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습지 위를 날고...

- 1월의 여행 / 탐조 나들이에 따라나서다

by 김소형

전라남도에서 산이 가장 많다는 도시, 정원과 습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 순천에 다녀왔다. 소풍 삼아 가는 거라지만 일행 중에는 숲해설가 겸 조류연구가도 끼어 있어, 그냥 소풍이 아닌 탐조 나들이가 될 거란 기대가 있었다. 새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은 도심 텃새 외에는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화려하고 멋진 군무는 인터넷상에서 감탄하며 들여다봤을 뿐이다.

순천에 도착하니 1월 중순의 한파 예고를 비끼고 따스한 햇볕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먼저 흑두루미를 위해 낟알을 뿌려놓는다는 들판으로 차를 몰았다. 가능한 소음이 나지 않도록 슬금슬금 차를 몰아 볏짚을 세워둔 장소로 향한다. 탐조인들이 볏짚 뒤에 숨어 새를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자리다. 먼저 온 사람들이 커다란 카메라를 세워둔 채 망원경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만큼 들판 한가운데 무리지어 있는 까만 새들이 바로 흑두루미다. 멸종위기종이자 순천시의 시조(市鳥)인 흑두루미.

1.jpg
3-3.jpg

흑두루미, 두루미를 한자로 말하면 학(鶴)이니 바꿔 부르면 검은학이다. 일행이 건네준 망원경으로 검은학을 보았다. 길게 뻗은 하얀 목에 검은 날개와 몸, 긴 다리. 우리가 갔을 때는 낟알을 먹느라 바쁜 때여서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럴 때는 온통 까매서 그냥 검은 새들로 보인다. 나 역시, 그러려니 하고 보아넘겼다. 정작 감탄한 것은 순천에 다녀온 직후 인터넷에서, 내가 서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찍은 탐조인의 사진을 보고서였다.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모습, 내려앉는 모습, 우아한 날갯짓... 학춤을 추던 선비들이 바로 저런 몸짓을 보고 따라했구나 싶은 모습이었다. 그날 날아올랐다면 우리 일행들도 보고 환호했을 모습이다.

1.jpg
2.jpg
KakaoTalk_20220118_004055632.jpg

자리를 이동해 순천만 습지 갈대밭으로 향했다. 170만 평에 이른다는 갈대밭, 시선이 가닿는 곳까지 펼쳐진 드넓은 갈대밭은 파란 하늘과 흰구름을 머리에 이고 당당했다. 나무 데크길을 사박사박 걸으니 내 몸의 묵은 기운이 깨끗하고 맑은 공기로 교체되는 느낌이다. 갈대잎들이 바람에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무척 듣기 좋다는 내 말에 조류연구가인 박선생님이 덧붙였다.

“이 소리도 좋지만 밤에 오면 갈대뿌리를 갉아먹는 칠게 소리가 들리거든요. 그 소리도 정말 좋아요.”

예전부터 듣고 싶은 소리가 있었다. 청개화성(聽開花聲), 연꽃잎 벙그는 소리. 다산(茶山)은 여름 새벽 연못에 배를 띄워 연잎 많은 곳으로 가,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연꽃잎이 벌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이후 듣고 싶은 소리가 하나 더 생겼다. 갈대뿌리를 갉아먹는 칠게 소리. 야밤의 조용한 습지를 자그락자그락 빗소리처럼 가득 채울 그 소리. 듣고 싶은 소리 목록에는 누에들이 한꺼번에 뽕잎 갉아먹는 소리도 있다. 그 소리들을 다 들으려면 순번을 적어 소리 채집 여행이라도 나서야 할까.

KakaoTalk_20220117_233755241.jpg
KakaoTalk_20220117_233755241_01.jpg
KakaoTalk_20220117_233755241_03.jpg

이 습지에서는 흑두루미 외에도 황새와 노랑부리저어새,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댕기물떼새, 때까치 등을 볼 수 있었다.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멋진 비행은 보지 못했지만 무리지어 먹이를 찾는 모습, 독수리가 다가오면 경계하는 모습, 가족 단위로 몇 마리씩 먹이를 찾거나 날아다니는 모습은 관찰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흰뺨검둥오리들이 요란하게 떠드는 소리와 댕기물떼새가 마치 “오랜만이죠? 언제 또 만날지 모르니 잘 봐둬요.”라고 말하듯이 눈앞에서 한참 오락가락하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름처럼 머리 뒤로 삐죽 튀어나온 댕기머리가 얼마나 귀여웠던지!

KakaoTalk_20220117_234318769.jpg
KakaoTalk_20220118_002235299.jpg

숲해설가 선생님 덕택에 우리는 새 이야기 외에도 억새와 갈대의 차이점이나 ‘이나무’와 ‘먼나무’라는 나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탐조의 즐거움과 함께 몰랐던 사실을 하나씩 알게 되는 즐거움을 누렸던, 아, 거기에 쫄깃하고 고소한 꼬막정식 만찬도 곁들여졌던 풍성한 소풍이었다. 겨울 한나절 나들이로 이만하면 뭘 더 바랄까.


새들은 그렇게 습지 위를 날고 우리는 갈대밭 속을 거닐었다. 우리 주위에도 꽤 많은 이들이 순천만을 즐기고 있었다. 가족들, 연인들, 끼리끼리 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 새들을 보다가 사람들을 보니, 그들도 우리도 모두 한 무리의 새들처럼 보였다. 이 세상이란 곳에 태어나 이곳저곳에서 먹이를 찾으며 살다가 때가 되면 가야 할 곳으로 다시 날아간다. 새들의 군무가 더없이 웅장하고 아름다워 보이듯이 (따지고 보면 생존의 한 방편인), 우리 삶의 군상도 때로는 그렇게 아름답고 웅장하리라고, 돌아오는 길 꼬박꼬박 졸면서 생각했다.

풍경사진 뿐인 나의 첫 탐조 나들이를 (핸드폰으로 새 촬영은 욕심이다^^), 사진 몇 장과 함께 기억에 남긴다. (2022.01.15)


keyword
작가의 이전글호연지기와 폼생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