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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우리 Aug 26. 2020

영국 왕실과 러시아 황실, 그리고 애프터눈 티

런던 라이프

영국의 왕실과 러시아 황실, 그리고 애프터눈 티
  

  

런던 시내의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 and Mason)에서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를 하고 왔습니다. 어른 일인당 60파운드, 아이들은 30파운드네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른 한명, 아이 한명 가격분은 디스카운트가 됩니다. 둘째 아이 생일 기념으로 간 건데, 정상가라면 조금 비싸다는 생각은 들 것 같습니디만, 분위기가 좋습니다. 왕실 애프터눈 티가 이와 같을까요? 제대로 된 애프터눈 티를 느끼려면 사보이(Savoy) 호텔이나 리츠(Ritz) 호텔의 애프터눈 티를 가야 합니다.

윌리엄 포트넘(William Fortnum)은 영국 왕실의 시종이었는데, 왕실과 귀족들에게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죠. 그래서 왕실을 나와서 차를 포함한 고급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파는 전문점을 런던 시내에 1707년에 오픈했는데, 그게 지금의 포트넘 앤 메이슨입니다.

영국 여왕은 매일같이 애프터눈 티를 즐깁니다. 여왕이 좋아하는 티는 아삼과 얼 그레이입니다. 티를 숏브레드, 비스킷, 샌드위치, 케이크, 스콘, 크림, 잼, 꿀과 함께 하는 것을 애프터눈 티라고 합니다. 스콘에 크림과 잼을 바를 때에 ‘크림을 먼저 바르느냐? 잼을 먼저 바르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느냐? 찍어 먹느냐?’ 논쟁과 같은 것입니다. 정답이 있겠습니까마는 여왕은 잼을 먼저 바릅니다.


샌드위치는 두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을만한 크기로 잘려야 하며, 빵의 딱딱한 겉 부분은 잘려야 합니다. 홍차에 우유를 넣을 때는 홍차를 먼저 따르고 다음에 우유를 섞어야 하며 우유를 먼저 넣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유를 넣고 티스푼으로 저을 때는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젓지 않고, 앞뒤로 움직여 젓습니다. 저을 때는 스푼과 찻잔이 부딪혀서는 안 됩니다. 차를 마실 때는 한 모금씩 소리 내지 않고 마십니다. 후루루 후루루 마시거나 강남스타일처럼 원샷 때리지 않습니다.


여왕이 마시는 애프터눈 티는 절대 화려하지 않으며 포트넘 앤 메이슨의 애프터눈 티와 같은 정도의 수준이거나 어쩌면 이 보다 검소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윈저성을 다녀왔는데, 윈저성도 전혀 화려하지 않더군요. 최근에 불이 다서 다시 지어진 부분도 중상류층 가정집의 인테리어 수준을 유지했더라구요. 영국 왕실은 어디 가든지 위엄 있지만 화려하지 않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에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이 ‘마지막 짜르(The Lase Czar)’입니다.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쉬를 보면 누구나 러시아 황실의 화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드라마 속의 러시아 황실은 더욱 화려해 보이더라고요.


영국의 왕이었던 조지 5세와 러시아의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는 생김새가 비슷하여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죠. 조지 5세가 1865년생, 니꼴리이 2세가 1868년생이니까 나이도 비슷했습니다. 둘은 어머니가 덴마크 공주들로 이종 사촌간이었고, 서로 친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여러 손녀 중에 알렉산드라를 제일 좋아했고, 그래서 그녀를 영국 왕의 왕비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영국 왕 조지 5세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사촌지간, 조지 5세와 알렉산드라도 사촌지간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로 혈우병 내력을 가진 알렉산드라가 니꼴라이 2세와 사이에 4녀 1남을 낳습니다. 왕위 계승권자인 알릭세이에게 혈우병이 나타났고, 혈우병 치료를 위해 알렉산드라가 요승인 라스푸틴과 가까워지면서 러시아 황실은 민심을 잃었습니다. 결국 20세기 혁명의 파고 속에 러시아 황실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황제는 영국 왕과 같이 휴가를 보냈고, 웻지우드 찻잔에 차를 마셨고, 똑같이 홍차를 즐겼고, 홍차에 우유 타 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황실은 권력을 나누거나 포기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영국 왕실이 마그나 카르타(1215년)부터 배워왔던 방법을 러시아 황실은 왜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배우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던 것일까요?


알렉산드라가 니콜라이 2세가 아니라 조지 5세와 결혼을 했다면 영국과 러시아는 모두 괜찮았을 것 같습니다. 러시아가 아니라 영국이었다면 왕자에게 혈우병이 있어도 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공주에게 왕위를 물려주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황제가 모든 것을 지배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을 것이고, 있어도 통하지도 않았을 것이고요.

드라마라서 더 극적으로 묘사된 것이겠지만, 혁명은 잔인했습니다. 혁명 후에 러시아 국민은 다시 권위적인 정부를 용인했고, 권력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지금도 러시아인은 기꺼이 권위적인 정부를 용인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러시아인은 혁명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혁명이 있었겠습니까? 혁명 전은 혁명 못지않게 잔인했던 것이었겠지요. 모두 니콜라이 2세 황제, 그의 부인 알렉산드라 그리고 요승 라스푸틴 때문이라고 넷플렉스 드라마 ‘마지막 짜르’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통치는 총리에게 맡기고 편안하게 나라의 주인이 될 기회를 왜 마다했을까요? 회사는 워렌 버핏이 가지고 경영은 팀 쿡이 맡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나요? 물론 모두 결과론이지요. 이상은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아이들과 나눈 대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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