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라이프
정의는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영화 ‘변호인’에 보면 검사와 변호사가 E.H. Carr가 빨갱이냐 아니냐를 놓고 벌이는 논쟁이 있다. 검찰의 답 없음과 노무현 변호사의 치밀한 준비가 대조를 이룬다. E.H. Carr는 빨갱이가 아니었기에 검찰의 주장은 무리했지만, 노무현 변호사도 E.H. Carr가 좌파 역사학자였으며 소련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학자였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읽는 책이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며,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다’라는 구절에 흥분했다. 그런데 영국에서 역사 유적과 박물관을 다녀보면,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생각만큼 창의적인 것은 아니라고 느끼게 된다.
옛날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가지고 있는 패기가 좋았다. 카는 Merchant Taylor’s School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왔다. 그가 다닌 머천 테일러라는 학교 이름이 특이하여 오래 기억에 남았다.
둘째 아이가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할 때, 머천 테일러 스쿨도 있었다. 이름을 듣자마자 E.H Carr가 떠올랐고, 시험(11+) 보는 날 같이 가서 학교를 둘러봤다. 학교는 115 헥타르(1 150 000제곱미터)나 되었다. 강을 세 개나 끼고 있었고, 학교에 축구장, 럭비장, 크리켓 경기장이 셀 수 없이 많았고, 조정 경기장과 골프장까지 있었다. 고작 천명의 학생이 그 넓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학교는 다녀야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어마 무시한 주제의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싶었다.
집에 돌아와 책을 다시 읽어 보았고,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은 1961년 영국에서 발행되었는데, 10년 뒤에 소련의 역사학자 로이 메드베데프가 ‘역사가 판단하게 하라’라는 책을 썼다. 한국에서는 황순원의 손자이며 후에 러시아 유학 중에 조선일보 특파원이 된 황성준에 의해 번역 소개되었다. 러시아어 원 제목은 ‘역사의 법정으로(К Суду Истории)’인데 영어 번역본이 Let History Judge로 나왔기 때문에 한국어 판의 제목도 ‘역사가 판단하게 하라’였다.
책 제목이 맘에 들었다. 오랫동안 같이 이사를 다닌 책인데, 런던까지는 동행하지 못했다.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리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책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목이 멋지다기보다는 전체주의적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가 판단하게 하라니? 무엇을 말인가?
멋지거나 거창한 제목에 속아서는 안된다.
정의라는 말도 그렇다. 너무 거창하다. 그래서 정의당이라는 이름이 항상 불편하다. 민주 노동당이라는 이름이 좌파 정당의 이름으로는 가장 좋았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이라는 시민 단체도 있었다. 정의라니? 그 거창한 이름이 싫었다. 그에 반해 참여연대는 겸손한 이름이라서 좋았다.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정의연의 정식 명칭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다. 성노예라는 말은 이용수 할머니가 몸서리치도록 싫어했던 단어라는 사실이 기자회견을 통해 알려졌다. 정의기억이라는 단어는 노무현 변호사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좌파 역사학자 E. H. Carr가 몸서리 칠 정도로 싫어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소설에는 거창한 것이 없다. 거창한 제목도 없고 거창한 주장도 없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대가 주장하는 바는 정의지만 정의만 내 세우면, 그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셰익스피어가 틀리기를 바라지만, 틀렸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정의연과 같이 활동한 할머니 중에 많은 분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인가? 그보다는 정의연이 정의만 주장한 것은 아니라고 믿는 것이 편할 것 같다. 실제로도 정의만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정의라는 거창한 말에 집착한 나머지 할머니 한명 한명의 목소리에 대해서 소홀함이 없었는지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
물론 이러한 되돌아보기는 정의연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서 적용이 필요하다. 셰익스피어가 424년 동안 말하고 있다면, 이제는 좀 귀담아들을 때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