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있던 것 캐내기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것들

by 김소형

잊어버리기 전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 깊이 묻혀버리기 전에.

일단 떠오르는 대로 적어본다.

학교 갔다오면 나른하게 햇볕속에 잠겨있던 마당,

담벽 위를 어슬렁거리던 고양이, 뒷집 정원으로 통하는 작은 문,

순하고 말이 없던 옆집 아이들, 오누이.

엄마를 닮아 눈이 커다랗고 슬퍼보였던.

우리 옆집이 아니라 정확히는 우리집에 세들어 살던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 가족이 이사오던 날, 나는 시멘트 담 너머로 내다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기에 급히 머리를 내리다가

시멘트 담 모서리에 턱을 찧었다. 피가 났었다.

아프다기보다는 좀 창피했던 기억이 난다.

오누이는 가끔 우리 자매랑 마당에서 같이 놀기도 했는데

뒷집 정원으로 들어가보자고 속닥거리기도 했다.

마당 뒤쪽에는 아이 혼자 들어가기 좋을 만한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뒷집, 커다란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정원 구석이었다.

일반 가정집에 어울리지 않는 큰 나무들 때문에 그곳은 마치 비밀의 숲 같았다.

소심한 우리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작은 열쇠만 만지작거렸다.

문을 열어 살그머니 안을 들여다보기는 했던가.


오누이는 우리집에 몇년인가 살다가 이사를 갔다.

근처 공장에서 공장장 일을 하던 아이아빠가

술을 마신 뒤 돌아오는 길에 사고사를 당한 뒤였다.

동네 사람들이 쯧쯧 혀를 찼다.

젊은 사람이, 서울서 대학도 나왔다던데 에그... 애들엄마랑 애들 불쌍해서 워쪄.

우리는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이사를 갔다.

나는 오누이 엄마의 커다랗고 슬픈 눈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조용하게 웃던 여동생과 무뚝뚝한 듯 하면서도 늘 여동생을 챙기던 큰 아이.

큰 아이도 나보다는 한두살 어렸던가. 그 아인 옥상에서 눈이 빨간 토끼를 키웠다.

특별히 챙겨준 것도 없지만 동생 같던 아이들이었다.

속으로 마음이 오래 아팠다.


많은 것들이 기억 속에서 사그라들고 있다.

고등학생 때 불어수업 시간, 선생님이 문득 창밖을 쳐다보길래

따라서 쳐다봤다가 꼬리를 길게 끌고가는 기차를 보았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아침 첫 수업시간이었다.

지평선에 하얀 줄을 긋듯이 지나가는 기차.

찰칵,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은 그 순간.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들이 스냅사진처럼 지나간다.

나는 불어를 좋아했고 불어 선생님도 좋아했다. 여자분이었다.

첫 수업시간. 꽃을 불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플뤠흐 fleur"

내가 대학에서 전공을 불문과로 선택하게 한 첫 수업이었다.

fleur, 내가 그 단어를 발음했던 첫 순간 공기의 진동을 기억한다.

놀라웠다. 똑같은 사물인데도 다른 소리로 불러주면 다른 것이 되는

묘한 느낌이었다. 소리의 반향, 사물의 확장.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생긴 지 얼마 안 됐는데

시내 한가운데서 좀 비껴나 있어서인지 안개가 자주 끼었다.

주위가 논이고 밭이었는데, 아침 일찍 등교하면 안개가 채 걷히지 않아

안개밭을 걷는 기분으로 운동장을 가로지르곤 했다.

나는 안개가 좋았다. 단번에 한번에 모든 걸 감싸버리는 안개.


여고, 여중... 중학생 때 제일 먼저 기억나는 건 중창단이다.

난 알토다. 소프라노와 메조의 화음에 어떻게 화음을 맞춰야 하는지 안다.

소리가 화음을 이루면서 섞여들 때의 기쁨도 안다.

우리 셋 중창단은 초등 때 합창단 멤버였다.

같은 중학교에 와서 음악시간에 우연히 같이 노래를 했다가

"너네 중창단 해라" 해서 그리 되었다.

무슨 행사 때면 앞으로 나가, 같이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심한 곱슬머리 소프라노, 노랠 잘했다. 이름이 선미였던가.

만약 방금 떠오른 이 기억이 맞다면, 인간 뇌세포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해야만 한다.

그 아이와 나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단 한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합창단 활동 외엔 관심사가 서로 달랐지 싶다.

아무튼 우리의 화음은 정말 멋졌다. 지금 생각해도 그랬다.


이것 하나만 더 적자.

내가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래 전에 받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생각하니 초6때 같다. 고등학생때 받았다면 분명 기억했을 것이다) 한 권의 노트였다.

누가 줬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평소 나와 가깝게 지내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것만 기억한다.

왜냐면 그 아이가 내게 그 노트를 주었을 때 난 의아해했기 때문이다.

왜? 왜 나한테 이것을?

도톰한 갈색 표지를 가진 그 노트는 아이들 용이라기보다는

대학생이나 어른들이 쓰기 좋은 두꺼운 노트였다.

그 아이는 내게 그걸 건네주더니 사라져버렸다.

(그때 그리 특별한 말을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자기가 썼다면서 준 걸로 기억...)

아이가 간 뒤 그 노트를 펼쳐보고는 깜짝 놀랐다.

200-300매는 됨직한 두꺼운 노트에, 첫장부터 끝장까지 시가 적혀 있었다.

중간중간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나무 시에는 나무 그림... 그렇게.


이성에 대한 촉수로는 진화가 덜 됐다 싶을 정도로 무뎠던 나는

(대학 가기 전에는 연애, 짝사랑... 이런 단어도 글자로만 알았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걸 줬지?" 혼자 생각하다가 그냥 대충 던져두었다.

그리고 그 노트는 이사갈 때마다 다른 책들에 끼어 전전하다가

어느날 잃어버린 듯 싶다. 어릴 때부터 주고받은 편지는 따로 모아뒀는데

그속에 안 보인다...ㅠㅠ


초등학생 때 빼곤 여중-여고... 남자애를 만날 일이 없었는데

교회에 잠시 다녔지만 그냥 그뿐이고. 누굴 만났어야 짐작이라도 해보는데

전혀 오리무중이다.

그 노트의 모양과 색깔과, 받은 순간도 기억하는데

머뭇머뭇 그걸 주고 가버린 아이도 흐릿하게 생각나는데. 정작 그 당시의 내 나이는 잊어버렸다.

너무 오래된 얘기긴 하다. 게다가 스토리가 없는

물건 하나의 얘기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

어느날이지 않았나 싶다.


살아간다는 것이 시시하고 별 볼일 없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조용히 앉아 수면 위로 떠오르는 기억들을 펼쳐보면 참 신기하다.

그 자잘한 시간들이 이렇게 놀라운 순간들을 품고 있다니!

지금은 4월의 따듯한 봄밤.

잊어버릴까봐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

지나간 일들이 눈부시다면 지금도 눈부셔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 활짝 웃으며 살자. 지나면 지금도 눈부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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