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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pr 24. 2020

런던에 와서 꽃을 피우다

런던 라이프

런던에 와서 꽃을 피우다


다른 곳에서 성장한 사람이 우리 곁에 와서 물오른 실력을 발휘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저 친구는 우리 회사에 와서 꽃을 피우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런던에 와서 꽃을 피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손흥민을 포함해서 말이다.


꽃 중에도 런던에 와서 꽃을 피운 꽃이 있다. 바로 등나무 꽃이다. 영어로는 Wisteria인데, 위스테리아는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자란 꽃이다. 어릴 적 시골에 많았다. 등나무를 영국에서는 Japanese Wisteria나 Chinese Wisteria라고 부른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일본 등나무는 시계 방향으로 줄기를 뻗고, 중국 등나무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줄기를 뻗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럴까? 일본 등나무와 중국 등나무는 서로 만나지 않으려고 그랬을까? 그럼 한국에서 온 등나무는 양쪽 방향으로 동시에 줄기를 뻗을까?


런던은 전 세계 대도시 중에 유일하게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더 많다. 땅은 한정되고 집이 땅을 가져야 하니 서로 다닥다닥 붙을 수밖에 없다. 이런 집 형태를 테라스 하우스라고 한다. 모든 땅집은 크든 작든 정원을 가지고 있는데, 영국인은 정원 관리에 자존심을 건다. 영국인의 70%가 자신을 정원사라고 생각한다. 안쪽으로 자신만의 정원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서 집 출입문을 길에 바짝 배치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집에 별도의 대문이 없고 현관문만 있다. 총리가 사는 다우닝 10번지나 11번지도 마찬가지다.


좁은 정원에 다양한 나무와 꽃을 심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집 벽면을 타고 오르는 덩굴나무의 활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왼쪽 사진을 보면, 덩굴나무를 활용한 집과 활용하지 않은 집의 차이가 확연하다. 왼쪽 집이 오른쪽 집보다 비쌀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니까!


예부터 우리나라의 등나무는 쓰임새가 많았다. 등나무로 노인들 지팡이를 만들었으며, 등나무 가지로 바구니를 만들었다. 등나무 껍질은 종이의 재료로 활용되었다. 우리나라는 나무 가지가 집이나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등나무가 점차 사라진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등나무가 런던에 와서 꽃을 피운다.


목요일 저녁 8시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의료업 종사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모든 집이 문을 열고 나오거나 창문을 열고 나온다. 먼발치에서 이웃끼리 서로 손을 흔들고 안부를 묻는다. 창문을 열고 말을 걸어오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다가 등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4월 5월에 꽃을 피우기에, 지금 런던은 파스텔 톤의 자주색 빛이 한창이다.


우리 집에는 등나무 대신에 포도나무가 있다. 이걸 등나무로 바꿔야 한다. 등나무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은 격조가 다르다. 박수를 치러 나와도 등나무 밑에서 나오는 것과 포도나무 밑에서 나오는 것이 다르다. 창문을 열고 나오더라도 등나무 위에서 나오는 것과 포도나무 위에서 나오는 것이 다르다.


등나무가 런던에 와서 꽃을 피웠다. 참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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