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양선생활

한여름의 ‘따아’를 위한 변명

by lemonfresh

나는 한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뜨겁다기보다는 따끈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 내가 한겨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듯이 그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겠다. 내가 한여름에도 ‘따아’를 찾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 향이 풍성하다.

커피가 나에게 주는 즐거움은 맛보다 향이다. 커피 뽑을 때, 커피를 탁자로 옮길 때, 그리고 커피가 마시기 좋을 만큼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맡아지는 냄새를 나는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커피가 아직 뜨거울 때 살살 일렁이면서 이 냄새를 최대한 맡는다. 그런데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이 향을 충분히 느낄 수가 없다.


둘째, 따끈해야 개운하다.

아주 뜨거운 것은 안 된다. 식으면 더욱 안 된다. 커피를 조금씩 마시면서 이 온도를 찾는다. 입안에 머물 때 기분 좋게 따끈한 온도가 있다. 이때의 느낌은 입안이 개운하다는 것이 가장 가까운 표현일 것 같다. 나는 그걸 놓치기 싫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처음부터 이 섬세함을 요하는 즐거움이 삭제되어 있다.


커피 한잔을 마시는 동안 이 온도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나는 커피를 천천히 마시기 때문에 사실 이 온도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몇 모금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때를 지나 식은 커피는 이리저리 밀어 놓다가 버리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어떨 때는 그 양이 반이나 된다. 그러다 보니 좋은 생각이 났다. 그때 거기다 얼음을 넣으면 된다. 그러면 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이 되겠다. 그래서 한번 해 보았다. 모양은 그럴듯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또한 얼른 마시지 않으면 차갑고 상큼한 온도가 지나버린다. 그리고 얼음이 녹으면서 커피가 싱거워진다. 그러느니 차라리 식은 커피를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다시 데우는 방법을 쓰는 게 낫겠다. 이건 내가 가끔 쓰는 방법인데 쌉싸래한 처음 맛과 그윽한 냄새는 다 포기하고 온도만 올리는 데에는 쓸만하다. 그러나 누구에게 권할만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내 탁자 위에 반쯤 남은 커피가 올려져 있다. 버리기는 아까운데 먹어지지가 않아서 밀어 놓았다. 8월 7일이 올해 입추라고 한다. 입추는 말복보다 더 앞에 있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시기다. 여럿이서 커피를 주문할 때 따뜻한 아메리카노 찾아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시기가 곧 온다. ‘따아’를 벗 삼아 가을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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