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은 화자 경하가 친구 인선에게서 지금 와줄 수 있느냐는 급박한 문자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진 프로덕션 일을 하며 경하와 함께 파트너로 일을 하던 인선은, 오랫동안 제주에서 노모를 모시다 이제는 노모를 떠나보내고 홀로 목공방을 운영하며 제주에서 지내고 있다. 경하는 인선이 이런 연락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급한 일이 생겼구나 싶어 택시를 타고 찾아간다. 그곳에서 인선이 두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겪어 입원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인선이 하는 부탁은 의외의 부탁이었다. 자신의 새, 앵무새 ‘아마’가 죽을지도 모르니 반드시 ‘오늘’ 물그릇을 채워달라는 부탁이었다. 비이성적인 부탁에 화자는 궂은 날씨에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인선의 집을 찾아간다. 갖은 고생 끝에 집을 찾아가지만 새는 죽었고 화자는 그것을 묻어준다. 그리고 다음날, 인선의 환상이 화자를 찾아와 자신이 생전 나약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에 대해, 희생된 외삼촌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 속 경하와 인선이 진행하기로 했던 프로젝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인선은 경하에게 묻는다.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중략)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중략)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p.192
소설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손가락이 절단된 인선의 두 손가락을 간병인이 3분에 한 번씩 바늘로 찔러주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절단되었던 신경이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지난 한강의 작품 <흰>에서부터 이어져오는, 한강이 추구하는 애도의 방식이라 여겨졌다. 한강의 <흰>에서는 바르샤바의 무너진 벽의 잔해 앞에 사람들이 끊임 없이 꽃을 놓고 초를 밝히며 애도의 뜻을 이어간다. 이것은 단순한 애도의 연장이 아닌 그들이 부당한 국가권력을 향해 대항하였다는 자긍심을 복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3분에 한 번, 고통을 느끼면서도 끊어진 신경을 잇기 위해 바늘로 접합 부위를 찌르는 과정은, 작가가 우리 삶에도 이러한 고통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소설의 내용은 정리하고 보면 단순해보일 수 있으나 그 안에 담은 메시지는 내밀하고 깊다. 4.3 사태 당시 생생하게 그 자리를 목격한 이들의 목소리를 작가는 직접 담아내기를 선택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선이 들려주는 실종된 외삼촌의 유해를 찾아 계속 헤매이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인선의 말처럼 무기력하고 약한 존재로만 보였던 그들이 사실은 3분에 한 번씩 고통을 견디듯, 아픔을 참으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결말부에서는 3부의 제목인 불꽃처럼 사그라들었던 불꽃을 아슬하게 다시 피워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때 사라지지 마, 라고 말하는 간절한 목소리가 <흰>에서 어머니가 낳은 지 두 시간만에 죽어버린 아이에게 간절하게 살라고 하던 목소리와 겹쳐 들리며 다시 한 번 한강 작가가 말하는 애도의 메시지를 명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따뜻한 얼굴을 가졌으므로 그 눈송이들은 곧 녹았고, 그 젖은 자리 위로 다시 새로운 눈송이가 선득하게 내려앉았다. p.83
혼자만 산 이유를 알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 불꽃 같은 게 활활 가슴에 일어서 얼어죽지 않은 것 같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어요. p.133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