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terfly Waltz

by 지지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나는 엄마의 강요로 홀로 이과를 선택하면서 본 적 없는 아이들과 같은 반이 되었다. 이과 학생들이 모두 그렇지는 않다고 해도, 적어도 우리 반 아이들은 하나 같이 말이 없었다. 그 탓에 수업시간에도 여러 번 혼이 나야 했다. 대답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해도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번에 어디까지 나갔냐는 말에도 침묵. 점심이 맛있었냐는 말에도 침묵. 자습하고 싶으냐는 말에도 침묵. 이에 바싹 약이 오른 선생님이 기합 줄 때조차도 침묵했다.


딱히 반항한다거나 단합해서 선생님을 골려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반에 꼭 한 명씩 있다는 시끄럽고 떠들기 좋아하는 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반은 말이 없었다. 선생님이 누구에게 묻는지도 몰랐고, 그게 누구든 내가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 보니 우리 반의 풍경은 가습기를 잔뜩 틀어놓은 것처럼 음울하고 흐릿하게 보였다. 가끔 활기찬 애가 자리에서 일어나 웃음을 주더라도, 그건 아주 잠시뿐이었다. 어디선가 수증기가 뿌옇게 차올라 아이들을 축축하고 흐물거리게 만들었다.


그 가운데 정윤은 홀로 또렷한 인상의 아이였다.


체육 시간이었다. 날은 3월답지 않게 더웠고 우리는 땀에 젖어 구령대에 앉아 정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윤이 뛰지 않는 바람에 단체로 기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몇몇은 여전히 뛰지 않겠다며 체육 선생님에게 대드는 정윤을 보며 저 답답한 뚱땡이. 하고 흉봤다. 나 역시 속으로 흉보고 있었다. 체육 선생님이 정윤에게 요구한 건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냥 운동장 끝에서부터 끝까지 뛰었다 오라 했을 뿐이었다. 정윤을 시작으로 달리기를 시키려던 모양이었다. 정윤은 싫습니다. 한마디만 하고 자리에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뜻밖에 말대답에 당황한 선생님이 뛰라고 해도 정윤은 싫다고만 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정윤을 향했다. 늘 술을 마신 것처럼 선생님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그러더니 정윤이 뛸 때까지 우리더러 뛰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선생님의 불호령에 결국 달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윤은 뛰겠다고 하지 않았다. 두 바퀴 반 정도 달렸을 때 선생님은 우리를 구령대에 앉혔다. 그리고는 본인만 그늘에 서고 정윤을 땡볕에 세운 채 설교했다.


5교시 수업이었다. 햇살이 일직선으로 정윤의 머리 위에 꽂히고 있었다. 정윤의 앞머리 끝으로 땀이 맺혀 떨어지고 있었다. 한 번 뛰면 저렇게 사서 고생할 일은 없는데 굳이 악착같이 대드는 정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쟨 왜 안 뛸까.


내가 중얼거리자 옆자리에 있던 은아가 대답했다. 뚱뚱하잖아. 뛸 때 존나 우스꽝스러우니까 안 뛰는 거겠지. 그렇네. 나는 무심한 투로 대답했다. 정윤의 몸으로는 가볍게 뛸 수 없을 것이다. 느리고, 어정쩡한 걸음으로 뛰게 되지 않을까? 정윤이 뛸 때마다 출렁거릴 뱃살이나 팔뚝 살이 눈에 훤히 보였다. 흔들리지 않는 건 늘 하고 다니는 손목 보호대뿐이었다. 정윤의 접힌 살 안으로 맺힐 땀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정윤과 눈이 마주쳤다. 멀리 있어 눈이 마주친 건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살짝 찢어져 매서운 정윤의 눈이 나를 본 것 같았다.


주연아, 너 귀 빨개졌다.


많이 더워? 은아가 물었다. 나는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더워서 그래.

교실에 에어컨 틀었으면 좋겠다.


선생님께 혼나는 친구를 보며, 뚱뚱하다고 그 친구를 비웃었다. 나는 내가 정윤보다 마른 몸이라는 이유로 정윤을 아래로 보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윤처럼 누군가에게 싫다고 말할 자신도 없는 주제에 누굴 무시하려고 든 걸까. 난. 엄마 앞에서 잔뜩 움츠러들어 이과에 가겠다고 대답하는 내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정윤이 뛰는 모습을 보게 된 건 며칠 지나서였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거리 건널목에 서 있는데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안절부절못하며 통통한 발을 구르던 정윤은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한쪽 발로 지면을 박차고 튀어 올랐다. 엄지손가락을 네 손가락으로 꽉 감싸 쥐고, 노 젓듯 팔을 여러 번 휘저으며 부지런히 아스팔트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흔들거리는 살집은 내 상상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박자를 타는 것처럼 단단했다. 나는 한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서 건널목을 건너는 것도 잊고 그 자리에 멈출 뻔했다.


건널목을 건너 뒤돌아보았다. 갈라졌던 바다가 하나가 되는 것처럼, 차들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빈 건널목 위로 들이닥쳤다. 나는 파묻혀버린 횡단보도의 흰 금을 보려고 애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잘못 본 게 아닐까. 보았다고 해도 그것은 나만 본 것이 아닐까? 근데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확신할 수 없었다. 애매모호함은 언제나 불쾌함을 남긴다. 그래서 그날부터 정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정윤이 달리는 모습을 한 번만 본다면, 그러면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환상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정윤의 자리는 맨 앞자리였다. 교실에 들어서면 선생님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게 정윤의 얼굴이었다. 체육 선생님이 그게 싫었는지 정윤을 멀리 뒷자리로 보내버렸다. 그래도 교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건 정윤이다. 교실 뒷문 옆자리에 앉아 있으니까. 나는 자주 복도와 교실을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정윤을 보았다. 정윤은 그때마다 연필을 돌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나는 내가 드나드는 교실 문이 순간 미닫이문이 아니라 회전문이라고 착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윤에게 말을 걸었다.


전에 건널목에서 너 봤어.


내 말에 정윤은 나를 보지 않고 손가락으로 돌리고 있는 연필을 보며 대답했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간 거야? 내 물음에 정윤은 돌리던 연필을 멈췄다. 연필이 바닥에 떨어지고 정윤은 손목 보호대를 한 왼손으로 연필을 집어 들었다. 나는 괜한 걸 물었단 생각에 귀가 달아올랐다.


그때 정윤이 대답했다.


봉사활동 늦을까봐 뛰었어.

그래? 어디서 해?


여전히 달아오른 귀가 홧홧했다. 왜 갑자기 와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거지, 라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말을 멈출 수 없었다.


보육원.


말을 마친 정윤은 다시 연필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도 봉사활동 채워야 하는데.


캐묻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하지만 대화는 이어가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사실 1학년 때 도서부 활동을 해서 봉사활동 점수는 넉넉하게 다 따놓은 지 오래였다.


그럼 너도 할래?

어?

안 그래도 선생님이 한 명 데려오라고 했어.


말을 하면서도 정윤은 계속 연필을 돌리고 있었다.


아님 말고.


연필 끄트머리에 붙은 지우개와 흑심이 어지럽게 원을 그리고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래.


저녁에 엄마에게 보육원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자 내 예상대로 엄마는 화를 냈다. 이주연, 정신 안 차릴래? 엄마는 내가 미래를 위해 대비해야 할 수많은 것들에 대하여 조곤조곤 짚어주었다. 대학은 첫 번째 관문이고, 그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면 또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이 있고 어쨌든 인생의 관문은 여러 개다. 엄마는 널 위해서, 네가, 왜 얼마 전 좋아하는 예능에 나온 봅슬레이, 그 봅슬레이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한 번에 순탄하게 지나가도록 도우려는 건데 왜 엄마 마음을 몰라주니. 자꾸 속이 울렁거렸다. 금방이라도 먹은 음식이 식도를 타고 올라올 것 같았지만, 그 느낌을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속으로 몇 번이고 씹었다. 잘근잘근 씹어서 삼켰다. 그리고 대답했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그런데 약속이라서 어쩔 수가 없어요.


돌이켜보니 이게 시작이었다.




보육원은 우리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십오 분 걸리는 곳에 있었다. 5층 건물로 지하 1층은 식당, 1층은 사무실 및 로비, 2층에서 3층까지는 아이들의 생활공간, 4층은 다용도실과 음악실, 5층은 옥상이었다. 나는 정윤과 함께 로비에서 김명진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나를 반겨주었다. 간단하게 봉사활동 신청서를 작성한 후에 4층으로 올라갔다.


보육원에서 하는 봉사활동이라면 분명 아이들을 상대할 줄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보육원은 많은 아이가 거실 같은 큰 공간에 모여서 왁자지껄 떠드는 유치원 같은 장소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부모님이 없다는 것 정도였다. 부모 품이 그리운 그 아이들과 함께 장난감을 흔들며 노는 곳, 그곳이 보육원일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상상과는 달리 보육원의 아이들은 나보다 한두 살 어린 중고등학생들이었고,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오래된 문서를 파쇄하는 일이었다.


5층의 이름도 없는 1평 남짓한 좁은 방에는 빼곡하게 쌓인 문서들, 그 옆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덜덜거리는 문서 파쇄기가 하나 놓여 있었다. 정윤은 바깥에서 의자 두 개를 가져와 문서 파쇄기 옆에 놓았다.


앉아.

고마워.

내가 파쇄기에 종이 넣을 테니까, 바닥에 널브러진 거 나한테 주면 돼.

응.

무작정 집어넣으면 고장 나니까 20장 정도씩 나눠서 줘.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없이 조용한 정윤이었는데, 명령조로 지시하는 정윤을 보니 뭔가 새로웠다. 나는 정윤의 말대로 스무 장씩, 종이를 하나하나 세어서 주었다. 혹시라도 파쇄기가 고장 날까 무서웠다. 고장 난다면 조용히 멈추는 게 아니라 폭발할 것만 같아 무서웠다. 내가 느릿하게 정윤에게 종이를 넘겨도 정윤은 불평 한 번 하지 않았다. 처음 정윤에게 말을 걸었을 때도 그렇고 무슨 말 한 번 할 법한 상황 속에서도 정윤은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묻는 말에만,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필요한 말만 했다.


삼십 분 정도 하고 나니 익숙해져서 두께만으로 감별해 종이를 척척 넘기게 되었다. 빠드득 빠드득 종이가 갈리는 소리를 들으며 기계처럼 일하던 중 특별해 보이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손으로 빼곡하게 적은 편지 한 장이었다. 첫 장은 어디로 가버린 모양인지 문장이 잘려 있었다. 대충 내용을 훑어보니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가 쓴 편지 같았다. 누군가에게 중요한 편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갈아도 되는 걸까?


내 물음에 정윤은 특유의 뚱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어.

중요해 보이는데.


정윤은 종이를 받아들고 잠깐 훑어보더니 이내 미련 없이 파쇄기에 넣었다.


여기 있는 건 이제 필요 없는 서류야.

그래도.

누구 건지도 모르잖아. 찾아줄 수도 없어.


정윤의 말이 맞았다. 어쩌면 편지의 주인은 보육원을 나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더는 말하지 않고 다시 종이를 정리해서 정윤에게 주었다. 빠드득 빠드득. 누가 이를 가는 것처럼 파쇄기가 종이를 씹는 소리가 좁은 방에 크게 울렸다.


그 소리가 멎을 때쯤 정윤이 입을 열었다.


정 신경 쓰이면.

응?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


그럼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거든.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빠드득 빠드득 소리가 울렸다. 정윤은 손목 보호대를 만지작거렸다. 그 말이 서운해서 나는 종이를 건네지 않았다. 정윤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게 더 서운해서 종이를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곧 다시 종이를 건넸고 파쇄기는 한참 빠드득거렸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와 보니 다목적실의 문이 열려 있었다. 방음 처리가 된 벽과 음악 교과서에서나 봤던 첼로와 바이올린, 악기를 담아둔 것으로 보이는 가방과 전자 피아노 한 대가 있었다.


여기 애들은 첼로도 배워?

어.

야, 부럽다. 우리 집보다 낫다.

왜?

우리 집은 내가 작곡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반대했거든.


중학교 때 예고에 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얘기했었다. 그러자 엄마는 아빠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고, 아빠는 근엄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 앉혀놓고 말했다. 아빠가 세상을 살아봐서 아는데, 예체능은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란다. 아빠가 생각할 때, 주연아. 야속해 보일 수 있겠지만 네게는 재능이 없을 거야.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말했다가는 도리어 큰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자신이 반대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빠는 언제나 대화로 해결하는 사람이었고, 그건 그저 설득이었다. 또 반대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럴 만큼 내가 주장을 내세우지도 않았으니까.


그래?


로비에 도착하자 수고했다고,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김명진 선생님이 말했다. 원래라면 안 되지만 특별히 먹고 가라고 했다. 하도 특별하게 얘기하기에 무언가 다른가 싶었는데, 보육원의 식당은 학교 식당 급식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정윤과 나는 줄을 서서 배식받았다. 보육원 아이들이 먹어야 한다는 요구르트와 빵은 받지 않았다. 식당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국을 한 숟갈 떠서 먹는 정윤을 보니 문득 학교 식당에서 정윤을 본 적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너 밥은 누구랑 먹어?

혼자 먹어.

같이 먹을래?

그래.


그 짧은 대화를 통해 정윤과 나는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 같이 먹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슬쩍 그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너 왜 그래 묻는 친구들에게는 불쌍하잖아. 라고 말했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짧다 못해 뚝뚝 끊기던 우리의 대화는 점점 길어졌다. 이번 주 보육원 봉사활동은 뭘 하면 되는지, 너는 그리고 나는 뭘 좋아하는지, 오늘 급식은 어떤 맛인지. 처음에는 단답식으로 주고받던 대화는 이제 점심시간으로는 모자랄 만큼 긴 대화가 되었다. 정윤과 얘기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정윤은 내게 불평하지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나도 정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정윤처럼, 정윤에게 그 어떤 것도 불평하거나 재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정윤은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고, 불편해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정윤에게 쓸데없는 것만 물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언제부터 선을 넘었는지, 또 언제부터 정윤을 재촉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랬다.




한 학기가 끝나가는 내내 정윤은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언제나 7교시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예체능 계열인 거야?


아니.

근데 왜 빨리 가?


종이를 파쇄하면서 정윤이 말했다.


피아노는 배운 적 있는데, 칠 줄 아는 건 버터플라이 왈츠밖에 없어.


파쇄기의 소리 때문에 정윤의 말소리가 묻혀 들렸다. 나는 정윤이 돌린 말을 꼬투리 잡아 다시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들려줄까?


정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는 머뭇거리다 정윤을 따라 일어났다. 정윤은 어딘가 들떠 보였다. 정윤은 다목적실의 앞에 섰다. 나는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멋대로 다목적실에 들어가는 걸 누가 보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그런 나와 달리 정윤은 주저하지 않고 문을 확 열어젖혔다.


누구 있으면 어떡해.

없어. 이 시간엔 레슨 안 해.

어떻게 알아?


정윤은 익숙하게 플러그를 꽂고 전자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나도 여기서 배웠었거든.


전자 피아노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나도 신청하면 여기서 배울 수 있어?


아니. 이쪽 사는 애들만 배울 수 있어.


정윤이 제 옆자리를 툭툭 쳤다. 내가 옆에 앉자 정윤이 큰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처럼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 나도 따라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닌 척했지만 나도 긴장했다. 내가 손뼉을 치자 정윤이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처음이었다. 정윤은 헛웃음 뱉듯 툭툭 웃을 때는 있었지만, 입꼬리를 끝까지 올려 웃는 일은 없었다.


정윤은 손가락도 통통해서 삐끗하면 다른 건반을 잘못 누를 것 같았다. 하지만 손끝으로 부드럽게 건반을 누르는 것이 한두 번 연습한 것 같지 않았다.


노래 제목만 들었을 땐 알지 못했는데, 노래를 들으니 바로 알 수 있었다. 통화연결음으로 자주 듣던 음악이었다. 낯익은 음악이 정윤의 손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손을 무릎 위에 공손하게 올리고 피아노를 치는 정윤을 보았다. 사람이 행복해 보인다는 말은 웃을 때,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고 있을 때만 쓰는 말인 줄 알았다. 피아노를 치는 정윤은 집중하느라 더는 웃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정윤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피아니스트할 생각 없어?

이 실력으로?

더 배우면 되지.

피아노가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데.


정윤은 전자 피아노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나중에 투자해줄게.


내 말에 정윤은 웃었다. 피아노를 치기 전, 내 박수를 듣고 짓던 웃음과는 달랐다. 난처함을 가리기 위해 짓는 미소. 딱 그거였다.


나는 지금도 정윤을 떠올리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떠오른다. 가끔 꿈도 꾼다. 정윤이 건널목을 가로질러 뛰어가는데, 정윤이 횡단보도의 하얀 선을 밟을 때마다 건반을 누르는 것처럼 버터플라이 왈츠가 울린다. 가볍고 사뿐사뿐한 걸음, 손짓,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정윤. 비록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주연아. 공연 보러 가자.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채 안 돼서 정윤에게 문자가 왔다. 보육원 봉사활동이 끝나고 접점이 없어 연락하기 어려웠는데 정윤이 먼저 연락을 주니 반가웠다. 내가 정윤을 생각하는 만큼 정윤도 나를 생각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들떴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콘서트 티켓을 나누어주는 걸 받았는데, 내가 작곡에 관심 있어 하는 게 기억이 났다며 함께 콘서트에 가면 좋을 것 같았다고 정윤은 말했다. 말을 길게 하는 편이 아닌 정윤이 잔뜩 들떠서 말하니까 나도 덩달아 기분이 들떴다. 나는 당연히 좋다고, 너무너무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비밀로 독서실을 간다고 거짓말하고 정윤을 만나러 갔다.


공연장은 내가 생각했던 공연장이 아니었다. 무대를 향해 객석 대신 테이블 여섯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라이브 카페 같은 느낌이었다. 공연의 테마는 ‘힐링’이었다. 입장료는 오천 원. 내가 지갑을 꺼내려 하자 정윤은 그럴 필요 없다며 만 원 한 장을 냈다.


나중에 커피 사.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정윤은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뭐야, 네가 노래해? 내가 장난스럽게 물어도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공연은 즐거웠다. 잘 모르는 팝송이 연달아 나왔지만, 모두 실력이 출중해서 즐길 수 있었다. 블랙가스펠이라고 했다. 흑인이 주로 부르던 CCM이라고 했다. 세 번째 곡이 시작될 무렵 정윤이 키보드 치는 여자를 가리키며 무어라 말했다. 그러나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내가 되묻자 정윤은 손목 보호대를 만지작거리며 정윤이 재차 말했다. 저 사람 잘 친다고! 나는 키보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은 마지막 코너는 심리상담이었다. 각 테이블마다 상담 선생님이 배치되고, 관객이 상담 선생님과 대화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쓰는 시간이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상담 선생님이 아니라 아까 보았던 그 키보드 치는 여자가 왔다. 그러자 정윤이 반가운 기색을 하며 말했다.


신기하다. 우리 아까 언니 얘기했었는데.

아, 진짜? 반갑다. 언니는 정혜민이야.


정윤은 혜민 언니의 앞에서 긴장한 듯 몇 번 말을 더듬었다. 나는 정윤이 피아노를 정말 좋아해서 동경하는 상대를 만나는 바람에 많이 떨리는 모양이라 생각했다. 혜민 언니는 팀에서 키보드와 작곡을 맡고 있다고 했다.


오늘 공연 곡들도 전부 내가 작곡했어.

주연아. 너도 작곡 관심 있다고 했잖아. 언니한테 많이 물어봐.

뭣하면 내가 알려줄 수도 있어.


알려줄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몸이 혜민 언니 쪽으로 기울었다. 어쩌면 정윤이 이 기회를 통해서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연락처 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연락해도 돼요?

어? 어. 그래도 돼.


서로 번호를 교환하는 우리를 정윤은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나는 정윤에게 문자로 혜민 언니의 번호를 보냈다.


정윤아. 너한테도 보냈어.

고마워.


정윤은 휴대전화를 확인하고는 텅 빈 무대를 돌아보았다.


콘서트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혜민 언니에게 문자를 남겼다. 언니는 주말에 나와 정윤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공연의 여운이 남아서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찾아보았다. 힐링, 블랙가스펠. 그러자 포교활동, 조심, 이라는 말이 보였다. 하지만 공연의 정확한 제목과 연관 없는 게시글이었다. 정윤이 말한 블랙가스펠을 떠올리며 기독교 이야기인가보다, 하고 대수롭잖게 생각했다.


혜민 언니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닭갈비를 사줘서가 아니라 내가 하는 말을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어서였다. 내가 하는 말은 하나 같이 다 필요 없는 말들뿐인데도 언니는 빠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절대 끊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꼭 정윤이 한 명 더 있는 것처럼 느껴져 반가웠다. 닭갈비를 다 먹고 혜민 언니 밴드의 연습실로 갔다. 연습실에는 마이크를 중심으로 뒤쪽에 드럼이 있고, 오른쪽에 베이스 왼쪽에 일렉기타와 키보드가 있었다. 우리 셋이 들어서자 연습실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혜민 언니는 간단하게 이것저것 소개해주더니 마실 걸 가져오겠다며 나갔다. 정윤과 나는 방음벽에 등을 기대고 나란히 앉았다.


방음벽이 얄팍해서 소리가 다 통과할 것 같았는데 혜민 언니가 문을 닫고 나가자 아무 소리도 나지 들리지 않았다. 독서실에서 조용히 교과서를 읽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어쩐지 겁이 나서 바닥을 쥔다는 게, 옆에 앉은 정윤의 손목을 잡았다. 하필이면 손목 보호대를 찬 손목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손을 떼고 정윤을 보았다. 여느 때와 같은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소음도 없이 조용하기만 한 공기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정윤은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투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말했다.

볼래?

정윤이 손목 보호대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급히 대답했다.

아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지만 사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정윤의 손목 보호대 아래에는 분명 내가 모르는 정윤의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건 내가 물어보지 않은 정윤의 집과 관련된 거겠지. 하지만 묻지 않았다. 물어보면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내가 정윤에게 상처를 줘서 나와 멀어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나는. 정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그래? 정윤은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앞을 보았다.


나는 정윤의 손목을 잡았던 내 손을 보았다. 누군가와 닿은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이었다. 중학교 때 단짝 친구와 침대에서 손을 잡고 앉아 있는 걸 본 엄마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 후로 누군가와 닿는 일을 조심하게 되었다.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다시 바닥을 그러쥐었다. 까칠한 방음재가 손바닥에 긁히는 감촉이 느껴졌다.


혜민 언니는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냉장고에 주스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서 잠깐 편의점에 다녀왔다고 했다. 영영 굳은 채로 침묵 속에 있을 것 같았던 정윤과 나도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움직였다. 우리는 주스와 과자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동물원의 코끼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학교생활, 연예인 A양과 재벌 3세의 연애 따위의 같잖은 이야기. 어느 순간 ‘행복이란 무엇인가’가 되어 있었다. 혜민 언니는 진지하게 말했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도와줄게. 나는 먼저 그 길을 가봤으니까, 잘 알아.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대충 고맙다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정윤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주연아.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 역시 똑같이 대답했다. 나도 네가 행복하면 좋겠어. 꼭 프로포즈하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잡은 정윤의 손은 부드럽게 따뜻했다. 행복했다. 나는 이미 행복해졌다. 충분했다. 정윤은 맞잡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우리 언니한테 도와달라고 하자. 같이 행복해지자.


분위기에 홀려 그래, 라고 대답했는데. 설마하니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게 성경을 공부하는 일일 줄은 몰랐다. 혜민 언니는 부모님께는 아직 말하지 말라고 했다. 말하면 곧바로 붙잡혀서 독서실에 처넣어질 게 분명해서 어차피 난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정윤과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언니의 연습실에서 만나 공부하게 되었다.


혜민 언니는 말할 때마다 항상 ‘우연’을 강조했다. 우리가 콘서트에서 만난 것도 우연, 대화하게 되고 친해진 것도 우연, 내가 치는 키보드가 마침 네가 배우고 싶어 하던 것도 우연, 정말 신기하지 않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지? 사실 우연이 아니었던 거야. 운명이었던 거야.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정말 내가 신에게 선택받은 기분이 들었다.


혜민 언니는 천국은 하나님의 곁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곁은 마음이 평화롭고 따뜻해지는 곳이고, 어떤 불행도 슬픔도 없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 곳이라면 나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갈 수 있는 건데요?

우리가 공부하면 돼. 성경을 공부해서 알면 되는 거야. 베드로도 성경을 공부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고 제자가 될 수 있었어. 마찬가지야.


혜민 언니는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할 거라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죄의 길이라 말했다.


알면서도 죄를 짓는 거잖아.


죄. 너무 무거운 말이었다. 성경에는 죄가 많았다. 죄를 알아간다는 건 양옆으로 낭떠러지인 좁은 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 삐끗하면 굴러떨어져서 죄를 짓고 천국에 가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다해 혜민 언니가 하는 말을, 성경이 하는 말을 지키려고 애썼다. 이렇게 천천히 노력해서 마침내 성경을 모두 통달하게 되면 천국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혜민 언니가 더 이상 공부를 같이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막 성경이 뭔지 궁금해지려던 참이었다.


신촌의 한 고기집에서 고기를 먹던 중이었다. 혜민 언니는 소주 한 병을 주문하고 우리의 눈치를 보았다. 나도 따라 눈치를 보았다.


이번에 우리 밴드가 공연을 준비하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 혜민 언니는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대신 너희들이 배울 수 있도록 센터를 알아봤는데, 거기 가서 배울래?

센터요?

우리가 했던 것보다 좀 더 힘들 거야. 거기는 매일 두 시간씩 교육을 하거든.


매일 두 시간. 나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몇 시인데요?

일곱 시에서 아홉 시야. 주연이 너 야자하는 시간이지?


그랬다. 야자를 빼먹었다가는 곧바로 엄마한테 연락이 갈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엄마는 아빠한테 말할 것이고, 아빠는 또다시 나를 불러내 얘기할 것이다. 그것만은 절대 싫었다. 하지만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내 생활이나 내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길’을 포기한다면, 그건 죄다.


힘들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


혜민 언니가 말했다. 나는 정윤을 보았다.


너는?


정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초조해졌다. 나를 두고 정윤만 가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야자를 빠지면 엄마에게 전화가 갈 텐데. 그러면 술을 마신 건 혜민 언니인데 내가 금방이라도 멀미가 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지금 대답하지 않아도 돼.


혜민 언니가 말한 줄 알았는데 정윤이었다.


언니, 우리 먼저 가볼게요.


정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집에는 연락하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정윤과 함께 골목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어디를 가는 건지 우리 둘 다 알 수 없었다. 그냥 걷고 또 걸었다. 어쩌면 길을 헤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숲속에서 길을 잃은 헨젤과 그레텔처럼.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나와 정윤은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누가 먼저 잡았는지는 모른다. 정신 차려보니 잡고 있었다. 두렵고 무서운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드문드문 쳐다보는 것 같았다. 교복을 입은 여자애 둘이서 손을 잡고 걷고 있으니 기묘하게 보였을 것이다.


정윤아. 넌 꿈이 뭐야?


갑자기 낯간지러운 말이 하고 싶었다. 정윤이 진짜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정윤이 피아노를 쳤으면 좋겠고,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바람이다. 정윤의 바람이 뭔지 알고 싶었다.


예전에는 혼자가 되는 거였는데.

독립?

아니. 그냥 혼자가 되는 거.

혼자?

어디 저기 멀리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었어.


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어. 그리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어. 연락하고 싶어도 연락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말하는 정윤은 이미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럼 나도 따라갈래.

그래.

정말?

정말.


따라오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내 말에 정윤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넌 날 모르거든.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근데 그건 예전 꿈이고. 지금 꿈은 우리 둘이 같이 천국 가는 거야.


내 손을 잡은 정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실 나는 센터를 권유하는 혜민 언니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건 사이비가 아닐까, 하고. 처음부터 그런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혜민 언니 말대로 우리는 ‘우연히’ 만났고, 내가 먼저 전화번호를 물어봤기 때문에 의심하다가도 고개를 저었다.


만일 사이비라면, 천국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는 정윤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착한 언니를 의심하는 내가 나쁜 사람 같았다. 죄인 같았다. 하나님의 길을 어기는 죄인이 되는 것, 혜민 언니는 그게 제일 큰 죄라고 했다. 살인보다도 가장 큰 죄. 나는 망설이다 정윤을 믿기에 내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정윤은 혜민 언니가 사이비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놀라지도, 경악하지도 않았다. 가만히 듣고 대답했다.


엄마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예전엔 그런 생각 안 했잖아.


정윤은 걸음을 멈췄다. 나도 따라 멈췄다.


우리. 가출하자.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일, 가출을 정윤의 입으로 들으니 뭔가 이상했다. 가출이라니? 나오면 어디서 지낼 건데? 돈은 어떻게 해? 학교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 정윤은 차분하게 말했다.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해주는 사업도 있고, 쉼터도 있어. 돈이야 우리가 어떻게든 마련하면 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나는 또 홀린 듯 반쯤 설득 당하고 있었다. 그래도, 하며 내가 주저하자 정윤은 내 손을 놓았다. 생각해보고 연락해. 그 말을 끝으로 정윤은 인사도 없이 뒤돌아서 가버렸다. 나는 언제 길을 잃은 사람처럼 굴었냐는 듯, 버스정류장을 향해 반듯하게 걸어갔다.


집에 돌아가니 어두컴컴한 거실 소파에 엄마가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다녀오는 거야?

친구 만나고 왔어.


나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불이 꺼져 있는 게 차라리 다행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엄마를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너는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죄송해요.

됐다. 됐어. 넌 늘 그런 식이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렴풋이 팔짱을 낀 모습이 보였다.


이번 일은 아빠한테 얘기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말을 마친 엄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게 꼭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영원히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아빠는 엄마의 말만 들을 것이다. 그곳에서 계속해서 산다면 나는 행복해지지 못한 채,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야만 할 것 같았다. 집을 나오면 힘들겠지만 그래도 정윤이 옆에 있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윤이 있다면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정윤에게 그래, 가자. 라고 문자를 보냈다.


혜민 언니에게는 말하지 말자고 둘 다 약속했다. 걱정할 테니까, 우선 우리끼리 나가서 좀 자리를 잡고 안정되면 도와달라고 말하자. 정윤의 말이 옳았다. 혜민 언니에게 걱정이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가출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었고 절대 혜민 언니의 잘못이 아니었다. 내 부모님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혜민 언니의 존재를 알게 되면 언니를 물고 늘어질 게 분명했다.


결심이 어려웠을 뿐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바로 집을 나오는 건 무리였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 시간을 두고 옷가지는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챙겨서 지하철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세면도구나 수건은 학교에서 사용할 거라 말하고 가져왔다. 드디어 약속한 금요일 오후 6시, 나는 정윤을 만나러 갔다. 버스 안에서 나는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들어와 자리를 보고 내가 없는 것을 알아채면 곧바로 엄마에게 연락할 것이다. 그래, 너무 늦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집을 나온 나는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나는 가출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버스 천장을 보기도 하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눈물을 한쪽으로 모아두려고 애썼다. 하지만 내 눈에 담아둘 수 없을 만큼 눈물이 나서. 결국 넘쳐 흘렀다. 도착해서 정류장에 내려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멀리 정윤이 보였다. 정윤은 들고 있던 커다란 가방을 내려놓고 나를 안아주었다.


가출은 생각보다 정말 별거 아니었다. 교복을 벗은 우리를 학생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잠은 찜질방에서 교대로 자고 밥은 분식집에서 먹었다. 낮에는 피시방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질리면 만화방이나 게임방을 갔다. 오히려 집에 있을 때보다도 활기차고 즐거웠다.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원래 우리의 계획은 집을 나오고 일주일 이내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력서를 요구하는 곳이 많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력서를 쓰게 되면 주민등록번호를 적어야 하는데, 그러면 우리가 미성년자인 게 들킬 거고, 우리를 찾던 부모님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수중의 돈은 딱 사흘째 되는 날 떨어졌다. 마음이 조급해진 우리는 집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다짜고짜 버스를 타고 월미도로 향했다. 해가 질 무렵 도착한 월미도는 찝찔한 바닷바람이 눅진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정윤과 나는 서로 한 뼘 정도 거리를 두고 바닷가를 걸었다. 답이 없었다. 점점 검게 물들어가는 바다가 내 마음 같았다.


그러다 정윤이 돈을 빌렸다며 민박집에 가자고 했다.


누구한테 빌렸는데?


내 물음에 정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혜민 언니야? 언니한테 말 안 하기로 했잖아.

말 안 했어. 돈만 빌렸어.


나는 혹시 위치추적이라도 될까봐 휴대전화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데, 정윤만 저렇게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면서 통화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윤은 선불이라 괜찮다고 말했지만, 학생이 선불 휴대전화를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거짓말인 게 뻔했다. 우리는 할머니 한 분이 운영하시는 민박집에 묵게 되었다. 큰 마당을 둘러싸고 여러 칸의 방이 있는 민박집이었다.


할머니가 안내해준 방에는 미니 냉장고 하나가 놓여 있고 한구석에는 바닥에 까는 요 한 장, 덮는 이불 한 장, 베개 두 개가 있었다. 요와 이불이 더 없느냐는 정윤의 말에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급한 대로 요는 정윤이, 이불은 내가 쓰기로 했다. 자리에 누워 천장을 보니 울컥 화가 났다.


그래도 민박집인데 어느 정도 시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조금만 참아. 내일 센터 가면 괜찮아질 거야.


새벽에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쳤다. 팔, 손, 심지어는 발바닥까지 물렸다. 이리저리 벅벅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다가갔다. 그러다 정윤이 없다는 걸 알았다. 설마 혼자 가버린 건가. 그 생각이 들자 몽롱했던 머리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순식간에 맑아졌다. 나는 헐레벌떡 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정윤은 저 멀리 마당과 대문 틈에 서서 통화하고 있었다. 뭐지? 싸한 느낌에 나는 일부러 기척을 내지 않고 정윤에게 다가갔다.


네, 언니. 주연이랑 같이 있어요.


간질거리는 모기 물린 자리를 소매로 문지르자 소매가 꼭 그날의 방음재처럼 까칠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날 느꼈던 불안함도 함께 살아났다. 오싹했다.


내일 센터 갈 돈만 부탁드릴게요.


나는 정윤이 전화를 끊고 나를 돌아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전화를 끊은 뒤에도 정윤은 나를 쉽게 눈치채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나를 발견하고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곧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일어났어?

누구랑 통화한 거야?

심장이 두근거렸다.

혜민이 언니. 어제 말했잖아. 돈 빌렸다고.


귀가 점차 뜨거워졌다. 그동안 죄를 짓는 것 같아 의심하지 않았던,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이상한 점들이 하나하나 생각났다.


솔직하게 말해봐.

뭐를?

말해보라고. 혜민 언니랑 뒤에서 내 얘기했어?


포교활동, 조심. 손이 벌벌 떨렸다.


너 알고 있었잖아.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근데 왜 그랬어.


혜민 언니와 정윤을 만나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 대의를 위해 독서실에서 몰래 빠져나간 게 들켰을 때 엄마한테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다고 거짓말하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그 과정을 정윤은 모두 알고 있다. 내가 말했으니까. 너무 무섭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다 말했으니까. 그런데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어떻게 나를. 어디선가 빠드득 빠드득 소리가 들렸다.


힘들다고 했잖아.

뭐?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빠득거리는 소리가 한층 더 강해졌다. 정윤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모든 게 다 늦어버린 지금 내가 갈 수 있는 게 어디 있을까 생각했다. 없었다. 어디도 없었다. 나는 정윤만 보고 모든 걸 다 내던졌는데. 결말이 이거라니.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아가서 죄송하다 비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아빠한테 내쫓기더라도 그것뿐이었다. 나는 주인집 할머니가 자고 있을 방문을 두드렸다. 정윤이 뭐 하는 거냐고 나를 붙잡았지만 뿌리쳤다.


할머니. 할머니. 전화 좀 빌려주세요. 제발요.


언젠가 혜민 언니가 말해준 적 있었다. 천국 문을 두드리는 죄인의 이야기를. 제발 안에 들여달라고. 전혀 다른 상황인데 왜 그 이야기가 생각난 걸까. 집은 나에게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었는데. 내게 천국은 정윤과 함께 가는 곳이었는데. 전화를 거는 동안 속으로 여러 번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야. 수화기를 붙잡은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지만 계속 그렇게 주문을 걸었다. 밖에 서 있는 정윤도, 정윤의 손에 쥐어진 휴대전화 너머 혜민 언니도 다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길 간절하게 바랬다.


엄마는 파리한 얼굴로 정윤에게 보호자를 불러두었다고 짧게 말했다. 정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나는 내가 정윤을 밀고한 배신자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와 한 공간에 있는데도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는데도 몸이 허공에 붕 뜬 것 같았다. 엄마와 같은 풍경을 보는 게 부담스러워 내 옆 차창 밖만 바라보았다.


한참 차를 몰던 엄마가 돌연 갓길에 차를 세웠다. 운전석을 보니 엄마가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쓰러지듯 앉아 있었다. 어디가 아픈 걸까 뒷골이 서늘했다. 곧 엄마의 어깨가 들썩이는 게 보였다.


죄송해요.


습관처럼 말을 뱉고 나서 그제야 엄마에게 사과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잘못했어요.


어떻게 엄마를 위로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내 앞에서 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화를 내면 내는 사람이었지 감정이 폭발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물쭈물거리다 엄마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내 입에서 아, 하고 막혔던 숨이 터져 나왔다. 정윤이 생각났다. 내가 정윤을 그곳에 두고 왔다. 더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두고 왔다. 나에게 먼저 거짓말을 한 건 정윤이니까 당연한 건데. 그런데. 자꾸 뭔가에 걸린 것처럼 정윤이 생각났다. 왜 나한테 그런 걸까. 왜 내게 거짓말을 했던 걸까. 아니면 혹시 내가 정말 진리를 저버리고 잘못된 길을 가는 걸까. 죄인의 길을 걷는 걸까. 이 상황에서도 내 생각만 하는구나, 나는.


정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내가 편하려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정윤이 보여주는 모든 것들을 필사적으로 무시했다. 그런 내가 정윤을 탓할 수 있는 걸까.


괜찮아.


엄마가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모른 척 눈을 감았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그것 뿐이었다.


정윤은 개학식날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쭉 나오지 않았다. 휴대전화 번호도 바꿨다. 내가 정윤에 대해 아는 거라곤 휴대전화 번호. 그거 딱 하나였다. 나는 정윤의 집도, 친구도 몰랐다. 하다 못해서 걔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기억해낼 수 없었다. 정윤은 우리 집도, 내 친구도, 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모두 속속들이 꿰고 있었는데 나는 모른다. 알았는데도 모른다. 정윤의 휴대전화 번호가 바뀌는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되었다. 뿌연 교실에서 홀로 또렷한 줄 알았던 정윤은 사실 제일 흐린,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는 존재였다.


혜민 언니에게서 두어 번 연락이 왔지만 받지 않았다. 간혹 정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받을까도 했지만 꾹 참았다. 그러다 혜민 언니와도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나는 정윤을 찾아 보육원을 방문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손목 보호대를 하나 샀다. 그리고 정윤이 했던 것처럼 왼쪽 손목에 끼고 다녔다. 정윤이 생각나면 손목 보호대를 한 손목을 쥐었다. 그때와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얼추 비슷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야. 그리고 한 달 후에 가위로 잘라서 버렸다.


고3이 되기 직전 겨울방학, 보육원에서 전화가 왔다. 봉사활동 확인서를 가져가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왜 이걸 굳이 지금 와서 얘기하냐고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자주 다녔던 것도 아니고 주말마다 오간 것뿐이었는데 보육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익숙함 무언가를 느꼈다. 보육원에 도착해서 로비에서 김명진 선생님을 만났다. 서류봉투를 받아 안을 들여다보니 스무 장 남짓한 종이가 들어 있었다. 종이에는 정윤과 내가 함께 문서를 파쇄했던 시간이 적혀 있었다. 김명진 선생님은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도 좋다고 말했다. 나는 묻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김명진 선생님이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나는 다용도실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열쇠를 받은 나는 다용도실이 아닌 정윤과 내가 문서를 파쇄했던 방으로 갔다. 잠겨 있을 줄 알았는데 열려 있었다. 방은 그때와 달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종이는 없었다. 골골거리며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나를 위협하던 파쇄기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코드를 꽂고 전원을 켜자 전보다 파쇄기는 더 심하게 끅끅대었다. 이제 스무 장도 삼키기 어렵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한 장씩 집어넣을까 하다가 과감하게 스무 장 모두 집어넣었다. 전처럼 겁나지는 않았다. 다행히 파쇄기는 주춤거리는가 싶더니 종이를 야무지게 씹어 삼켰다.


수능이 끝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실용음악학원에 취미 피아노를 등록한 일이었다. 뭐라고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아닌데 강사가 버터플라이 왈츠 악보를 내밀었다. 의뭉스런 표정을 짓는 내게 강사는 피아노를 시작하는 초보자들이 배우는 곡이라고 말했다. 듣기에는 어려운 곡이었는데 막상 쳐보니 어렵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연습하니 익숙해져서 이제는 눈 감고도 칠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는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배웠다. 5개월 정도 배웠는데 결국 나는 칠 수 있는 게 버터플라이 왈츠밖에 없었다.




제 자전전 경험이 많이 들어간 소설입니다. 정말 오래전에 쓴 소설이에요. 사랑을 가득 담은 소설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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