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이 가는 길, 나무의 길

<무형문화재, 보고 듣고 맛보다> 소목장 천철석 장인

by 김소형

50년을 담아낸 첫 전시회


능산 천철석 선생은 전통 짜맞춤 가구로 지난 2014년 무형문화재 19호로 지정된 소목장 장인이다.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 전주 서학동에 위치한 아트갤러리에서였다. '50년 외길인생 혼을 담다'라는 주제로 2021년 7월 24일부터 8월 3일까지 열린 이 전시회는 그의 첫 개인전이었다.

첫 개인전이라는 말에 속으로 먼저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느 분야든 몇 년 잠시 공을 들이다가 뚝딱 개인전을 해서 작가란 이름을 달아도 누가 뭐라지 않는 세상이다. 그런데 수십년간 그 작업만을 해온 무형문화재가 이제야 첫 개인전을 가진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세상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단단한 내공이 읽혀졌다. 게다가 그 전시회조차도 직접 나서서 연 것이 아니라, 평소 작품과 장인을 귀하게 봐왔던 (주)신흥콘크리트 이근호 대표의 주선으로 열린 것이다.

전시장에는 거실장과 2층장, 애기장과 문갑장, 반닫이 등 옛 사대부집에 어울릴 법한 고급스러운 목가구 20여 점이 조금씩 거리를 둔 채 놓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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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옮기며 가구들의 매끄러운 모양새와 결을 찬찬히 음미하였다. 하나하나의 완성미로, 어느 공간에 갖다놔도 그 공간의 분위기를 장악할 만한 가구들이다. 초대 손님들이 오가는 1층에 있다가 조금 한산한 2층 전시실로 올라가니 그 느낌이 확연히 전해졌다. 피아노가 있든 안락의자가 있든, 그 옆에 이렇게 결고운 이층장이 서 있다면 그 품위와 아취가 더욱 살아날 것이다.

이 가구들을 만든 소목장 천철석 장인을 전북 구이면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장인공방'이란 팻말을 내건 집 안으로 들어서니 살림집에 잇대 커다란 작업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는 개인전에서 보았던 첫인상 그대로 소탈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덩달아 편안해져서 마주앉았다.


장인의 작업실


작업실의 냄새는 작가들에게 그의 체취와도 같다. 화가의 작업실에 가면 대개 유화물감 냄새가 물씬 풍기듯이, 소목장의 작업장에서도 나무 냄새가 가득했다. 실내 작업장도, 실외 작업장도 나무들이 여기저기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바람이 통하는 열린 공간이라 나무 냄새가 흘러나갔기에 망정이지, 밀폐된 공간이었다면 숨이 막혔을 것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장인의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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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가 참 좋은 재룐데,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특히 이런 무늬는 같은 느티나무라도 다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여기 봐요, 이쪽은 그냥 나무 무늬지만 여기 아랫쪽에는 눈이 있잖아요. 이런 게 참 귀하거든요, 찾기가 쉽지 않아요."

그냥 평탄하게 자란 나무한테서는 이런 눈 같은 무늬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자라기 힘든 환경에서 온 힘으로 버텨내려 애를 쓰는 과정속에서 밑동 부근이 울퉁불퉁해지고 그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눈 같은 무늬가 생겨나는 거라고. 이런 나무를 '용목(龍木)'이라 부르는데 느티나무 중에서도 가장 귀하게 여기며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나무가 사람과 닮았다 하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사람도 그렇지 않던가. 큰 고생과 시련 없이 자란 사람들은 유순하고 부드러우나 솟구쳐오르는 내적인 힘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고생은 주름과 그늘을 만들지만 그만큼 그를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강인함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용목인 셈이다.

가구를 만드는 데 최고로 치는 것은 단연 느티나무(괴목)지만 그밖에도 참죽이나 먹감나무, 오동나무, 똘배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을 용도에 따라 사용한다. 하지만 수입목은 쓰지 않는다고 했다. 나무의 질이 다르진 않지만, 기후가 달라 팽창과 수축이 다르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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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이 들려주는 일화 하나가 재미있었다.

"한번은 캐나다산 수입목이 들어와 세워놨어요. 그런데 어느날 교수 한분이 오셔서 '예전에 왔을 때도 이 나무를 봤는데 아직 안 쓰셨네요'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얘는 외국에서 왔잖아요. 얘도 우리나라에서 사계절을 겪어봐야죠. 4~5년은 지나야 우리 계절이 몸에 배지 않겠어요?"

살아있는 나무도 아닌 죽은 나무인데, 마치 사람처럼 자신이 있어야 할 공간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신기했다. 아무리 건조를 잘 시켰다고 해도 나무는 기온과 습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인은 가구를 만들 때면 그 가구가 들어가 '살' 집을 생각하면서 만든다. 가구도 '살아있다'는 사실은 장인을 만나면서 얻은 귀한 깨달음이었다.

작업장 한쪽 벽에는 동양화 한 폭을 보는 것 같은 나무판이 세워져 있었다. 깊은 산속에서 가느다란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 같은 무늬, 먹감나무였다. 먹감나무 무늬도 감나무 가지가 꺾이면서 생긴 상처에 빗물 등이 들어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생명을 가진 것 중 절로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인지, 먹감나무의 그림 같은 먹빛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전주장의 세계


그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는 어떤 가구가 놓여 있는가를 보면 안다. 거실에는 거실장이 놓이고 안방에는 문갑장이, 서재에는 책장이 놓이듯이 가구의 쓰임새는 그 공간의 쓰임새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마다 목가구의 모양새와 특징이 다르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알 턱이 없다.

"전주장이 면을 조각조각 분할해서 만든다면 남원장은 뼈대가 가늘면서 면을 넓게 쓴다는 특징이 있어요. 그래서 그 약한 면을 잡아주기 위해 이런 거멀잡이1)를 많이 댔죠. 남원장도 장석을 많이 들어가면 멋있어요."

하지만 장인이 오래 전부터 천착하고 있는 것은 '전주장'이다. 전주장은 말 그대로 전주지역에서 주로 생산되어 사용되었던 장롱을 말한다. 보통 위의 여닫이문과 아래 반닫이를 결합한 이층장의 형태로, 옷을 넣어두거나 작은 물건들을 보관하던 용도로 쓰였다.

"요즘 수납공간 있는 거 많이들 찾잖아요? 전주장에는 이미 그게 넉넉히 들어 있었어요. 옛날에 전주는 부호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잖아요. 그런데 딸을 결혼시킨다고 혼담이 오고가서 날을 잡으면, 제일 먼저 일 잘하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집으로 들이는 거예요. 일꾼은 그 집에서 숙식하면서 장을 만들죠. 딸이 필요로 할 만한 수납공간을 차곡차곡 집어넣어서 말예요. 요즘 말하는 비자금 공간 같은 것도 집어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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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장의 종류로는 2층장이나 3층장 외에 크기가 작아서 족보나 문서, 서류 등을 넣어두는 데 주로 쓰였던 애기장도 있고, 거실장으로 쓰기 좋은 문갑장도 있고, 2층장보다 조금 소박한 형태의 반닫이나 머릿장도 있다. 머릿장으로 부르는 단층장은 사극에서 흔히 사랑방이나 머슴방 머리맡에 놓여있던 것으로 머릿장 위에는 이불 등을 개어서 올려놓고 장 안에는 속옷 등을 넣어두는 용도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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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장을 보면 전통가구가 으레 그렇듯이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에 홈을 파서 끼워 넣는 결구법으로 만들었다. 주먹장이나 사궤맞춤 방식을 보면, 들어오고 나옴이 서로 딱 들어맞아 못을 사용한 것보다 훨씬 견고하고 아름답다. 이런 짜임새 외에 가구 앞면에 붙어있는 화려한 금속장식들이 멋스러움을 더하는데 이 장식들은 '장석'2)이라 부르는 것으로, 구리와 니켈의 합금인 백통으로 만들어 붙인다. 백통은 5백원짜리를 만드는 그 재료다. 옛날에는 백통이나 놋쇠 대신 무쇠 장석을 사용했다.

"옛날에 그 장석 만들라면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그거를 소변통에다 담가놔요. 쇠를 썩힐라고. 요즘 검은색 장석은 칠을 한 것이죠."

장석은 앞바탕 뿐만 아니라 경첩, 들쇠, 고리, 귀장식(가구의 모서리 부분을 보강해주는 장석) 등에 두루 쓰였다. 가장 흔히 보이는 것은 나비 모양 장석이지만 그밖에도 박쥐, 거북이, 연꽃 같은 동식물이나 자연의 형태도 있고, 기하학적인 모양이나 기복·벽사 등의 뜻을 지닌 문양도 있다. 가구 전면을 감싸안은 거머리 장석은 전주장의 특징 중 하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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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은 말하자면 여자들의 화장 같은 거예요. 옷을 다 차려입고 마지막 단장을 하는 것과 같죠."

그런데 이 멋스러운 전주장이 이제는 거의 사라져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로 장인은 두 가지를 꼽았다.

"옛날에는 물건을 쓰던 사람이 죽으면 그 물건을 불태웠어요. 그래서 전주장이 많이 없어졌고, 또 60~70년대가 나전칠기 호마이카가 아주 유명할 때거든요. 그거 6자~7자짜리, 그땐 그게 큰 거였으니까, 그거 하나 주고 전주장을 가져가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전주장이 다 사라져버렸죠."

명품으로 유명하지만 실물로도 사진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전주장, 하지만 실물이 없다면 명성이 어찌 오래 갈 수 있을까. 천철석 장인의 손끝에서 전주장의 명성이 되살아나길 빌 뿐이다.


나무의 길, 천철석 장인의 길


2001년 전북 구이면 두현리에 ‘장인공방’ 문을 열고 정착한 천 소목장은 전통가구 작품 활동에 몰두하면서도 틈틈이 사회 공헌활동을 이어왔다. 전라북도교육청이 운영하는 목공체험센터를 맡아 8년여 전부터 꾸준히 초중고생 목공체험수업을 진행해오고 있고, 현재 전주공업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전주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목공수업도 해왔는데 그 수업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잠시 중단중이다. 장인은 사람들에게 전통가구를 알리기 위해 완주 와일드푸드축제나 순창 장류축제 등에서 목공 체험을 시연해보이기도 했다.

그가 경제적인 이득을 앞세우지 않고 이렇게 뛰어다니는 것은 전통가구의 아름다움과 그속에 깃들어 있는 정신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전통가구가 비싸기만 하고 실제적인 효용성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전통 목가구의 알뜰한 쓰임새와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미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아이들도 나무를 만지다 보면 재미 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바로세우는 길을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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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들이 시간 속에서 빛을 잃고 낡아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것들도 있다. 고전 음악이나 오래된 물건이 그렇고, 좋은 사람도 그러하다. 때로는 그 '좋음'을 알아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한다. 좋은 것은 대개 자기를 내세우지 않아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 목가구에 닿는 눈길도 그렇듯 찬찬히 머문다. 나무로 만든 물건들은 쓰다듬지 않을 수 없는데, 눈으로 먼저 쓰다듬고 그 다음엔 손으로 매만지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매만지다 보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고 고요해진다. '나무'가 가진 이상한 효력이다. 공장에서 합판으로 찍혀나온 것이 아닌 손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대개 이런 효력을 발휘한다.

소목장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나무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사람이다. 살아있을 때보다 오히려 생명이 다한 뒤 사람 옆에 오래 머무르는 나무, 장인은 그 나무 속으로 길을 내는 사람이다. 나무가 그에게만 보여주는 길은 수고스럽고 공이 많이 드는 길이지만, 그래도 기꺼이 그 길을 걸어가면서 장인은 점점 나무를 닮아간다. 한걸음씩 나무 속으로 걸어들어가면서, 종래에는 그 스스로 커다란 한 그루의 나무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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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멀잡이 : 모서리에 걸쳐 대는 쇳조각으로 ㄱ자로 꺾어져 있다.

2) 장석 : 목가구나 건조물에 장식, 개폐용으로 부착하는 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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