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
손이 거미줄 위에 잠자리를 올려놓고는 말했다. 언니는 불안한 눈으로 손을 바라보았다. 그러지 마. 그렇게 말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손은 듣지 않았다. 하늘은 높고 태양은 뜨거웠다. 손은 집을 비운 거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제 오른손을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손을 맞잡은 언니가 다른 곳으로 가려 하고 있었다. 손이 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디 가.
손의 물음에 언니는 돌아보지도 않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거 보기 싫어. 손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보기 싫다고? 언니가 대답하려는 찰나 가까이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나는, 말을 시작한 언니가 매미를 의식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매미 우는 소리와 섞여 소음이 될 뿐, 단 한마디도 손에게 닿지 않았다. 말을 마친 언니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눈가를 스쳤다.
알았어.
손이 대답했다. 매미 소리가 잦아들고 있었다. 거미가 집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다. 언니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집에 가자. 손은 언니를 이끌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지나가다 마주친 동네 아줌마가 손을 꼭 잡은 자매를 보고 오늘도 사이가 좋구나, 한마디 던졌다. 익숙한 말이었다. 손은 네, 오늘도 사이좋아요,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언니는 어땠는지 모른다. 아무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맞잡은 손에 미약하게 열이 오른 것도 같았다.
두 사람은 동네에서도 사이좋은 쌍둥이로 유명했다. 똑 닮은 아이 둘이 손을 잡고 다녔으니까. 그러면서도 성격이 달라 두 사람을 헷갈리는 사람은 없었다.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은 쪽이 언니,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잔망스럽게 구는 쪽이 손. 할머니는 언니를 혼자 내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언니가 나가야 할 때면 할머니는 손을 불러 언니 손을 잡게 했다. 그러고는 신신당부했다.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 그럴 때면 손은 자신이 동생이 아닌 언니가 된 것처럼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한 번은 언니가 손의 손을 잡겠다며 고집을 부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싸늘한 목소리로 왼손은 잡는 게 아니라고 했다. 불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날 밤 언니는 많이 울었다. 손은 겉으로는 언니를 위로했지만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언니는 손의 손을 잡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손은 언니의 말랑말랑한 왼손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오른손이 훨씬 좋았다. 좋은 것을 넘어서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언니의 손은 손이 가진 것들 중 가장 완벽하다 여겼던 콩순이의 손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마치 손에 쥐어지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꼭 들어맞게 굳어버린 언니의 손을 손은 깊이 사랑했다.
자라면서 손과 언니는 멀어졌다. 초등학교 6학년 올라가면서부터 언니는 손과 손잡기를 부끄러워했다. 주변에 그 나이 또래의 친구 중 자매끼리 매일 손잡고 다니는 일은 없었다. 어릴 때야 귀엽다고 했던 어른들도 몰래 수군거렸다.
언니는 집을 나와 할머니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손을 놓으려 했지만, 손은 할머니 핑계를 대며 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 무렵에도 할머니는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다니라고 말했다. 오래된 신념을 지키는 사람처럼 결연한 얼굴로, 아주 엄한 목소리로. 놓아서는 안 된다고. 그러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처럼. 할머니의 엄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하면 언니는 주눅이 들어 말이 없어졌다. 그래서 손은 언니가 손잡는 것에 대해 단념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중학교 입학식에 가기 위해 손이 언니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언니는 본 척도 하지 않고 손을 지나쳐 앞장서서 걸었다. 언니, 왜 그래. 손이 잰걸음으로 언니를 쫓아가며 물었다.
이제 내 손 잡지 마.
걸음을 멈추지 않고 언니가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잡으라고······
할머니 핑계도 대지 마.
언니, 정말 왜 그래?
손은 답답했다. 떼쓰는 어린아이를 앞에 둔 기분이었다. 손의 집은 언제나 할머니 중심으로 돌아갔다. 자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할머니가 곧 법이었다. 그걸 굳이 어기려는 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건널목에 다다라 언니가 뚝 발걸음을 멈췄다. 손을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얘기하면 네가 알기나 하니?
말을 마친 언니는 손이 대답할 새도 주지 않고 혼자 걸어갔다. 손은 그날 처음으로 언니의 뒷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입학식에 할머니는 오지 않았다. 시장에 나가 채소를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도 그랬다. 손은 특별히 서운하다 여기지 않았다. 할머니를 이해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할머니가 미웠다. 멀리 자신과 다른 줄에 서서 모른 척하고 있는 언니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입학식이든 뭐든 다 집어치우고 할머니가 있는 시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위에서 바라보면 나란히 예쁘게 세워진 줄을 뚫을 용기가 손에게는 없었다. 그날 손은 언니의 손을 잃어버렸다. 그를 기점으로 모든 게 완전히 달라졌다.
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와 화해할 거로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싸운 거고, 다시 언니의 기분이 풀리면 손을 잡고 사이좋은 쌍둥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반이 갈라져 언니를 찾아가도 만날 수 없었고, 집에서도 언니는 손의 말을 무시했다. 제발 언니, 왜 그러는 건데? 손이 답답함에 못 참고 언니의 손을 붙잡고 물었지만, 그때마다 언니는 손의 손을 억지로 잡아떼어내고는 자리를 피했다. 철저한 무시였다.
할머니는 둘이 투닥거리며 싸우는 모양이다, 생각했다. 더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열심히 일해서 두 손녀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중학교 삼 년, 고등학교 삼 년을 보내고 나니 사이좋은 쌍둥이는 어느새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사춘기의 언니는 동물원에서 탈출한 사자처럼 형형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언니의 안에는 할머니가 아무리 해도 꺾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할머니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비록 가정형편 탓에 제대로 된 공교육은 받아보지도 못했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커서 숨어서 꾸준히 공부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제대로 된 책 한 권 가져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다 읽은 신문을 내놓으러 가는 길에 몰래 그것으로 공부를 했다. 신문이 할머니의 교과서였다. 그뿐만 아니라 종이를 내놓는 장소에는 전단지나 다른 잡지도 많았다. 할머니는 손 닿는 대로 집어서 다 읽었다고 했다. 아는 게 많았다. 아는 게 전부 옳은 것들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할머니는 아는 게 많았다.
예를 들면 나비를 만지고 눈을 만지면 실명한다든지, 밤에 선풍기를 틀어놓은 채 깜빡 잠들면 죽을 수도 있다든지, 신발을 선물하면 상대가 도망가기 때문에 절대로 선물해서는 안 되며, 굳이 선물할 거라면 두 켤레를 선물해서 도망갔다가 돌아오게끔 해야 한다든지…… 할머니가 언니에게 왼손으로 잡는 게 아니라 말한 것도 이런 지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할머니는 신을 믿었다. 매주 교회를 나가고 성경을 읽는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지만, 할머니 스스로 말하기를 본인만큼 독실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하나뿐인 아들이 죽었을 때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며느리가 쌍둥이를 낳다가 죽었을 때도, 그렇게 해서 태어난 손녀의 손에 장애가 있었어도, 이 모든 것에는 분명 존엄한 신의 뜻이 있을 거라 믿었다.
할머니는 종종 자매를 앞에 앉혀두고 목회자라도 된 양 설교를 했다.
신께서는 나중에 심판의 때가 되면 왼편에는 죄인을, 오른편에는 선택받은 이들을 두실 거다.
그게 어떤 건데요? 손이 묻자 할머니는 얼굴이 빨개졌다. 화를 냈다. 그러니까 나쁜 게 왼편이라고. 좋은 건
오른편에 두어야 하는 거라고. 풍수지리에서 배산임수를 말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그렇다 알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맞잡은 언니의 굳은 손이 홧홧해졌다.
할머니는 똑똑했지만, 말재주는 없었다. 손은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 더 많은 걸 알고 있어서 마음먹고 설명한다면 설명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거라고 여겼다. 시장에서든 어디서든 사람들은 할머니를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것처럼 보였다. 목소리가 큰 할머니가 몇 마디 하면 뭐라고 우기던 사람들도 금방 꼬리를 내렸다. 할머니는 여든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정정했다.
그때까지 손은 나이는 천천히 들어가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이는 깨닫지 못한 순간 밀린 숙제처럼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손은 그것을 고등학교 1학년 때 알았다. 야간자율학습에 먹을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서며, 소파에 앉은 할머니의 구부정한 등을 보았다. 예전에는 분명 꼿꼿했던 것 같은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손은 도시락을 들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뛰었다. 그날 저녁은 흔들려서 여기저기 쏠린 도시락을 먹었다. 저녁이 되자 할머니의 등은 생각나지 않았다. 한쪽에 쏠려 엉망이 된 밥을 보며 언니의 굽은 손을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손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언니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몰래 원서를 넣고 합격했다. 언니는 멀리 가면 안 된다며, 만약 그렇게 되면 학비를 대주지 않겠다고 말하는 할머니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이제 할머니도 좀 쉬세요. 제 앞길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 말을 듣는 할머니의 얼굴은 미동 하나 없이 굳어있었지만, 그걸 바라보는 손은 어쩐지 서글픈 느낌을 받았다. 언니가 캐리어를 끌고 나가고 할머니는 손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네가 언니 손을 제대로 못 잡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탓하는 거겠지. 할머니도 나를 미워하겠구나. 그때부터 손은 집에서 투명인간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손이 공교육을 통해 얻은 배움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환경에 완벽하게 스며들어 없는 사람이 되는 것.
손은 졸업 후 휴지 공장에 취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옷가게에 취직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운이었다.
딱 봐도 촌스러운 느낌의 간판의 옷가게였다. 쇼윈도에는 간판의 기대를 크게 저버리지 않는, 누가 입나 싶은 옷을 입은 마네킹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평소대로였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손은 마네킹의 손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어제까지는 없었던 색이 마네킹의 손톱에 있었다. 짙은 빨간색. 누군가 마네킹의 손에 매니큐어를 칠해준 모양이었다. 그러려니, 하고 가면 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손을 잡아보고 싶다.
모른 척 들어가서 한 번 잡아볼까. 그랬다가는 얼마나 미친 여자처럼 보일까. 왜 갑자기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번 의식하고 나니 애가 타기 시작했다. 장바구니를 쥔 손에 식은땀이 맺혔다.
망설이다가 옷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좁은 가게였다. 양옆으로 2단 행거가 있고, 오른쪽 한구석에 탈의실과 전신거울이, 그 옆으로 의자가 그리고 계산기와 라디오 따위를 올린 테이블이 있었다. 주인 여자는 통화 중이었다. 문간의 종을 울리며 손이 들어오자 이따 전화할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껌을 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시선은 손의 얼굴이 아닌 손의 장바구니가 들린 손에 가 있었다. 손은 장바구니를 꽉 쥐며 말했다.
혹시 사람 구하시나요?
주인 여자가 껌을 딱, 터뜨리는 소리가 났다.
주인 여자는 갑작스레 사람을 구하느냐 묻는 손에게 많은 걸 묻지 않았다. 요구하지도 않았다. 최저시급을 못 맞춰준다고 했다. 손은 상관없다고 답했다. 말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가게를 내놓았다고도 했다. 그럼 그때까지만이라도 일하게 해달라고 했다.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간절할 일도 아닌데.
바쁘시잖아요, 가게 내놓고 알아보고 하시려면.
급하게 덧붙였다. 손은 제 손바닥의 식은땀이 너무 많이 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칫하면 흐를지도 모른다. 그럼 불결하다고 할 텐데. 겁이 나서 주먹을 꽉 쥐었다. 손은 지금 이 감각을 잘 알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을 운동회, 그날 손은 4반과 줄다리기를 했다. 첫 시합이었다. 이겨서 꼭 결승전까지 가자고 모두가 의기투합했다. 드물게 손에게도 함께 열심히 하자며 웃는 얼굴이 돌아왔다. 손은 이기고 싶었다. 이겨서 앞으로도 무리에 속해 있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아무리 끌어당겨도 맥없이 끌려가는 느낌, 속절없는 패배의 기분. 간절한 마음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느새 흙바닥에 주저앉은 몸. 주인 여자의 대답은 이미 정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손의 땀을 구슬려보려 손을 꼼질거릴 쯤 주인 여자가 말했다.
좋아요.
주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구체적인 급여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손은 물을 수 없었다. 주인 여자도 손에게 많은 걸 물어보지 않았다. 관심이 없어 보였다. 왜 갑자기 여기서 일하겠다고 들어온 건지, 일이 많이 급한 건지, 정말 돈은 상관없는 것인지. 주인 여자가 언제 물어볼까, 입술을 연신 혀로 핥으며 대답을 준비하던 손은 먼저 묻지 않는 주인 여자에게 돈 이야기를 물을 수 없었다. 물었다가는 그럼 그만두던가요, 하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았다. 언젠가는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만히 서서 주인 여자의 말을 들었다.
주인 여자는 손에게 가게 문을 여닫는 법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계산기 쓰는 방법은 건성으로 흘리듯 말하고는 말았다. 손님이 오면 응대를 어떻게 해야 한다든지, 옷을 어떻게 팔고 관리해야 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손이 물어보자 손을 내저었다. 여기 오는 사람은 단골뿐이야. 내젓는 손톱 끝이 날카롭게 손질되어 있었다.
손은 매일 아침 열 시에 가게 문을 열고 여섯 시까지 일했다. 여섯 시에는 주인 여자가 와서 손과 교대했다. 교대하지 않는 날에는 열 시까지 일하고 가게 문을 닫았다. 주인 여자의 말대로 손님은 거의 없었다. 간혹 오더라도 부동산 업자와 가게를 보러 온 사람, 혹은 단골손님이었다. 그마저도 후자는 주인 여자가 없다는 걸 알면 전화를 걸며 나가버렸다. 일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세 살배기의 엄마가 급하게 티셔츠를 사러 왔을 때 계산한 일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계산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할 일도 적었다. 그래서 통장에 형편없는 월급이 들어와도 손은 따질 수 없었다.
손은 옷을 다리기도 하고 돌돌이를 들고 다니면서 옷의 어깨에 붙은 먼지를 뗐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기 위해 옷걸이를 한 손에 쥐고 어깨선을 쓰다듬으면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토록 원했던 마네킹의 손을 잡았을 때는 오히려 시들했다. 첫 출근을 하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네킹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보았다. 그저 딱딱한 플라스틱. 그뿐이었다. 마네킹의 손은 제 손과 어우러지지 않는 위화감이 있었다. 당연한 건데도,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손은 마네킹 손을 놓고 황망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어지럽게 걸린 옷들 때문에 꼭 거대한 세탁기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의자에 앉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다. 언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쟤는 왜 맨날 언니만 찾아? 그 말에서부터 시작된 왕따였다. 사이좋은 쌍둥이 자매는 기묘하고 기분 나쁜 자매가 되어 있었다. 언니는 손과 엮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언니는 손이 일방적으로 집착하는 거라고,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딱 끊어 말했다. 그 해명은 언니를 가여운 사람으로, 손을 더더욱 기분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누구도 나서서 손을 괴롭히거나 욕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손을 할머니가 부엌에서 기어 나온 바퀴벌레를 보았을 때 지었던 표정으로 보았다. 그뿐이었다. 제 자리도 아닌데 그곳에 있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 그게 손이었다. 손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바퀴벌레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듯 아이들도 손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당시 손은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끼리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더군다나 언니는 손이 불편한데, 내가 그 손을 잡아줘야 하는데 뭐가 문제인 거지? 손은 자신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방금 거울 속의 자신과 눈이 마주쳤을 때, 손은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손이 다시 마네킹 손을 잡게 된 것은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주인 여자는 마네킹 손의 매니큐어가 거슬리니 지우라고 말했다. 아세톤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으니까, 솜에 살살 묻혀서 닦아. 손은 다음날 출근해서 주인 여자가 시킨 대로 화장솜에 아세톤을 묻혀서 손의 매니큐어를 지웠다. 마네킹의 손 높이에 맞추느라 쪼그려 앉아 한참을 낑낑거리고 나서야 오른손을 다 지울 수 있었다.
왼손을 지우려 할 때 주인 여자가 왔다. 자기 왜 그러고 있니? 주인 여자는 화장솜을 보고 깔깔 웃었다. 얘. 이거 빼면 돼.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마네킹 팔에서 손을 뚝 떼어냈다. 손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자 주인 여자는 손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박장대소했다. 누가 보면 내가 진짜 사람 손이라도 가져온 줄 알겠네. 손은 주인 여자의 태도에 무안해져서 입을 꾹 다물었다. 말라버린 솜에 아세톤을 좀 더 적셔서 왼손의 매니큐어를 지웠다. 마음이 아팠다.
근데 지우니까 허전하다.
주인 여자가 말했다. 잠시 생각하는가 하더니 어디선가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왔다. 안에는 정돈되지 않은 화장품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주인 여자는 그 안에서 빨간색 매니큐어가 들어 있었다. 역시 그냥 발라놓자.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번, 손은 마네킹의 손을 따로 빼 아세톤으로 매니큐어를 지우고 새로 칠해주었다. 주인 여자가 딱히 시킨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 가게에서 하는 모든 일은 손이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없어서 하는 무의미한 행동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 어쩌면 주인 여자는 모를 것이다.
할머니는 손이 옷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만두고 다른 건설적인, 할머니의 기준에 맞는 번듯한 일을 하길 원했다. 손의 통장에 찍힌 돈을 보고 호통을 쳤다. 더듬거리며 손은 설명하려고 애썼다. 지금 손의 수준에서 잡을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고, 손은 할머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손은 언젠가부터 할머니를 실망하게 하는 걸 겁내지 않게 되었다. 그것보다도 훨씬 전에 이미 손은 자신을 포기했다. 무엇 하나 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그게 별로 슬프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간절하게 갈망해도 결국 얻지 못하는 게 있다는 것을 손은 일찌감치 배웠기 때문이다.
언니에게 전화한 적이 있었다. 일을 시작하기 얼마 전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슈퍼에서 산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는 술김에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연결음이나 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손이 기억하는 언니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목소리를 내거나 본인을 드러내는 일을 피했다. 혼자 서 있을 때면 팔짱을 끼고 오른손을 깊숙이 겨드랑이에 끼워 보이지 않게 했다. 손이 다가와 반갑게 부르면, 머뭇거리며 제 손을 내밀었다.
언니가 그렇게 오른손을 가리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손이 사랑해 마지않는 그 손을 두려워했다. 꼭 죽은 사람 손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손은 벌떡 일어나 바락바락 대들었다. 우리 언니 손이 얼마나 따뜻한 줄 아세요? 그럴 때마다 언니는 몸을 틀어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언니의 손을 꼭 붙잡은 손도 몸이 당겨져 뒤로 물러서게 되었다. 손은 그때마다 언니에게 성을 냈다. 언니를 위해서라면 더 버릇없고 못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언니는 말리는 걸까.
그때도 물었다. 언니, 왜 그래.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생각해보면 손은 언니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쌍둥이니까 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쌍둥이는 본디 한 사람이었으나 갈라져 나온 존재라고 누군가 말한 걸 들었다. 과학적인 근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손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에게 언니는 또 하나의 자신이었다. 가끔 엇갈려도 마음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설령 손이 기억하는 즐거운 추억을 언니가 기억하지 못해도, 언니의 슬픈 기억을 손이 기억하지 못해도. 그래도 어디에선가 이어진 끈이 서로를 단단하게 연결해줄 거라고.
연결음이 얼마 안 가서 끊겼다. 손은 역시 받지 않는구나, 단념하고 휴대전화를 귀에서 뗐다. 그때 언니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손은 허겁지겁 휴대전화를 다시 귀에 갖다 붙였다. 주책맞게 눈물이 차올랐다. 어떤 말을 해야 하지. 술기운에 손이 벌벌 떨렸다. 여보세요. 한 번 더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끊습니다. 언니의 말에 손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언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손은 언니가 전화를 끊을세라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아파. 거짓말이었다. 할머니는 이전보다 더 등이 많이 굽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정했다. 어디서 이런 거짓말이 튀어나온 건지 손은 알 수 없었다.
할머니가?
응, 많이 아파.
말끝에 울음이 터졌다. 꼭 자신이 아프다고 언니한테 말하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묵직하게 울렸다. 언니, 어떡해. 정말 많이 아파.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말하면 말할수록 슬펐다. 눈물을 흘리면 흘릴수록 더 슬퍼졌다. 해소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손은 마구 터져 나오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에 놀랐다. 아직 제 안에 이런 감정들이 남아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언니를 잃었을 때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손은 말을 이을 수 없어 수화기에 대고 끅끅거리며 울기만 했다. 언니는 말없이 손의 흐느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언니가 전화를 끊지 않아서 손은 더 길게 울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손이 숨을 색색거릴 때쯤 언니가 말했다. 지금은 내려갈 수 없어. 방학 때 내려갈게. 그게 언니와의 마지막 통화였다. 환하게 불이 켜진 방에서 손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어둠을 찾아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어린 손은 여름을 좋아했다. 사계절 중 가장 활기차다고 느끼는 계절이었다. 사방이 푸르르고 곤충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는 풍경. 손은 곤충 잡는 걸 좋아했다. 풀밭에서 메뚜기를 잡아 페트병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면 할머니가 메뚜기 튀김을 해줬다. 손이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한 건 잠자리였다. 여름이면 잠자리가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손은 나무나 풀 위에서 쉬고 있는 잠자리를 잡아 날개를 반쯤 찢어 가슴팍에 배지처럼 달고 다녔다. 언니의 가슴팍에도 하나 달아주었다. 잠자리 원정대라고 이름 붙이고 온갖 곤충을 찾아다녔다.
언니는 곤충을 잘 잡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이 잡는 걸 보는 건 좋아했다. 잡은 잠자리의 날개를 찢는 건 좋아하지 않았다. 손이 날개를 찢은 잠자리를 가슴팍에 달아주려 하면 언니는 늘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손은 언니와 똑같은 게 좋아서 못 들은 척 언니의 가슴에 잠자리를 달아주었다. 날개를 찢긴 잠자리는 버둥거리지 않았다. 날개가 찢겨서 날아가지 못할 걸 이미 알고 있는 듯이.
어른이 된 손은, 여름이 싫다.
낡은 선풍기가 달달달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선풍기는 강풍으로 설정해놓아도 미풍 정도의 바람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미 선풍기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지만 손은 선풍기를 버리지 못했다.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바랐다. 하다못해 올해만이라도.
미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손은 거실 한가운데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은 가게를 열지 않으니 나오지 말라는 주인 여자의 통보가 있었다. 요 일주일 사이, 주인 여자는 가게를 열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이유는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언뜻 들은 통화내용으로는 가게가 팔린 것 같았다. 일자리를 잃은 것에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애초에 최저시급도 받지 못했고, 받았더라고 해도 미안할 정도로 할 일이 없는 가게였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마네킹이었다. 가게가 문을 닫으면 마네킹은 어디로 갈까. 역시 버려질까. 아니면 다른 가게로 갈까. 그 가게에서는 매니큐어를 칠해줄까.
천장 등 속에 쌓인 벌레가 보였다. 손은 저 속에서 죽은 벌레가 모두 몇 마리인지 알고 있다. 스물세 마리. 한 번 세어본 후로는 볼 때마다 세었다. 어제도 스물세 마리였다. 오늘은 세었던가. 하나, 둘, 손이 죽은 벌레의 그림자를 짚어가며 세어보려는 찰나, 선풍기 소리가 멎었다. 동시에 정수리를 향해 불어오던 바람도 멈췄다. 머리만 살짝 들어 선풍기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선풍기가 멈췄다.
결국, 선풍기는 올해를 넘기지 못했다. 제발 올해만 버텨주길 바랐는데. 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보이는 베란다 창문 밖 날씨는 흐렸다. 공기가 끈적거리고 꿉꿉한 느낌. 예보를 듣지 않았어도 알 수 있었다. 곧 장마가 시작될 것이다. 손은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선풍기는 손과 언니가 어릴 때부터 있었다. 그때도 달달달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돌이켜보면 한순간도 멀쩡한 적이 없었다. 손과 언니는 그 소리를 흉내 내며 놀고는 했다. 입으로 달달달, 소리를 내고는 키득거렸다.
언니와 이 앞에 앉아 봉숭아물을 들인 적도 있었다. 할머니가 어디선가 봉숭아를 따다가 찧어준 걸 서로의 손에 올려주고는 비닐로 꼭꼭 묶어주었다. 누가 색이 더 오래 가나, 내기하기도 했다. 마주 앉아 서로의 손을 아낌없이 예뻐할 수 있는 그 순간을 손은 소중하게 생각했다.
언니, 난 언니를 사랑해.
언니의 오른손 손톱 위에 봉숭아를 얹던 중이었다. 불쑥 그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언니는 갑자기 뭐냐는 듯 손을 쳐다보았다. 언니의 새끼손가락 위로 봉숭아를 올리고는 언니를 바라보며 속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뜬금없지만 진심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쭉 함께였다. 엄마도 아빠도 깨닫지 못하는 새에 곁을 떠나버렸지만, 세상에 혼자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할머니 때문이 아니었다. 언니 덕분이었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나의 분신 같은 존재. 언니. 정말 사랑해.
말은 이상했다. 가볍지 않은 감정인데도 말할수록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사랑한다는 말이 그랬다. 사랑한다고 여러 번 말하면, 아세톤에 묻힌 아세톤처럼 한 번 싸한 느낌을 남기고 휘발되는 것만 같았다. 좀 더 다른 말로 표현하고 싶어도 그보다 더 그럴싸한 말이 없었다. 언니는 봉숭아를 얹지 않은 왼손을 들어 손의 등을 두드렸다. 나도 널 사랑해. 언니의 손은 딱딱해서 꼭 할머니의 긁개로 등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더라도, 언니가 찾아와 제 등을 이렇게 두드려준다면 언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테니.
다음날 일어나면 두 사람의 손톱은 다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손과 언니는 신기해서 간지럽다면서도 서로의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손은 결리는 어깨를 한 번 주무르고는 할머니의 닫힌 방문을 보았다. 날이 아무리 더워도 할머니는 문을 꼭 닫고 지냈다. 그렇다 보니 한집에 있어도 할머니의 얼굴을 보는 일이 드물었다. 말을 나누는 일은 더 드물었다. 언니에게 전화한 후로 가끔 물어보고 싶었다. 할머니, 아파? 겉보기에는 정정해 보이는 할머니지만 속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할머니가 정말 아픈 게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었다. 할머니는 늘 과묵하게 위에서 군림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아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끙끙 앓고 있다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그러면 언니에게 거짓말을 한 게 되지 않은 셈이었다.
정말 할머니가 아프면 죄책감을 느낄 게 뻔하면서도 못된 생각은 끊임없이 속에서부터 치고 올라왔다. 선풍기도 없이 방문을 꼭 닫고 지내던 할머니가 열사병으로 쓰러지면, 그래서 병원에 갔다가 위독한 병증이 발견된다면, 뒤늦게 내려온 언니가 진작 가족의 곁에 있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면 돌아오지 않을까? 이제라도 우리 곁에 있겠다고 말하지 않을까.
말을 하지 못하니 속으로 고이는 생각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말하자니 다 부질없는 말들이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말하기를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어릴 때는 마냥 장마가 싫었다. 나갈 수 없으니까. 투덜거리는 손에게 언니는 그래도 빗소리가 좋지 않니? 말했다. 모르겠어. 그렇게 대답하면 언니는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손은 흐릿한 기억을 더듬었다. 웃었던 것 같다. 그럴 수 있어, 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오히려 손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반문했다.
언니는 자주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손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선을 딱 긋는 문제에 대해서도 음, 하고 생각하다가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 그런 행동은 하지 않겠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 그렇게 말했다. 손은 언니가 참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언니는 웬만한 일에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없었다. 손은 그 이해심 많은 언니가 선을 그어버릴 정도면 나는 얼마나 지독한 사람이었는가 반성하면서도 왜 좀 더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는지 원망했다.
오늘 아침 주인 여자는 가게가 팔렸다고 말했다. 그러니 오늘을 마지막으로 이제 더 안 나와도 된다고. 예상은 했었지만, 손은 휴지 공장에서 잘렸을 때보다도 더 큰 상실감을 느꼈다. 하지만 언니가 그랬듯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 타일렀다. 직원 같지도 않은 직원을 챙기느니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게 당연한 거라고.
손은 마지막으로 마네킹의 손을 닦고 매니큐어를 칠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늘 그렇듯 손을 분리하려다가 뜬금없이 메이크업 박스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빨간색 매니큐어의 자리는 정해져 있었고, 손은 다른 것은 살펴보지 않고 빨간색 매니큐어만 넣었다가 꺼냈다. 다른 물건을 보면, 혹시 보고 잠시라도 탐내는 마음을 가지면 들켜서 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차피 이 가게에서 일하는 건 마지막이었다. 큰일이라고 해보아야 잘리는 걸 텐데. 사실상 손은 이미 잘린 사람이었다.
손은 메이크업 박스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화장품이 엉망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21호 비비, 22호 파운데이션, 부러진 자주색 립스틱, 끝이 뾰쪽한 보라색 립스틱, 갈색 아이브로우, 흑갈색 아이브로우, 비비로 얼룩진 지저분한 퍼프…… 대개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었다. 사람한테는 절대로 못 바르겠구나. 그러고 보면 주인 여자가 처음 꺼냈을 때 빼고 이 메이크업 박스를 찾는 걸 본 적이 없다. 손은 메이크업 박스를 닫으려다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쇼윈도의 마네킹 허리를 끌어안고 들어 올렸다. 쑥, 보기보다 가볍게 들리는 것이 느낌이 묘했다. 게걸음으로 걸어 쇼윈도를 빠져나와 의자 앞에 마네킹을 놓았다. 사람한테는 못 바르지만, 마네킹한테는 괜찮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손톱도 칠해주는데 화장품이라고 못 할 건 무언가 싶었다. 마네킹의 얼굴은 하얗고 반질거렸다. 콧대는 있었지만, 눈도 입술도 없었다.
손은 메이크업 박스에서 퍼프와 비비를 꺼냈다. 비비는 펌프를 눌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여러 번 반복해서 누르자 조금 나왔다. 검지가 아팠다. 손은 퍼프에 비비를 묻혀 마네킹의 얼굴에 발랐다. 화가가 된 기분이었다. 어릴 적 조물거리던 찰흙이 생각났다. 내가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플라스틱 위에 발린 비비는 손의 손날이 조금이라도 닿으면 묻어나기 일쑤였다. 소매에도 묻었다. 손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집중했다. 왜 이러고 있는지 몰랐다. 누가 들어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이브로우로 눈썹을 그려주려 했지만, 잘 그려지지 않았다. 몇 번 힘주어 긋고 나서야 흐릿하게 자국이 생겼을 뿐이었다. 사실 비비를 바를 때까지만 해도 손은 경쾌한 기분이었다.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러나 곧 희끗희끗한 눈썹을 그리고 나니 우울해졌다.
마스카라나 아이라이너는 쓸 수도 없었다. 눈이 없으니. 대신 립스틱을 들어 입술을 그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굳은 립스틱은 색을 잘 내지 못하고 부러지고 뭉그러지기만 할 뿐 색을 내지는 못했다. 손은 마네킹을 등지고 신경질적으로 립스틱을 제 손등에 여러 번 그었다. 그러자 흐릿하게 흉한 색만 냈던 립스틱 색이 점차 진해졌다. 따뜻한 체온에 굳은 게 녹은 모양이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전신거울 속 자신이 보였다. 그 뒤로 새빨간 손톱, 흘러내리는 얼굴을 한 마네킹이 있었다.
손은 휴지를 마구잡이로 손에 둘둘 말아 마네킹의 얼굴을 지웠다. 제대로 지워지지 않은 마네킹의 얼굴은 어설프게 생기가 도는 것 같이 보였다. 비비로 흠뻑 젖은 종이를 내려두고 이번에는 손으로 남은 흔적을 문질렀다. 손에 묻어나오는 걸쭉한 감각이 불쾌했다. 손은 마네킹의 새빨간 손톱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심히 마네킹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가게를 닫으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지만, 손은 더는 가게에 있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문을 닫고 집으로 도망치듯 뛰어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손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전화의 전원을 끄는 일이었다. 주인 여자에게 연락이 올까 두려웠다. 주인 여자 몰래 감히 비밀스러운 의식이라도 치르고 온 기분이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세면대에서 손을 비누로 수차례 닦았지만, 손등의 립스틱 자국이 지워지지 않았다. 봉숭아를 실수로 손등에 오래 얹었을 때도 한동안 붉은 손등을 하고 다녀야 했다. 그때가 떠올랐다. 손은 젖은 머리로 자리에 누웠다.
자괴감이 들었다. 끝까지 멍청했다. 처음 일할 때도 아주 우스운 꼴을 하고 들어가서 일자리를 구걸했고, 마지막에는 어린 애나 할 법한 장난을 치고 나왔다. 하지만 그 모든 게 그때는 다 간절했다. 손을 꼭 잡고 싶었다. 매니큐어를 칠한 그 새빨간 손톱을 만져보고 싶었다. 화장을 시켜주고 싶었다. 그러면 정말 마네킹도 사람처럼 보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손은 옆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속이 홧홧했다. 하지만 참았다. 꾹 참고, 또 참다가 잠들기 직전에 조금 울었다.
손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꿈을 꿨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마네킹이 나왔던 것 같았다. 딱딱한 무언가로 제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손은 눈을 떴다. 부스스 눈을 떠보니 열린 문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누군가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니. 손이 말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거세지고 있었다. 하늘을 뚫어버릴 것처럼 매섭게 내리는 빗소리가 매미 울음처럼도 들렸다.
보내주는 마음으로 소설들을 하나하나 브런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20대에는 대단한 게 아닌 글인 걸 알면서도 누가 보면 내 아이디어를 훔쳐가거나 도용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우스운 일이지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문득 마네킹의 손이 잡고 싶어져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 딱딱하고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인간이 아닐 것이 분명한 그 손을 나는 왜 그렇게 쥐고 싶었는지. 전시에 도입된 로봇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뛰어들던 군인도 있었다고 하니, 마네킹의 손을 잡아보고 싶어지는 순간의 외로움 정도는 별것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을 쓴 지 꽤 되었을 즈음에 쓴 소설입니다. 기워서 조각보를 만드는 예술인 퀼트처럼 이 소설은 군데군데 쓰고 오리고 붙이고 반복했습니다. 문장이 한없이 부끄럽다 생각하며 쓴 글, 이제 글 따위는 그만 써야겠다 생각하는 이십대 중반이었을 겁니다. 창비학당 소설 강의에서 피그말리온을 처음 공개했고 의외로 호평을 받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학부생 때는 난 정말 똥제조기로다,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래서 힘을 얻고 더 써봐야지,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힘이 저를 대학원까지 이끌어주었습니다. (이건 좋은 선택이었을까...?)
지난 소설 <열린 창문>에서 최근 제 문학의 진로를 장애문학으로 정했다고 했는데, 신기하죠. 여기에도 씨앗이 숨어있네요. 장애가 있는 언니와 그 언니의 동생. 자매관계를 그린 소설. 참 제 성격도 그렇고 쓰고 싶은 게 확고한 사람입니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