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monfresh
Sep 15. 2021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교장실 앞에서 한 작은 남자아이를 만났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인 듯했는데 나를 보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인사를 주고받았으니 이제 서로 갈길 갈 차례인데 아이가 말을 했다.
''교장 선생님, 저 생일 파티해요. 제가 생일이거든요.''
''그으래? 좋겠네!''
''제가 원래 아빠가 안 계신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한테 새로운 아빠가 생겼대요.''
아이가 설명을 했다. 그런데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줄 몰랐고 그 가족들이 생각할 때 내가 거기까지 아는 것은 실례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이가 내게 알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들어주고 공감을 해 주는 게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수원에 엄마 아빠한테 가기로 했어요.''
아이의 표정으로 보아 새로운 변화가 싫지 않고 뭔가 기대를 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가방을 열어 보여주었다. 조그만 장난감 자동차가 들어 있었다. 맥락으로 보아 선물을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누구한테든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하루 일과가 끝나는 시점이니 분명히 내게 처음 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구나. 생일 축하해. 가서 즐겁게 지내.''
''네. 교장선생님. 추석 잘 보내세요.''
내일모레 이틀만 더 지나면 주말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그 안에 나를 개인적으로 다시 만난다는 보장이 없으니 미리 인사를 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 너도 추석 잘 보내~!!''
사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알지만 나는 아이들을 다 알지 못한다. 아이들이 천명이 넘는 데다가 다들 고만고만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일수록 그렇다. 오늘 만난 아이도 2학년이라는데 나를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만한 사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아이와 헤어지고 나서 뒤를 돌아다보니 청소 여사님 둘이 서 있었다. 그 광경을 보았나 보다.
''아유, 어쩌면 그렇게 인사성도 밝고...''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사실 내 생각도 그랬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짠한 마음도 들었다. 보통 아이들의 사회성은 보통 정도의 발달을 보인다. 이렇게 특별히 발달한 데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도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했다. 특별히 나쁜 게 아니라 특별히 좋은 수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교장실에 들어가면서 생각했다. 아이가 새로운 가족에 품은 기대가 충족되기를, 엄마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새아빠를 얻은 것이기를 바란다. 아이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이 다소 위태로운 생각도 들었다. 저러다가 자칫 마음을 다치는 건 아닐지, 저렇게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면 그게 엄마든, 새로운 아빠든, 누구든 간에 용서치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 학생의 일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개인적인 가정사이니 나의 상관 범위 밖의 일이지만 나는 어쩐지 추석 연휴 뒤에 그 아이를 다시 만나 보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냥 헤어진 것에 대해 후회가 들었다.
''이름이나 알아둘 걸. 앞으로 그 가족의 일이 제발 잘 되어야 할 텐데...!''
#교단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