앉거나 남성 화장실 소변기 사용 시 어떤 사람이 바로 옆자리에 올 때 불편함을 느끼는 것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심리적 반응은 '개인 공간'이란 개념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로서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만의 물리적 영역을 보호하고자 하며, 이 영역이 침해당할 때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므로 물리치료실이나 병원 침상마다 커튼을 설치해 놓은 것은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할 환자에게는 필수라 하겠다.
미국 베를렌드주 해군병원 연구소에 어원 알트만(Irwin Altman)이라는 연구원이 이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하였다. 2인 1조로 두 그룹을 만들어서 하나의 과제를 풀도록 하였는데 A 그룹은 과제를 수행하는 10일 동안 주어진 공간에서 떠날 수 없는 조건이었다. b 그룹은 실험기간 동안 자유롭게 산책도 하고 외부 출입이 가능한 조건이었다.
실험 결과 외부 출입이 가능한 고립 조건에 있었던 B그룹의 방은 실험 전.후의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고립 조건에 있었던 A그룹의 방은 침대를 비롯하여 책상 의자 등 모든 부분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려는 흔적이 보였다.
필자가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나무로 된 책상과 걸상을 사용했다. 그 시절 짝하고 함께 사용했던 기다란 책상 위에는 어김없이 예리한 칼로 선 긋기를 한 자국이 선명했다.
이러한 선 긋기가 바로 개인 공간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는 사례로서 짝으로부터 내 영역을 구축하기 위한 고립 효과에 기인한 것이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 책상에 낙서라도 했을 시에는 선생님으로부터 엄한 체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며 서로의 공간을 보장해 주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인간 심리의 중요한 단면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지만 동시에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욕구도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공간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고립 효과가 말해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기업은 이를 인지하고 최상의 업무 효과를 내기 위해서 사무공간의 배치 배열에서도 공간 심리를 적용한다. 사무실마다 책상과 책상 사이 칸막이를 설치하는 것도 고립 효과에 따른 직원을 배려하는 배치이다.
회사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공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자녀에게 일정 공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심리적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유아기 자녀가 구석진 공간을 찾아 들어간다면 굳이 넓은 공간으로 이동시키려 하지 말고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좋다.
좁은 공간은 아이에게 일종의 "휴식처"나 "피난처"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그곳에서 스스로 놀이를 하면서 독립적인 놀이의 즐거움을 느끼고, 동시에 안전감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부모는 아이가 독립적인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아가 형성되는 중요한 단계임을 인식하면서도,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지켜봐 주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아이가 좁은 공간에서 놀이를 한다고 해서 부모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이가 고립 효과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표현할 만큼 자아를 발전시키고 있는 중요한 시기임을 이해하고, 스스로의 독립된 방을 갖기 전 유아기 자녀에게는 아이만의 공간이 확보되는 놀이기구를 제공해 준다면 더욱 센스 있는 부모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