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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호 Oct 14. 2022

활, 다시 궁사로 서다

<나는야 활 쏘러 간다> 7

지난 몇 달간 활을 쏘지 못하면서 그만큼 마음이 편치 않았다.

활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대’ 같았다. 또는 내가 남자라 치고, 콧대 높은 여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서 내 사람으로 하고 싶지만, 그녀를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은 보석도 돈도 옷도 아닌, 나와 함께 하는 시간.

“날 소중히 여긴다면서요. 그러니 매일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줘요.”

지금은 아무래도 바쁘니 일 년쯤 있다가 다시 만나면 안 될까, 하고 의중을 떠봤지만 그녀는 “흥!” 하고선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릴 기세다.

그래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내 점심시간을 그녀에게 내주기로 했다.

이대로 그녀를 떠나게 한다면 나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후회할 것이다.

점심은 김밥이나 도시락 등 어떻게든 먹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주 초부터 그녀를 만나러 다시 천양정에 나가고 있다.

몇 달 쉬긴 했지만, 내 팔과 몸이 그녀를 기억하고 있어서 금세 적응이 되었다.

힘만 조금씩 더 기르면 된다.

불어로 활은 l’arc, 남성 명사인데 나는 왜 활을 ‘그녀’인 것처럼 느끼는지 모르겠다.

화살(la Flèche)은 여성이니, 그리고 화살 없이 활은 쏠 수 없으니 여성으로 느껴도 무방하겠지.

활은 서늘하고 깊은 눈매를 가진 매혹적인 여인, 자신에게 헌신하는 사람에게만 그윽한 미소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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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다리를 팔자(八)로 벌린 자세로 어깨와 허리를 펴고, 줌통을 바른 자세로 잡은 뒤

깍지손으로 부드럽고도 힘있게 끌어당기면 된다.

나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기울이던 습관을 거의 고쳤다.

(예전과는 반대로 그녀에게 쏠리듯 하면 된다)   

  

천양정 공고판을 보니, 바람 맑고 하늘 청명한 계절인지라 매주 전국 단위 시합이 계속 열리고 있다.

지난주 대회에서는 내가 천양정에서 존경하는 어르신 두 분이 나란히 노년부 1,2위를 거머쥐셨다.

와, 역시 실력 짱이시다!


‘그녀’에 대한 내 소박한 바람은 어느 대회건 나도 한 번 나가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선배님들 하시는 말씀이야, 잘 쏘든 못 쏘든 뭘 신경쓰느냐고, 대회에 나가고 싶으면 나가면 되지 하시지만, 명색이 대회인데 나가서 한 발도 못 맞추고 내려오면 쓰겠는가. 명중률이 보통 5발에 3중은 해야 고개라도 디밀어보지 싶다. 꾸준히 하면 아마 내년에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을 읽은 그녀가 지금 내 귀에 속삭인다.

“내년이며 대회며,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지금만 생각하시지! 매일 꾸준히 하기가 쉬운 줄 알아요?”

그렇다. 길게 생각하기엔 벅찬 하루, 지금만 생각하련다.

휴궁을 해야 해나 엄청 고민했었는데, 결국 활을 놓지 않고 다시 하고 있는 것이 나 스스로도 뿌듯하다.

이름이 거저 얻어지던가. 작가는 글을 써야 작가고, 궁사는 활을 쏘아야 궁사다.

작가로, 궁사로 좀 더 집중하며 살자고 다시한번 주먹을 쥐고 있다.

(음... 악력도 키우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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