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꿈을 되찾으러 달에 갑니다*

김선미, <칩리스>

by 지지

* 제목 김선미, <칩리스> 본문 발췌


▶ 줄거리

발전한 미래사회, 인류는 수명연장을 위하여 장기이식할 클론을 배양하는 데 성공한다. 그 첫 클론은 심장질환을 앓는 시욱의 유전자를 따 만들어졌으며,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시욱의 어머니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클론은 시욱의 집으로 찾아오게 되게 시욱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려 했으나 그와 우정을 나누며 친구가 된다. 그러나 테러리스트의 습격으로 인해 시욱과 오안은 장기밀매집단에 잡혀가 심한 일을 당하게 되고, 이때 오안이 자처해서 자신이 시욱인 척까지 해가며 시욱을 구했으나 정작 구출될 때 시욱은 안일하게 오안의 손을 놓는 선택을 한다. 이것을 내내 후회한 시욱은 군에 들어가서까지 오안을 찾고, 칩리스를 체포하는 군의 입장인 시욱과 칩리스를 해방하는 입장인 오안. 서로 대척점에 선 두 사람은 마침내 만나게 된다. 그간 세월의 벽이 허무한 듯 연합하여 그들은 칩리스(클론)와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삶을 사는 미래를 그린다.


▶ 감상


읽으면서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이 생각났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여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음에도, 인간성이 처절하게 바닥을 찍고 있는 배경과 인간성을 회복하게끔 하는 계기이자 매체가 비인간성의 산물이자 상징이라는 점에서였다. (<천 개의 파랑>에서는 기수로봇이, <칩리스>에서는 오안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할지 몰랐던 가나는 그저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해왔다. 그러나 오안을 보며 그를 통해 오히려 사람간의 소통방식을 배우고 비로소 인간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물론, 외롭게 혼자였던 소년 시욱에게도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었다는 점에서도 재밌었다.


나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건 주인공 4인방이 아닌 지나가는 단역이었던 ‘소녀A’를 꼽고 싶다. 그녀는 장기 적출을 도맡아 하는 기술자의 보조였다. ‘소녀 B’와 함께. 그녀는 이번에 들어온 희귀혈액적출 요청 과정에서 소녀B의 혈액형이 우연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기술자에게 흘렸고, 그 탓에 친구였던 소녀B가 죽은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훗날 소녀B의 시체를 매장할 수 있게 도와준 오안과 가나가 탈출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준다. 자신의 몸에 폭탄을 설치하여 자폭하는 것으로.


오안은 소녀A에게 함께 가자고 말하지만, 그녀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며 기술자를 살해하고 기폭장치를 꺼내 자폭한다. 소설 속에서 소녀A는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으며, 그녀가 무엇을 하다가 팔려왔는지, 하다못해 어떤 감정으로 악한 사업에 부역자가 되었는지조차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부분에서 가장 큰 울림을 받았던 것 같다. 그 짧은 소녀A의 출현이 내게 아주 진득한 울림을 주었다.


모두를 구하라던 그녀의 전언처럼, 오안과 가나는 살아남아 많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공적으로 태어난 존재 클론과 자연히 태어난 존재 인간이 함께 화합하는 사회를 꾸리고자 노력한다. 평화는 반드시 많은 희생을 딛고 이루어진다.


▶ 인상 깊었던 구절


비밀에 대고 인사를 할 수는 없어요. P.168


아무리 따져봐도 비참한 삶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을 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P.218


밤마다 오안은 무력함에 빠진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달에 가기 위해 우리가 잠시 우주 기지에 살고 있다는 가정이었다.
“우리가 지내는 이곳은 우주 기지입니다. 우주 기지는 달과 아주 가까워요. 보세요. 달이 무척 잘 보이죠? 달에는 물도 없고 중력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는 달에서 살기 위해 우리는 지금 우주 기지에서 적응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달에 가려는 이유는 사실 비밀리에 숨겨둔 꿈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꿈을 되찾으러 달에 갑니다.” P.281-282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마음을 열지 않아 순간순간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자기 탓이니까. 지금껏 스스로 선택한 일들이 이어져 온 결과니까. 그래서 가나는 따라 웃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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