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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Nov 07. 2018

청설

맑은 사랑의 채도를, 보다.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모님의 도시락 가게에서 배달을 돕고 있는 ‘티엔커’(펑위옌)는 ‘양양’(진의함)을 수영장에서 처음 만났다. 청각장애인 선수들이 수영연습을 하고 있던 그곳에서 언니와 춤추듯이 수화를 나누고 물새처럼 가볍게 물가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양양의 모습을 보고 티엔커는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둘의 대화는 말없이 수화로 이루어지지만, 그들은 온몸으로, 온 눈빛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 맑은 사랑의 채도를, 보다.      


  대만 첫 사랑 영화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말할 수 없는 비밀> (2007). 영화 <청설>은 바로 그 아성 뒤에 개봉했던 영화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중간 티엔커가 양양의 집을 처음 찾아간 장면에서 뜻밖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의 OST가 서툴게 흐른다. 이웃집에서 누군가 떠듬떠듬 치고 있는 소리가 들어간 것이다. 당시 대만 내에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동시에 이 영화가 바로 직전에 대흥행을 했던 영화와 얼마나 다른 색채를 지니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색을 진하게 탄 절절한 첫사랑의 감정이라면, <청설>의 사랑은 물을 많이 탄 수채색의 맑은 색감이다. 대사를 말 대신 수화로 전달하면서 두 사람의 눈빛과 표정은 더 순수하게 빛난다. 

  티엔커는 양양에게 나무가 되고 싶다. 물새 같은 양양이 자신에게 날아와 쉬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양양은 청각장애인 수영선수인 언니를 대신해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지만, 두 명을 위해 동시에 희생을 할 수 있을까. 언니를 위한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해오며 살아왔던 양양은 사랑 이후에 남겨질 언니가 걱정된다. 

  그런 양양을 향해 언니 ‘샤오펑’(천옌시)은 이렇게 말한다. “물새는 계절이 바뀌면 멀리 날아가” 더 이상 희생의 무게를 혼자지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도 자신의 삶의 무게를 질 수 있는 어엿한 어른이라고. 동생의 등을 떠미는 언니의 모습에서 영화가 장애인을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존재로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 나무를 베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나무와 물새의 사랑은 당연한 일이다. 말하지 않아도 일어날 당연한 기적. 우리는 그 기적을 허하고 있는지 혹시 계속 베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화는 사랑에 대한 맑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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