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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양선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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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Jun 18. 2023

꽃과 술

당신은 모른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무슨 바람이 불어 을 샀다. 두 다발인데 꽃은 서로 다르고 둘 다 연보라색이다. 마침 주말에 딸네 가족이 놀러 온다고 하니 집안 장식에 쓰면 되겠다.


집에 와서 화병을 두 개 찾아서 각각 꽂았다. 나름 신경을 써서 최대한 좋아 보이도록 세팅을 해서 거실장 위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남편이 내가 꽃 꽂는 걸 보더니 마당에서 들어올 때 나리꽃을 한 줄기 잘라 와서는 내가 공들여 모양을 잡아둔 꽃들 가운데에 턱 하니 꽂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헉, 안 돼요."

"왜?이쁘잖어!"

"이쁘긴, 어울리지 않잖아요."

연한 보라색 안개꽃 가운데에 주홍 나리꽃이라니 이게 웬 부조화란 말인가. 그래서 내가 말했다.

"당신 이런 거 잘 모르잖아요."

그래도 남편이 꺾어온 정성을 생각해서 다른 화병을 찾아 나리꽃을 꽂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식탁 위에 놓인 술병에 눈이 갔다. 투명한 사각병인데 맑은 유리의 느낌도 좋고 묵직한 안정감도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아직 술이 조금 남았다는 것이다. 사위가 외국 출장길에 사 왔던 것인데 남편이 가끔 반주로 한두 잔씩 먹는 것이다. 병은 욕심이 나고 술은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고 해서 술을 따라 버릴까 하다가 혹시 몰라 잔에 따라 놓고 은 내가 썼다.


남편이 꽃병 바뀐 것을 보더니 대번에 그 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어? 저거 술병 아냐?"

"맞아요. 꽃병으로 써도 손색없네."

남편이 깜짝 놀라며 내게 물었다.

"남은 술 어쨌어? 밑에 조금 남았었는데"

저런, 쏟아 버렸으면 큰일 날 뻔했다. 더구나 지금 집안에서 유일하게 남편과 대작하는 사위가 내려오고 있는데 자기가 아끼는 술을 버리다니.

"잔에 따라 놓았어요. 다행이죠?"

나는 술 안 먹으니 그런 거 아까운 줄 모르겠다. 남편이 병도 버리지 말라고 하기에  오염시키면 안될 것 같아서 꽃을 다시 겨 꽂고 돌려주었다. 남편이 병을 깨끗이 씻어서 벌 주를 걸러 담아 뚜껑을 봉해 두었다. 그걸 보고 내심 생각했다.

"어이구야... 큰 실수 할 번했네."

이번 일을 거울삼아 나는 술에는 맘대로 손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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