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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May 08. 2022

이차 대전 종전과 미국의 무기 지원

London Life

이차 대전 종전과 미국의 무기 지원

  

  

오늘은 우리에겐 어버이날이고, 유럽에선 이차 대전이 끝난 날이다. 전쟁은 5월 8일 독일시간으로 저녁 11시 01분에 끝이 났다. 러시아 기준으로는 5월 9일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5월 9일을, 유럽은 5월 8일을 종전일로 삼고 있다. 발트 3국이나 우크라이나 기준으로도 전쟁은 5월 9일에 끝났지만, 이들 국가는 러시아와 같이 기념하고 싶지 않아서 5월 8일을 종전일로 기념한다.


러시아는 5월 9일 ‘승리의 날’에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벌인다. 2차 대전 승전은 9할이 소련 덕분이라고 러시아 사람은 생각한다. 실제로 소련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이 가장 컸다. 러시아는 lend lease 법에 의해 미국이 소련에 지원한 전쟁 물자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그것은 어차피 갚아야 하는 빚이었다며, 미국의 지원을 평가절하하는 사람이 있다.


과연 그럴까?



미국은 소련에게 영국을 통하기도 하고, 직접 실어다 주기도 하는 방식으로 무기를 지원했다. 소련에게 준 물량 규모는 총 14조 원으로, 지금 가치로 227조 원이다. ‘비행기를 몇 대 지원했을까?’라고 주변에 퀴즈를 내면, 대답은 이렇다. 50대? 100대? 혹시 200대? 설마 300대? 답은 비행기 14 000대다. 트럭 400 000대, 탱크 13 000대, 전투화 1천5백만 켤레, 식품 4백5십만 톤, 유류 2백7십만 톤, 면직물 10만 톤 등이다.


소련 혁명 이후에 중공업 우선 정책으로 소련 군사력이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고, 미국 지원은 전쟁 말기에 조금 있었을 뿐이라는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스탈린은 정전회담에서 ‘미국의 무기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다’라고 직접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레시에비치의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에는 2차 대전 당시 소련군 무기 수준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소련군에서 가장 많이 전사한 병종은 보병이었다. 보병 다음으로 전사자가 많은 병종은 놀랍게도 간호병이었다. 간호병은 전장에서 이송되어 오는 부상병을 후방에서 치료만 한 것이 아니라, 전선에 같이 있었다. 기갑 부대가 진격할 때는 간호병이 탱크 후미에 매달려 가다가 탱크가 공격을 받아 무너지면, 다른 탱크에 매달려 있던 간호병이 달려가 공격받은 탱크에서 부상병을 꺼냈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부상자가 생기면, 간호병은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 부상병을 데려왔다.


간호병이 부상병을 데리고 오면, 장교가 가장 먼저 묻는 말은 ‘총은  가져왔어?’였다. 소련 군에게 총은 금처럼 귀했다. 소련군의 무기 열세는 미국의 지원과 함께 반전되었다. 미국에서 제공한 군화를 받고 좋아하는 소련군 이야기, 미국이 지원한 군화가 너무 커서 군화를 끌고 다닌 소녀 병사 이야기는 전쟁을 다룬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소련은 미국에 진 빚을 갚았을까? 전쟁이 끝나고 30년이 넘은 후에 총 9천억 원 상당의 곡물을 주는 것으로 퉁쳤다.


러시아는 미국이 소련에 지원한 물량에 대해 더 이상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미국이 지원한 무기의 위력에 대해서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무기에 대해 러시아는 온갖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꼭 잊지 말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나도 과거에 부모님에게 받았던 물량 지원에 대해 새삼 고맙게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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