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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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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monfresh Aug 02. 2021

뭐 어떻다구 그려.

봄에 집 마당에 앵두랑 보리수가 익었을 때 새들이 날아왔다. 열매를 먹으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고무통을 여러 개 놓고 벼를 심었는데 가을이 되어  알곡이 영글면 새들이 날아온다. 볍씨를 까먹으려는 것이다.


우리 학교 텃밭 상자에 방울토마토 고추 가지 오이가 있다. 아이들이 방학 전에 가꾸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없어서 열매를 따는 이가 없다. 그래도 토마토는 익어간다. 오늘 창문 밖에 인기척이 있어 내다보니 어떤 할머니가 왔다. 발걸음이 가는 곳을 보니 토마토 상자였다. 토마토를 따고 있다. 다른 할머니도 있었다. 둘이 같이 왔나 보다. 몇 개 되지 않지만 고추도 땄다.

나는 창가에 다가갔다가 얼른 숨었다. 혹시 그 할머니들이 나를 볼까 봐 그렇다. 밖에 누가 온 걸 보았을 때부터 토마토를 따러 왔다는 걸 알았다. 발걸음의 방향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상 할머니들이 토마토를 따서 조금 놀랐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리저리 뒤적이며 알뜰하게 따신다. 그 할머니들은 학교 토마토를 당당하게 따는데 나는 뭐가 무서워서 숨었을까? 


먼저 학교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휴일에 동네 사람들이 와서 아이들이 기르는 토마토를 따 갔다. 그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직 조금 덜 익어서 다음 월요일에 따려고 남겨놓았던 것을 주말 동안 동네 사람들이 따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속상해했다. 그런데 그이들은 어떻게 학교에 토마토와 고추가 있다는 것을 알까? 학교마다 똑같은 일이 생기다니 참 신기하기도 하다. 마치 고무통에 벼가 익으면 참새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것과 똑같다. 지나가다 알았든 이야기를 듣고 알았든 새들은 알고 있다. 모든 새가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새인가는 알고 있고, 그 새는 반드시 볍씨를 먹으러 온다.


처음에는 나가서 '토마토를 따지 마시라'고 해야 할지 잠깐 망설였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 집에 날아오는 새들도 내가 먹지 않을 앵두나 보리수를 는 것은 탓하지 않았었다. 개학을 해서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고 토마토를 딸 사람이 있으면 나가서 ‘따지 마시라.’고 이야기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 할머니들이 그 몇 개 안 되는 토마토나 고추를 꼭 먹기 위해서 따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흙에 무언가를 심고 길러서 열매를 거두는 것에 대한 향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가지에 달린채 시들게 하는 것도 봐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은 너도나도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편리하고 깨끗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DNA에는 오래된 농경의 욕구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나 같이  텃밭의 고추도 안 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게 좋아서 아무도 없는 학교를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그 할머니들의 기쁨을 훼방 놓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적어도 이십일 간은 말이다. 하지만 학교에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므로 다른 누군가가 본다면 할머니들의 토마토 수확은 조기 종료될 수 있다. 먼저 학교에서도 그랬었는데 화단의 토마토를 따던 동네 분이 이렇게 말했다고 들었다.

(학교에서는) 따지도 않으믄서 그것 좀 따가믄 뭐 어떻다구 그려?!”


*추기

막상 개학을 하고보니 토마토가 생육을 다 해서 뽑아내게 되었다. 어느날 보니 상자가 깔끔하게 비어있었다. 아마도 시설관리 주사님이 정리를 하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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