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무슨 바람이 불어 꽃을 샀다. 두 다발인데 꽃은 서로 다르고 둘 다 연보라색이다. 마침 주말에 딸네 가족이 놀러 온다고 하니 집안 장식에 쓰면 되겠다.
집에 와서 화병을 두 개 찾아서 각각 꽂았다. 나름 신경을 써서 최대한 좋아 보이도록 세팅을 해서 거실장 위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남편이 내가 꽃 꽂는 걸 보더니 마당에서 들어올 때 나리꽃을 한 줄기 잘라 와서는 내가 공들여 모양을 잡아둔 꽃들 가운데에 턱 하니 꽂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헉, 안 돼요."
"왜?이쁘잖어!"
"이쁘긴, 어울리지 않잖아요."
연한 보라색 안개꽃 가운데에 주홍 나리꽃이라니 이게 웬 부조화란 말인가. 그래서 내가 말했다.
"당신 이런 거 잘 모르잖아요."
그래도 남편이 꺾어온 정성을 생각해서 다른 화병을 찾아 나리꽃을 꽂아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식탁 위에 놓인 술병에 눈이 갔다. 투명한 사각병인데 맑은 유리의 느낌도 좋고 묵직한 안정감도 마음에 들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아직 술이 조금 남았다는 것이다. 사위가 외국 출장길에 사 왔던 것인데 남편이 가끔 반주로 한두 잔씩 먹는 것이다. 병은 욕심이 나고 술은 어차피 얼마 남지 않았고 해서 술을 따라 버릴까 하다가 혹시 몰라 잔에 따라 놓고 병은 내가 썼다.
남편이 꽃병 바뀐 것을 보더니 대번에 그 병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어? 저거 술병 아냐?"
"맞아요. 꽃병으로 써도 손색없네."
남편이 깜짝 놀라며 내게 물었다.
"남은 술 어쨌어? 밑에 조금 남았었는데"
저런, 쏟아 버렸으면 큰일 날 뻔했다. 더구나 지금 집안에서 유일하게 남편과 대작하는 사위가 내려오고 있는데 자기가 아끼는 술을 버리다니.
"잔에 따라 놓았어요. 다행이죠?"
나는 술 안 먹으니 그런 거 아까운 줄 모르겠다. 남편이 병도 버리지 말라고 하기에 오염시키면 안될 것 같아서 꽃을 다시 옮겨 꽂고 돌려주었다. 남편이 그 병을 깨끗이 씻어서 벌 주를 걸러 담아 뚜껑을 봉해 두었다. 그걸 보고 내심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