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 안과 밖

소호 단상_4

by 김소형
1.jpg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어떻게 '나'라고 인식하는 걸까. 나는 어릴 적부터 그것이 궁금하였다. 나를 왜 남과 다르다고 인식하는 걸까. '나'에 대한 이 불편한 인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옆에는 늘 나를 보는 내가 있었다. 이 '보이지 않는 나'는 내가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집에서 놀거나 소풍을 가거나간에 늘 그림자처럼 나를 쫒아다녔다. 나는 다른 아이를 보듯 나를 느끼거나 볼 수 있었다. 그런 심리적인 거리 때문에 어릴 적의 나는 늘 따로 겉도는 것처럼 보였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어릴 적에는 내가 왜 주변과 섞이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찾아낸 이유는 내향적인 성격 때문이라는 거였다. 나는 성격을 바꾸려고 노력했고, 기자와 같은 활동적인 직업을 통해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려 애를 썼다. 이런 노력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주변에 사람이 많고 적음을 크게 의식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가 주변과 섞이지 못했던 것이 단순히 성격 탓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나를 보호막처럼 감싸고 있던 자의식 때문이었다. 작은 골방에 엎드려 책을 읽다가 방으로 들어서는 동생을 보고, "왜 나는 동생이 아니고 나일까?" 의문을 가졌던 초등학교 5학년때 그날이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늘 내가 낯설었다. 이러니 내가 또래 아이들과 어떻게 편하게 어울릴 수 있었을까. 학교를 졸업하고 나이를 먹어가도 나는 늘 나를 쳐다보는 내 눈 속에 있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나'는 여전히 나를 뒤따라다닌다. 다만 지금은 색깔이 좀 옅어지고 흐릿해졌다. 가끔씩은 살짝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내가 그렇게 모습을 감출 때는 내가 남과 또는 바깥 세계와 완전히 동화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다. 그럴 때 가장 기분이 좋다. 그럴 때는 내가 갑각류 껍데기와도 같은 '나'라는 껍질을 벗고 맨몸으로 세상과 어울려 있는 것만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안이 있으면 반드시 바깥이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내외(內外)가 있고, 들어오고 나가는 문(門)이 있다. 옷조차 뒤집어 입으면 안 된다. 하지만 언젠가는 안과 바깥의 구분이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되면 '나'와 '남'도 더이상 다르게 구별되지 않고, 내가 너고 네가 나인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모든 구분과 경계의 출발점인 '나'라는 것이 완전한 세상 속으로 녹아 들어갈 그날을 기다린다. 그날이 오면 나는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무화(無化)의 세계로 훌쩍 날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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