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급류>
*백예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가사 중
큰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사랑 소설
흡입력이 좋은 소설이다. 처음 도입부부터 시작해서 소설 끝까지 쭉 집중하여 읽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지루하지도 않았고, 흐름이 끊기는 부분도 없었다. 한 번 틀면 계속 보게 되는 넷플릭스 시리즈처럼 물밀듯 치밀고 들어오는 서사에 오랜만에 즐겁게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첫 도입부에서 떠오른 두 구의 시체의 얼굴에 달라붙은 다데기를 생각하며 오싹했던 기분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언젠가 릿터를 통해 읽었던 인터뷰에서 정대건 작가님이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 <급류>라는 장편소설이 그 연애소설인 것 같다. (시기상으로 홀로 짐작컨대) 나는 이 소설이 마냥 연애소설 같이 느껴지지 않았던 게 좋았다. 첫 시작 때문인지 내내 소설의 분위기가 불길하고 소란스럽게 느껴졌다. 고요하게 서사가 흘러가더라도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마치 영화 <샤이닝>을 보는 것처럼. 즐겁게 읽었다.
한편으로 아쉬웠던 점은 그들의 ‘천년의 사랑’이 이해되면서도 이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긴 세월을 지나는 동안 그들은 오로지 천년의 사랑을 제외한 이외의 사랑들은 그저 잠깐 만나 가벼운 여흥, 또는 어떤 위로가 필요해서 만난 도피처들로만 묘사되는데 소설의 큰 흐름을 생각했을 때 이해가 되면서도 아, 알 수 없다. 그렇게 느꼈다.
아빠가 언제든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도담으로 하여금 아빠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p.16
별로 슬프거나 하진 않아. 애초에 없었으니까 그립지도 않고. 그저 남들은 모두 알고 있는 세상 사는 매뉴얼 같은 걸 나만 모르는 건 아닌가 싶은 기분이야. p.42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도담이 해솔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p.53
사람들이 숭고하다며 가치를 부여하는 일들은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벌어지거나 무모함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p.68
어떤 말은 혀를 통해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 의식을 붙들어 매고 돌이킬 수 없는 힘을 가진다. p.111
사람들은 그들이 기대한 만큼 비극을 겪은 사람이 충분히 망가지지 않으면 일부러 망가뜨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p.161
왜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 걸까. 물에 빠지다. 늪에 빠지다. 함정에 빠지다. 절망에 빠지다. 빠진다는 건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p.193
누가 사랑이라는 치사한 말을 발명했을까. 자신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을 두 글자로 퉁치는 것처럼, 사기처럼, 기만처럼 느껴졌다. 사랑 노래 가사를 들으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해솔이 떠오르는 것도 싫었다. p.199
죽음을 망각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구는 게 젊은 이들의 특권이라면 해솔은 젊음을 잃어버렸다. p.209
실제 삶에서 우리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렵지만 극 중 등장인물은 존재 이유가 명확하잖아. 그래서 나는 이야기가 좋아. p.214
서로를 의지한다는 건 함께 가라앉는 것 같았기에. p.36
그때 생각했어. 누군가 죽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을 향해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이란 말을 발명한 것 같다고. 그 사람에게 한 단어로 할 수 있는 말을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만든 것 같다고. p.5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