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부활절 방학이 끝나고 내일부터 온라인 개학이다. 학교에서 이메일이 쏟아지고, 이웃집에는 도둑이 들었다. 그 와중에 WTI 원유 선물 가격이 -40불까지 내려갔다. 모든 것이 초현실적이다. 그 속에 온 몸을 던지고 있으면 차라리 나을지 모르겠는데, 한 발짝 물러나서 관조하고 있으니 정신이 더 혼미하다. 치매가 온다면, 세상이 이렇게 이상하게 보일까?
톨스토이는 불후의 명작 안나 까레니나를 마지막으로 ‘쓰레기 같은 소설을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간이 흘러 톨스토이가 노망이 들었다. 어느 날 톨스토이가 서재에서 선 채로 책을 정신없이 읽고 나서는 ‘누가 썼는지 대단히 재미있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무슨 책인가 하여 부인 소피아가 가보니 그게 바로 안나 까레니나였다. 안나 까레니나는 누가 봐도 언제 봐도 명작이다.
WTI 원유 선물 가격을 보고 책꽂이에 있는 ‘옵션투자 바이블’이라는 책을 뽑아서 선물 이론가 부분을 찾아보았다. 2003년에 쓴 책인데, 어쩜 이렇게 쉽고 재밌게 썼는지 놀랍다. 쓰레기가 절대 아니다. 마이너스 원유 가격을 한번 설명해 보고자 한다. 원유와 같은 상품은 주가지수 선물과는 다르다. 그래서 나의 전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이제 와서는 모든 게 가물가물하여 전공이라고 해도 더 나은 것도 없다. 그리고 어차피 초현실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거기서 거기다.
어떻게 물건의 가격이 -40불일 수가 있는가? 그것도 얼마 전까지 +40불이었던 가격이 말이다. 카자흐스탄에 가면 온도가 여름에 +40도가 되었다가, 겨울에 -40도가 되는 일은 있다.
배추가 있다고 해보자. 배추야 어디에서나 나지만, 대관령에 커다란 산지가 있다. 그곳에서는 4월, 7월, 10월에 추수가 있다. 배추 거래상 A는 4월에 생산되는 배추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서 대관령에 가서 밭떼기를 한다. 4월 말에 생산되는 배추를 100포기에 40불에 사기로 약정한다. 근데 가락동 시장 배추 도매가격이 점점 떨어진다. 그러면 그 약정한 거래의 가치도 점점 떨어진다. 더 떨어질 것 같아서 배추 거래상 B에게 그 약정을 30불에 넘긴다. 10불 손해를 본 것이다. B가 상황을 보는데 배추 도소매 가격이 시간이 갈수록 안 좋아진다. 시장에 배추를 사겠다는 사람이 없고 배추 가격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배추 가격이 너무 싸니까, 저온 창고에 보관을 해서 김장이 시작되는 시기까지 버텨 볼 수도 있다. 여러 상황을 체크해 본다. 배추는 7월에도 나오고, 10월에도 또 나온다. 창고 비용도 웬일인지 비싸다. 보관해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런 걸 전문 용어로 완전 깡통 찼다고 한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다. 계약 조건을 자세히 보니까, 그 계약에는 배추를 밭떼기로 사는 사람이 배추를 직접 뽑아가야 하고, 7월 생산 배추를 파종할 수 있도록 밭을 정리해 놓을 의무까지 있는 것이다. 배추 가격이 정상일 때는 그런 것은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조항이다.
근데 상황이 꼬일 데로 꼬인다. 트랙터 부품이 캐나다에서 공급이 안되어 트랙터가 대부분 스톱이 되어 있고, 그나마 있는 트랙터도 기사를 구할 수가 없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일하러 나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하루에 20만 원이면 고용할 수 있었던 기사와 트랙터를 2000만 원을 줘도 구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배추만 포기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배추밭 정리해 주는데 어마어마한 생돈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배추를 100포기당 30불에 산 거래상 B가 그 거래를 누군가에게 -40불에 팔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배추 가격이 -40불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1불은 한다. 7월에 인도되는 배추 가격은 +20불이고, 김장철이 가까운 10월에 인도되는 배추 가격은 +40불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배추 가격이란 과연 무엇인가? -40불인가? 1불인가? 20불인가? 40불인가? 아니면 그것의 평균인가?
하여간에 대충 뭐 위와 같은 상황인 것이다.
원유를 공짜로 준다고 해도 당장 원유를 인도받아서는 보관할 곳도 없고, 보관할 곳을 찾아도 보관 비용이 어마 어마하게 나온다. 당장 파이프라인에서 쏟아져 나오는 원유를 받아서 처리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원유 네가 받아! 내가 돈 40불 줄게’ 이런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상황은 오버다. 이렇게까지 오버한 이유는 원유 시장에 참여자가 SK나 SOIL 같은 실수요자만 있는 게 아니라, 가격의 상승과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실수요자보다 투기자가 더 많을 수도 있다. 그중에는 원유 펀드에 가입한 우리 엄마도 있다. 투기자들은 원유를 인도받을 수가 없다. 비용을 떠나서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른다. 이런 투자자들이 ‘어! 어!’하고 있다가 ‘돈 줄 테니까 제발 날 살려줘!’ 이렇게 나온 것이다.
배추 밭떼기를 하는 사람이 배추 거래상만 있었다면 +40이었던 것이 -40까지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밭떼기가 짭짤하다는 말에 정선 카지노에 가다가 대관령에 잠시 들른 사장님들, 돈 꽤나 있는 복부인들이 밭떼기 시장에 참여한 것이다. 그들은 창고 비용이나 밭 가는 비용은 알지도 못한다. 그런 것이 계약 조항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제발 나 여기서 빼줘!’하고는 생돈 40불을 밭갈이 업자에게 안기는 것이다.
블룸버그의 사진이 참 현실감 있다. 헬리콥터가 와서 돈을 뿌리면 딱 초현실주의 그림 완성이다. 톨스토이는 그때 노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옵션투자 바이블을 안나 까레니나에 비교하는 것은 노망이다. 그리고 휘청이는 세계경제도 노망이나 다름없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