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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Sep 18. 2017

윤동주와 채식주의자의 영혜

순결한 존재가 된다는 것

                                                                                                              

윤동주에 대한 생각을 새로이 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조국의 빛도, 그늘도 제공받지 못했던 암울한 시대에도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한 윤동주.
그의 문학세계를 이루는 주요 소재는 '고향 용정에 대한 그리움'과 '치열한 자기성찰과 내면적 불안과 외로움'

입니다. 그중에서도 윤동주의 삶에 대한 태도와 지향점이 가장 잘 드러난 시는 '서시'인데요. 

'서시'가 고평가받는 이유는 단순히 '자기성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존재가 되고 싶어했던 그의 소망이 담겨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구절을 보면 그가 생전에 얼마나 고결한 인품을 유지하며 살고 싶어했는지 그의 바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되는 전후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순결한 존재가 되고싶어하는 시인 윤동주의 갈망'을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동주]의 한 장면


                                                                                                                 

하지만 이 기준은 일반 사람들은 물론, 의인들과 영웅들도 실천하기 어려운 너무 높은 기준입니다. '시인' 윤동주는 '인간' 윤동주에게 도덕적으로 아무런 흠결이 없고, 인간성을 잃지 않으며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비범한 존재가 되기를 바랐지만, 본인을 너무 괴롭힌 건 아니었을지.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문판 표지


                                                                                                               

그리고 문득, 최근에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윤동주의 '서시'가 떠올랐습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시대와 상황을 다루지만 본질적으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그런데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왜 나는 이렇지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누군가에겐 죄가 되는 시대에, 한 점 부끄럼이 없길 바랐던 시인 윤동주와 '고기를 거부하고 인간의 살생본능을 거부함으로써 죽어가던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닮아있습니다.

특히 두 작품 '서시'와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이기심과 탐욕,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나 '아무것도 해치지 않는 존재'가 되고싶어했고,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이 아닌 존엄과 고귀함을 믿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죄짓지 않은 '순결한 존재'
하지만 이 기준은 얼마나 어려운가요. 아마 이 기준에 부합하기란 의인과 영웅들도 쉽지 않을 겁니다. 윤동주는 일제치하의 암울한 현실과 전쟁전후의 폭력적인 시대에서도 '하늘에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도 시대는 다르지만 고기를 탐하고 욕망을 드러내며 본능에 가깝게 행동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누군가의 살점을 뜯어먹는 행위'를 거부하고자 육류를 일체 버리고 나중엔 물과 빛만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몸을 죽이는 행위였고, (인간은 물과 햇빛만으론 살 수 없으니까요.)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순결한 존재가 된다는 건, 살면서 그 누구도 해치지 않고 탐하지 않고 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애쓴다는 건 힘겨운 일입니다. 때문에 윤동주와 채식주의자의 영혜 모두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인 건 아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다 죄짓는 세상인데, 순결한 존재가 되고싶어하고 인간의 고귀함과 존엄을 갈망하는 그들이 이해가 안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순결한 존재가 되기위해 노력하고,(윤동주의 '서시'처럼) 인간의 존엄을 믿기 때문에 죽을 걸 알면서도 불의에 맞서 투쟁하는(5,18민주화항쟁의 시민군처럼)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좀 더 나아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에선 '사랑하기 때문에 괴로운거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과 고귀함을 믿기 때문에, 그로인해 고통받으면서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다운 거야'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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