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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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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Dec 26. 2022

결근을 했다.

지지난 주의 일이다.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하루  출근을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세상 힘들어서 병원도 남편의 도움으로 간신히 다녀왔다.


다음 날은 좀 덜 아파서 출근을 했다. 아침 인사차 교무실에 가니 다들 환영해 주고 좀 어떤지 물어주었다.

“훨씬 나아요. 걱정들 해 주어서 고마워요.”

아프다고 하니까 대우가 좋아졌다. 다들 친절히 대해주었다.


교장실에 들어갔더니 행정실 주무관이 왔다.

“아픈 데는 좀 어떠세요?”

“한 팔십 프로는 나은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물어보았다.

“어제 나 없을 때 학교 잘 지켰죠?”

“어후~ 걱정 마세요. 잘 지켰습니다.”

“나 어쩐지~”

주무관이 나를 쳐다보았다.

“걱정이 하나~도 안 되더라니!”

주무관이 파하하 웃었다.

“아이구 다행이에요. 전 또 걱정하셨다는 줄 알고!!”

사실걱정이 안 되었다는 것은 농담이다. 걱정이 되었다기 보다는 집에 누워있는 맘이 편치 않았다. 


 요새 내가 아픈 일이 잦자 남편이 내게 말했다. “이번 학기 마치고 퇴직해.” 사실 남편이 정년퇴직한 이후로 내 퇴직도 항상 염두에 있었다. 일 이년 조기 퇴직을 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도 아직 내가 이 직에 애정이 있고, 아직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려한 바는 있어도 작정한 바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퇴직은 내가 말할 수는 있어도 남편이 운운할 수는 없는 영역이 아닌가.

“아니 뭐 그 며칠 아팠다고 퇴직하나? 이젠 안 아플 건데?”


정년까지 무사히 가려면 정말로 아프지 않는 게 관건이다. 먼저는 코로나 때문에 아주 힘들었고, 그후로도 비염 기관지염이 끄느름히 이어지고 있고, 식도와 위 벽이 헐어서 고생 중이고, 그 와중에 허리가 갑자기 아프고, 무릎관절도 쏙쏙 쑤시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이젠 안 아플 것’이라고 말은 해도 확신이 없다. 혈압은 아직 괜찮다고 했고, 혈당은 전 단계 관리 중이고, 사실 제일 많이 다니는 병원은 치과이다. 그래도 무슨 일로 병원에 갔을 때 ‘혹시 평소에 드시는 약이 있나요?’하는 질문에 자신 있게 ‘없어요.’하고 말할 정도는 된다.


“교장 선생님, 이제 아프지 마세요.”

“그럽시다. 어제 고마웠어요~!”

병원 치료는 당분간 계속 받을 것이다. 지난번 허리가 아팠을 때도 좀 덜해졌다고 치료를 안 받았더니 도로 심해져서 고생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육십 대가 된다는 것이 의식적으로는 별일 아닌 것 같은데 신체적으로는 자꾸만 빨간 신호등이 켜진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사십 대와 오십 대도 좀 달랐었다. 사십 대까지만 해도 나는 의료보험 건강검진에서 당연히 정상 A가 나오는 것인 줄 알았는데 오십 대가 되자 정상 B가 나왔다. 어쩌다 한 번 그런 거겠지 했지만 다시는 정상 A가 나오지 않았고 대사증후군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래도 아직은 재검받을 정도에는 이르지 않았고 간신히 간신히 유지하는 중이다.


언젠가 손자 호수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네댓 살 무렵의 일이다. 무슨 얘기 끝에 이런 얘기가 나왔다.

“이제 할머니가 몇 년 뒤에는 학교에 안 다닐 거야.”

“왜요?”

“그때는 그만 다녀야 해.”

“왜요?”

“정해진 나이가 되면 그만 다니는 거야.”

“왜요?”

“그게 약속이야.”

그런 약속이 왜 필요한지 호수에게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 호수의 인생 고민은 ‘왜 어린이집에 다섯 번을 가고 두 번만 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쉬는 두 번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오거나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거나 어디로 놀러 가거나 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내일도 또 놀면 안 되는지 물었다. 지금은 호수가 다음 학기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호수의 말로는 학교에 초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하는 오빠가 다니던 유치원에 초대를 받았다. 나는 아주 오래전에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초대를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이제 머지않아 초대가 해제될 전망이다. 누가 이런 것을 법으로 정해놓아 참 다행이다. 물론 법적인 정년에 이르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일정 기준이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개인적인 고민을 덜어주는 것이다. 신체적인 리듬도 고려되어있고 세대교체를 통한 사회적 활력을 유지하는 것도 고려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은 허리가 일상생활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무릎 쑤심도 잠잠하다. 위장은 여전히 조심 중이다. 수면은 하루는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그다음 하루는 노곤하게 자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남은 세 학기는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어서 위안이 된다. 사실 학교의 겨울방학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바쁘고 중요하다. 1월에는 각종 캠프가 운영되고, 2월에는 선생님들 인사발령, 교내 인사조직, 다음 학년도 교육과정 수립, 아이들 반 편성, 입학 및 진급 등 학사 운영 준비 등 거쳐야 할 과정들이 있다. 마치 죽은 듯 서 있는 겨울나무들이 안으로는 눈을 틔우고 새순을 부지런히 준비하는 것과 같다. 그래도 일단은 힘겨운 레이스 끝에 결승선을 지난 달리기 선수처럼 멈추어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나는 방학을 기다리고 있다. 방학이 되면 한 학년도가 (결과적으로) 무사히 끝난 것에 안도하고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어서 방학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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