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의 봄바람, 매화를 깨웠네!

- 2월의 여행 / 봄바람과 매화, 두꺼비와 수석

by 김소형

2월 3일, 원래는 위도의 띠뱃놀이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는 정월 초사흗날(음력 1월 3일) 용왕님께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인 띠뱃놀이 행사가 열린다. 예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계속 못 갔던 터라 “옳다구나”하고 네 사람이 같이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격포항에서 위도까지의 배시간을 알아보고 부안군청에 전화를 해보다가 알게 되었다. 올해의 띠뱃놀이는 외부인은 초대하지 않고 주민들끼리만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이를 어쩌나... 하지만 모처럼 여럿이 시간을 맞췄으니 무산시키지 말고 떠나자는 의견들이다. 그래서 목적지가 경남 하동으로 바뀌었다. 길잡이는 ‘길위의 인문학’, ‘우리땅걷기’로 유명하신 문화사학자 신정일 선생님이다.

“걱정하지 마! 내가 길안내는 할 테니까!”

“예, 그럼 저희는 그냥 따라갈게요.”

우리나라 산천의 길이라면 손바닥처럼 환한 신선생님이 계시니, 어디로 갈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시내를 벗어나 한참을 달리니 춘향이가 눈물을 흘리며 5리까지 쫒아왔다는 오리정도 지나고, 우리나라 전통가옥으로 유명한 운조루 고택도 멀리 지나친다. 운조루는 선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명당이란다. 하지만 눈으로만 건너다보고 매화마을로 향한다. 오늘의 여정은 섬진강 매화마을과 악양천 넓은 들판을 내려다보는 조부자집, 그리고 김수로왕의 일곱왕자가 성불했다는 칠불사다.

맨 처음 차를 댄 곳은 광양에 자리한 섬진강 매화마을. 홍쌍리 매실가 앞에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줄줄이 햇볕에 몸을 말리고 있는 장독대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몇백 개는 족히 됨직한 장독대들은 그 자체로 멋진 풍경이다. 길을 따라 가지런히 돌을 쌓아 꾸며놓은 오름길도 예뻤다. 매년 매화꽃 필 무렵이면 매화축제로 여행객을 끌어모으는 동네답게, 사람들이 가꾸고 보살핀 흔적이 역력했다.

“2월 초인데 벌써 꽃을 피워올린 매화나무가 있을까요?”

“글쎄 모르지. 오늘 한 송이라도 보고 가면 성공이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오르니 제법 두께가 있는 대나무들이 빽빽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담양 대나무숲까지는 아니어도 한적한 대숲 산책로가 잠시 숨을 가다듬게 했다.

굵은 대나무 몸통에는 어김없이 여기 왔다는 사람들의 이름자가 새겨져 있다. 조금 이름난 곳이라면 꼭 보이는 이런 낙서들.

아무리 잘난 이름이라도, 아무리 절절한 사랑의 징표라도 이렇게 살아있는 나무에 글을 새기는 것은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운 행동이다. 자연보호는 둘째치더라도 자신의 이름이 지저분한 낙서로 취급된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


대숲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가니 섬진강과 매화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매화꽃 필 무렵이 되면 온통 꽃동산으로 물들 동산, 하지만 지금은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른 시기다. 섬진강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봄을 부르는 차갑고도 시원한 바람. 바람은 이제 얼른 일어나라는 듯 매화나무 가지를 흔들어댔다.

그때였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와~ 꽃이다! 꽃이 폈어요!”

뾰족한 입술을 내민 것 같은 작은 꽃봉오리 사이로 드문드문 몇 송이가 보인다. 바람이 깨운 씩씩한 꽃은 끌어올린 봄기운을 머금어 한두 송이인데도 향이 진했다. 이 꽃향기만으로도 오늘 나들이는 뿌듯하게 기억되리라.

언덕을 내려가 섬진강 유래비 앞에 섰다. 원래는 모래내, 다사강, 두치강 등으로 불렸으나 고려 초부터 섬진강으로 불렸다고. 고려 우왕, 왜구가 침입하자 광양의 수십만 마리 두꺼비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울부짖어서 왜구들이 놀라 도망갔다는 전설이 있다. 아담한 수월정(水月亭) 위에 올라 섬진강을 내려다보았다. 정자의 이름처럼 달 밝은 밤이면 물에 비치는 달빛이 그림같이 아름다울 것이다. 거기에 강변을 따라 매화꽃 흐드러지게 피어있다면 마시지 않아도 취기 오르리라. 신선의 경지가 따로 있을까.

수월정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수월정과 수군좌대, 보호수 느티나무

수월정 옆에는 300살 된 느티나무와 느티나무를 수호하듯 앉아있는 네 마리의 돌두꺼비가 있었다.

섬진진터 수군좌대(수군 별장들의 공적비 좌대)로 추정된다는 이 석조 두꺼비들은 툭 튀어나온 눈과 커다란 입, 투박한 생김새로 미소를 자아냈다. 나라를 지켜냈으니 이제는 매화마을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유적비 앞 공터에는 소녀를 등에 업고 있는 두꺼비 상도 있었는데, 금빛인데다 아주 커다래서 눈에 번쩍 띄었다. 두꺼비의 비장한 표정을 보니, 매일같이 밥을 주고 자신을 아껴주었던 소녀를 지금 막 지네의 동굴에서 구출해온 듯하다. 설화에서는 두꺼비가 지네와 싸우다가 같이 죽었지만, 이 조각상은 살아서 소녀를 업고 나오니 좋았다. 영원히 살아서 마음 착한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계속 지켜주거라, 두꺼비야!

근처에서 점심을 먹은 후 조부자집으로 향했다. 하동의 소나무숲과 백사장도 눈으로만 훑고, 하춘하 노래비가 서있는 포구 70리도 지나 하동으로 가는 길. 하동은 입구에서부터 유난히 배 모양 상징물이 많았다. 배밭, 배나무, 배정원, 배과수원... 시원하고 아삭한 배는 하동의 특산물이다.

하동의 천석꾼 집이라고 알려진 조부자집은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다. 최참판댁은 영화를 찍기 위한 세트장으로 지어진 것이고, 그곳을 지을 때 이 조부자집을 본따 지었다고.

예전에 와봤던 곳이라 설렁설렁 담장을 따라 걸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개울물도 여전하고 정겨운 마당 장독대도 여전하다. 총총 돋아난 파란 꽃도 여전하다. ‘개불알풀’이란 이름이 민망하다고 지금은 ‘봄까치꽃’이라 부르는 작디작은 꽃. 파란 별이 씨앗으로 내려와 앉아있는 것 같은 꽃.

담장 위의 고양이!^^

칠불사 가는 길목, 화개장터를 지나며 우리는 노래 하나로 유명해진 지명들을 읊었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 독도, 목포는 항구다, 여수 밤바다까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점을 찍는 노래도 있는데 전주는 하나도 없어 잠시 서운하다. 경기전이나 전동성당, 아니면 전주향교 은행나무만 봐도 노래가사 뚝뚝 떨어질 만한데.

칠불사는 가야 불교의 발상지라는 것 외에도 아자방(亞字房- 亞자 모양으로 생긴 구들방)으로 유명하다. 한번 불을 때면 49일간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는 전통 구들 아자방은 신라 때 금관가야에서 온 담공선사가 만들었다는 온돌방이다. 말로만 들던 신기한 아자방을 이제야 구경해보는가 싶었는데, 공사중이라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대웅전에 들어가 금빛 휘황한 부처님들께 다녀간다고 인사만 하고 나왔다.

그런데 내려가기 전 칠불사 전래석을 읽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수석이라고? 그러고보니 전래석 옆으로 줄지어 세워놓은 게 바로 수석이다.

초의선사가 다도를 전파한 줄은 알았지만 수석생활을 한 줄은 몰랐다. 우리나라 수석의 역사가 500년이나 되었구나! 초의선사뿐 아니라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소치 허련 등이 모두 돌을 사랑하는 애석가였다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인가 보다. 하긴, 아는 것 털어봐야 개미 발뒤꿈치만할 테니.


칠불사 다원인 ‘구름 위의 찻집’에서 차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하동으로의 나들이 일정을 마무리했다.

봄바람과 매화, 두꺼비와 수석으로 기억될 하루.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돌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수석(壽石)에 대한 취미가 없다. 돌 자체는 좋아하지만 관상용 돌에는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돌은 만지기에 좋은 돌, 촉감과 색깔이 좋은 돌이다. 독특하거나 고운 색깔에, 미끄러지듯이 유연한 흐름을 가진 돌. 한 손에 들어와 매만지기 좋은 돌. 나는 그런 돌을 좋아한다. 2년 전 이사할 때 모아두었던 돌들을 다 버렸는데, 두어 개는 남겨둘 걸 그랬다. 쓰다듬을 돌 하나를 찾아봐야겠다.


아, 하나만 더 적어야겠다. 오늘 봄기운을 간질간질 숨기고 있던 산을 바라보며 나는 22년 전 태국에서 만났던 아기코끼리를 떠올렸다. 그때 쓰다듬었던 아기코끼리의 부숭부숭한 머리가 오늘 차창 밖으로 내다본 산 같았다. 아기코끼리의 수줍게 접은 귀와 몽실한 엉덩이가 초봄 새파랗게 일어나는 산 속에 숨어 곰지락거리는 것만 같아 혼자 속으로 웃었더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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