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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Sep 21. 2020

뚜르 드 프랑스. 인간이 자연과 만나 아트가 된 스포츠

런던 라이프

인간이 자연과 만나 아트가 되는 스포츠, 뚜르 드 프랑스


프랑스는 혁명과 시민을 만들었고, 영국은 게임과 스포츠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는 프랑스가 더 철저한지 모르겠지만, 게임과 스포츠 분야에서 프랑스는 영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롤랑 가로스(Roland Garros)가 윔블던(Wimbledon)을 앞설 수 없으며, 에비앙(Evian) 챔피언쉽이 브리티시 오픈(The Open)을 앞설 수가 없다.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더 많이 우승했을 수는 있지만, 리그앙(League 1)이 EPL을 능가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국인이 프랑스인을 부러워하는 하나의 스포츠 이벤트가 있다. 그것은 뚜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다.

뚜르 드 프랑스는 인간이 자연과 역사를 만나 예술이 되는 스포츠다. 21일간 프랑스 전역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 스포츠 팬에게 선사한다. 선수들은 밀밭, 해바라기밭과 포도밭을 지나고, 알프스 산을 오르며 자연과 만난다. 역사적인 성곽과 도시를 지나면서 역사와 만난다. 프랑스가 이토록 넓고 비옥하며 아름다운지 전 세계 사람들은 부러움에 빠진다.

 


올해에는 슬로베니아 선수인 타데이 포가차(Tadej Pogacar)가 우승했다. 20번째 구간에서 드라마같은 역전을 이끌어 냈다. 마지막 21번째 구간은 파리 시내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시간으로 이변이 없는 한 20번째 구간까지의 우승자가 최종 우승을 거머쥔다. 1904년 이후 가장 어린 나이에 우승한 선수가 된 포가차는 스물한 살이다.


마라톤, 그랜드 슬램 테니스, 골프와 같이 지구력과 꾸준한 경기력을 요구하는 대회는 30대 후반의 선수에게 불리하지 않다. 마라톤의 황제 킵초계(Eliud Kipchoge)는 36세의 나이에 2시간 벽을 깨트렸고,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는(Roger Federer)는 38세의 나이에 호주오픈을 우승했다. 사이클의 황제 렌스 암스트롱(Lance Amstrong)이 뚜르 드 프랑스를 마지막으로 우승할 때 나이가 35세였다. 이런 경기에서 21세의 신인 선수가 우승했다.



US Open 테니스 대회에는 페더러와 나달이 불참했고, 조코비치는 16강에서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실격했다. 도미니크 팀(Dominic Thiem)이 생애 최초로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가져갔다. 테니스 빅 3에 번번이 밀렸던 팀은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빅 3가 모두 복귀해도 이제는 팀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브리티시 여자 오픈 골프 대회에서는 골프광조차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소피아 포포프(Sophia Popov)가 우승했다. 고진영을 비롯한 한국의 탑 랭커들이 대거 불참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어서 벌어진 ANA 챔피언쉽도 일부 탑 랭커가 참여하지 않았다. 골프광 정도는 되어야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미림 선수가 극적인 칩인을 세 차례나 선보이며 우승했다.


프랑스에서 스물한 살의 타데이 포가차가 뚜르 드 프랑스를 우승한 날, 미국에서는 같은 나이의 매튜 울프(Mathew Wolff)가 US Open 골프대회에서 끝까지 우승컵을 다퉜다. 낚시꾼 스윙을 하는 한국의 최호성 선수 다음으로 비범한 스윙을 보유한 매튜 울프는 골프의 세대교체뿐만 아니라 골프 스윙의 패러다임도 변화시킬 것 같다. 스윙하기 전에 최대한 안정된 스탠스를 유지하라는 기존의 상식이 파괴될 것 같다. 우승한 디샘보는 기존 선수들과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클럽을 쓰고 다르게 플레이한다. 골프계의 이단아들이 우승과 준우승을 일궜다. 모두 코로나를 기회로 삼아 자신감을 장전한 덕이다.



경쟁이 심한 스포츠 세계에서 탑 랭킹의 선수가 자리를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리디아 고, 김효주, 전인지, 박성현 등이 리더보드에서 스르르 사라진 후에는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고진영 선수는 과연 코로나 이전처럼 압도적인 경기력을 코로나 이후에도 보여줄 수 있을까? 고진영 선수는 브리티시 오픈부터 참가했어야 했다. 나달도 US Open에 참여했어야 했다.

코로나는 스포츠 세계에 많은 신데렐라를 탄생시켰다. 기존 세대가 물러 나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것을 재촉하고 있다. 스포츠에서의 그런 흐름이 다른 사회 분야에서는 나타나지 않을까? 누군가는 그런 흐름을 거스르고 있을까? 뚜르 드 프랑스와 US Open에서 보여준 스물한 살 선수의 활약을 보면서,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새로운 세상을 실감한다.

뚜르 드 프랑스에는 어느 시점까지 페이스를 이끌다가 뒤로 처지는 선수가 있다. 같은 팀 소속의 선수를 이끌어 주는 것이다. 때가 되면 뒤에서 보호받던 선수가 치고 나간다. 페이스 메이커는 뒤를 돌아보지만, 치고 나가는 선수는 뒤를 돌아볼 이유가 없다. 페이스 메이커는 임무를 완수한 후에 주변을 둘러보고 레이스를 회상하지만, 치고 나가는 선수는 오로지 결승점만을 응시해야 한다.



코로나는 희한하게도 나이 든 세대를 타켓팅하고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감기는 잘 걸리는데, 나이가 어릴수록 코로나에는 강하다. 우리가 젊은 세대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너희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 나가서 싸우고 이겨라. 우리는 뒤에 남아서 알아서 살아남겠다.’ 그리고 길을 비켜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 같이 집에 있자! 같이 머무르자!’ 기성세대는 집에 머물러도 상관이 없다. 돈도 있고, 월급도 차곡차곡 들어온다. 월세도 나오고 부동산이나 주식도 오른다. 집에서 표창장, 카투사, 장모님 이야기나 하고 있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나가서 싸우지 않으면 성취할 것이 없다. K방역이 우수하다? 한류가 대단하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는 배낭을 메고 한국 의료와 문화 상품을 팔러 세계로 나가야 한다. 자가 격리만을 외치면서 백신이 나올 때를 기다릴 수가 없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는 젊은이를 14일 자가 격리로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학교는 열어야 하고, 아이들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10년 20년 대기업 CEO를 하면서 코로나가 두려운 사람은 자리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우리는 알아서 살아남을 테니 너희들은 박차고 나가서 일하라고 말해야 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나갈 것을 당부해야 한다. 그게 이번 추석에는 오지 말라고 말하는 부모님의 심정에도 이런 맘이 있다. 추석에 오지 말라는 것은 서울 집에서 은신해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알아서 살아남을테니 너희들은 세상에 나가 번영하라는 의미다.

코로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울프의 스윙이나 디샘보의 어프로치 자세만큼이나 이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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