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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Feb 26. 2019

걸어가자

아빠#1. 영화 <더 로드>, 2010.

- 아빠#1. <더 로드>, 2010.     


영화 <더 로드>를 보고 처음 떠오른 것은, 루시드 폴이 불렀고 옥상달빛이 리메이크한 ‘걸어가자’라는 곡이었다.      


걸어가자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서두르지 말고 이렇게

나를 데리고 가자     


세상이 어두워질 때

기억조차 없을 때

두려움에 떨릴 때

눈물이 날 부를 때

누구 하나 보이지 않을 때

내 심장 소리 하나따라

걸어가자 걸어가자     


  영화 <더 로드>의 아빠와 아들의 행동은 간결하다. 그들 앞에 놓인 잿빛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세상을 걸어가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남쪽, 바다를 향해서 천천히 전진한다. 지구가 죽어가는 듯한 원인모를 재앙 앞에서 사람들은 식인까지 일삼으며 ‘생존’에 매달린다. 땅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서로를 쫓는 더 이상의 희망도 없는 땅 위를 아빠와 아들은 걸어간다. 

  그들에게는 두 발의 총알이 있다. 아빠는 아들에게 스스로를 겨누는 방법을 알려준다. 식인 이전에 당할 수 있는 더 끔찍한 일들을 대비한 일이다. 그렇게 아빠는 아들에게 사는 방법 이전에 죽음을 알려준다. 아빠는 비참한 삶의 희망과 죽음이 가져올 안식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아빠는 아들과 남쪽 바다를 향해 걸어간다. 아빠는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반드시 불을 가지고 있어야 해.” 두 사람은 잿더미 속에서 불씨를 옮기는 사람들이다. 

  두 사람이 옮기는 불씨는 삶에 대한 희망이다. 인간성을 내던진 채 본능을 채우며 사는 생존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는 삶에 대한 희망. 아들은 “우리는 좋은 사람인가요? 변함없이요?” 라며 묻는다. ‘좋은 사람’이라는 쉽고도 어려운 말로 척박해진 어른들의 마음을 찌른다. 죽음만이 예정된 삶의 여정 속에서 ‘좋음’을 찾는 선한 존재. 아빠는 아들을 자신의 신(神)이라고 이야기 한다. 삶과 죽음, 생존과 삶 사이에서 흔들리는 아빠를 ‘좋은’방향으로 이끈 것은 무력하지만 선한 아들의 존재다. 아빠는 작은 불티를 옮기듯 아들을 품에 안고 바다를 향해 간다. 

  <더 로드>의 세상은 모든 것이 역행하는 세상이다. 서있어야 할 것들은 무너져 내리고, 숨 쉬어야 할 것들은 다 타버렸으며, 남은 생명들의 삶을 향한 의지마저도 죽음으로 뒤바뀌어 있는 곳이다. 모든 것이 역행하는 곳에서 유일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물’일 것이다. 쉽게 마실 수도 없는 잿빛 물이긴 하지만, 물은 계속해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올라가고 떨어지면서 유일하게 순환하고 있는 존재. 어쩌면 죽음을 선택한 엄마가 마지막으로 가리킨 곳이 남쪽, 바다인 것은 티끌만한 삶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예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펼쳐진 것은 끝없는 잿빛의 파도뿐이었다. 영화는 계속해서 두 사람의 희망을 야금야금 빼앗아 간다. 더 이상 바닥날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곳에서, 아빠는 한 사람을 비참한 방식으로 죽음의 세상에 내던졌고, 아들은 아빠의 죽음을 맞이한다. 아빠는 그동안 지켜왔던 ‘좋음’의 선을 무너뜨렸고, 아들은 그동안 생존과 삶을 사이에 두고 그를 지켰던 아빠를 잃는다. 아빠는 아들에게 ‘계속 가야한다’는 말을 남긴다. 영화는 세계는 죽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아니 우리의 다음 세대는 불씨 같은 희망을 놓치지 말고 살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 불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가야한다’고 말한다.



  “아빠가 간암이야. 15cm만한 뭔가가 있데.” 결핵으로 입원했던 아빠의 입원이 길어지던 때였다. 검사 결과를 들은 엄마는 잠긴 목소리로 천천히 아빠의 상태를 전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 잠이 들 시간은 한참이나 지난 시간이었다. 15센티미터.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돌았다. 난 필통에 꽂힌 15센티미터 자를 꺼냈다. 이 길이면 아무리 가는 실이라도 몸속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아빠의 존재를 간에 있는 15센티미터의 종양에서부터 느끼고 있다. 투명하지만 단단했던 그의 존재를. 

  이런 복잡한 사연과 심경으로 영화를 마주했다. “너는 계속 가야해.” <더 로드>의 아빠의 말과 비슷한 말을 우리 아빠도 했었다. 그것도 매번 산에 갈 때마다. 나는 어려서부터 운동은 질색했는데, 그럼에도 아빠는 그런 나를 데리고 등산을 갔다. “저길 언제 올라가”라며 온갖 투정이며 짜증을 부릴 때면, 아빠는 “앞으로 한 걸음만 내다보면서 천천히 걷다보면 정상에 오를 거야”라고 말했다. 딱 내 앞의 한 걸음. 정상을 보면 너무 멀게 느껴지니까, 지금 내 앞의 한 발만 보고 걸으라고. 영화 속에서 계속해서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아빠와 아들을 보며 아빠와 올랐던 산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밟고 밟아 터져버린 통나무 계단이 있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았던 근교의 산들이. 

  <더 로드>의 아빠처럼, 나의 아빠도 세상은 검게 벌린 입 같았고 그 안에 던져질 아들은 금방 터져버릴 듯 여린 포도 알 같았겠지. 나의 외피는 생채기만 많은 어린 애인데, 아빠는 벌써 훌쩍 세월의 길을 건너버렸다. 나는 그 세월을 무던히 걸어가야겠지. 수많은 상처들로 불씨를 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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