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창문

by 지지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왜 이런 일을? 그가 묻자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 앳된 얼굴을 한 아르바이트생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텔레비전에서 보고 재밌어 보여서요. 그는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던 ‘극한 알바 특집’에 고층빌딩 창문닦이 일이 소개되었던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아르바이트생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생각했더니 과연 그런 거였구나. 그래보아야 아르바이트생들은 일주일도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방송에서는 좁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지만 실제로는 1인용 곤돌라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몇몇은 곤돌라에 올라타자마자 다시 내려달라며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있었고, 한 번은 누군가가 졸도한 적도 있었다. 꽤나 담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찾아온 이들은 버티지 못했다.


그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일을 시작한 사람들 중 유일한 사람이었다. 재작년 겨울에 일을 시작해서 벌써 오 년도 넘게 지긋하게 건물 외벽에 달라붙어 창문을 닦고 있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날은 그 주에서 가장 따뜻한 날이었다. 그럼에도 바람이 칼처럼 피부를 에고 들어왔다. 그는 몇 번이고 이를 악물고 창문을 깨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버티고 내려오자 선배들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젊은 친구가 참 악바리라고 말했다. 그 말은 그가 그때까지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창문닦이 일을 하기 전 그는 노량진의 고시촌에 살며 공무원을 준비했었다. 그럭저럭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럭저럭 스펙을 쌓고 나와 보니 ‘그럭저럭’ 살아서는 무엇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남들 따라 9급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노량진 고시촌으로 왔다. 그곳에서 그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공무원을 준비했지만 매 해 낙방했다. 그가 일곱 번째로 낙방한 날, 부모님은 그에게 더는 지원해줄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좀 더 노력하는 삶을 살아라.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노량진 고시촌으로 올 적에 그를 배웅해준 건 어머니도 아닌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몹시 피곤한 얼굴로 운전대에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백미러로 아버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버지가 자신을 경멸한다고 느꼈다. 무능하고, 쓸모없는 놈. 그는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당장 고시원의 월세를 내기 위해서라도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그때 그의 눈에 띈 것이 노량진 육교를 걷다 보인 63빌딩, 더 정확하게는 그 빌딩에 매달린 사람들이었다.


평생 높은 곳이라고는 놀이공원에서 타본 롤러코스터의 최고점밖에 없었던 그였기에, 그는 일을 시작하기 전 옥상에 올라섰을 때마다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시급이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높고 일을 하는 날이 많지 않다고는 해도 목숨을 걸고 이래서는 안 된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단하게 하네스를 매고 곤돌라에 올라탄 순간 부모님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좀 더 노력하는 삶을 살아라. 아버지의 얼굴 위로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그는 밑으로 쑤욱 내려갔는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렇게 적응하고 나니 창문닦이처럼 편한 일은 없었다. 회사가 그에게 원하는 건 딱 하나, 열심히 팔을 벌려 창문을 닦는 일이었다. 차창에 떨어지는 빗물을 밀어내는 와이퍼처럼 똑딱똑딱 움직이면 됐다. 비록 허공이라 할지라도 앞으로의 진로라든가 스스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야 하는 지상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곤돌라에 올라타 창문을 닦았다. 가끔 들어오는 말썽쟁이 신입을 가르칠 때를 제외하면 별로 힘들 게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평생직장으로 삼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황사로 인해 새벽 다섯 시 뿐만 아니라 오후 한 시, 점심시간에도 창문을 닦게 되면서 조금 힘들어졌지만 그랬다.


사실 황사라고 해도 창문이 뿌옇게 덮일 정도로 더러워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주는 좀 신경 써 달라고 사장이 나서서 신신당부했다. 이유인즉슨 외국에서 온 손님이 63빌딩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외교적으로 무척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의 입장에서는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이니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33층이 항상 창문을 열어놓고 나가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창문을 닦는다고 건물 전체적으로 공지가 갔을 텐데도 33층만 꼭 창문이 열려 있었다. 창문 하나 닦지 않았다고 해서 주의를 받거나 흠 잡힐 일은 없었다. 설령 점심에 못 닦아서 더러워진다 해도 새벽에 닦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달 내내 33층의 창문을 점심에 닦지 못한 일이 마음에 남았다. 경비에게 말해보아도 소용없었다.


34층에서 33층으로 내려갈 때, 그는 오늘도 열려 있는 33층의 창문을 알아보고 한숨부터 쉬었다. 열린 창문을 피해 옆으로 옮겨 가려고 할 때였다. 안쪽 책상에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옆 창문을 똑똑 두드리며 창문 좀 닫아주세요! 하고 외쳤다. 그러나 여자는 듣지 못한 것인지 등 한 번 꿈틀거리는 일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가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청소 중입니다, 창문 좀 닫아주세요!”


이번에도 여자는 답이 없었다. 옆에서 동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자신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긴장하는 바람에 방광이 눌리는 걸 느꼈지만 그는 꿋꿋하게 외쳤다. 살면서 누군가를 이렇게 애타게 불러본 적이 없다고 느낄 만큼. 그러나 여자는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해가 가라앉을 때쯤에야 그는 빌딩을 내려올 수 있었다. 점심 작업은 시간 내에 빠르게 진행해야 하는 만큼 더 허우적거려야 했고 그만큼 더 피곤했다. 그는 팔을 주물거리며 첫 창문닦이 일을 끝낸 아르바이트생을 보았다. 모두가 기진맥진해서 주저앉은 가운데 아르바이트생은 혼자 서 있었다.


“쌩쌩하네.”

“그럼요.”



목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아르바이트생이 생기 넘치는 얼굴로 대답했다.


“어리잖아요.”


자신감 있는 어투였다. 어리다는 게, 젊다는 게 모든 것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아르바이트생을 따라 죽 늘어진 입꼬리를 당겨 웃어보였다. 옆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콧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알지 못하는, 아마도 최신 가요일 게 분명한 노래였다.


가끔 인터넷을 보면 ‘아재퀴즈’라고 해서 최근 데뷔한 아이돌이나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아는지 모르는지 맞춰보라고 하는 것이 있다. 그는 언젠가부터 총 열 문제 중에서 반도 못 맞추게 되었다. 가끔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자신도 그러니 괜찮다고 위로해주었다. 실제로도 ‘아재’가 맞지 않느냐는 친구도 있었다. 이제 겨우 서른 좀 넘었을 뿐인데? 그 물음에 친구는 우리 스무 살 때를 떠올려보라고 말했다. 그제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무 살의 그는 서른이 될 줄 몰랐다. 영원히 이십 대일 줄로만 알았다. 매일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울었다.


그는 이십 대 때 자신이 이십 대인 것이 싫었다. 그에게 주어진 젊음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이십 대의 의무인 찬란할 것이라는 말이 싫었고,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수저를 들이대는 것도 싫었고, 수산시장에 내놓은 떨이 생선들처럼 싹 다 그러모아 ‘N포세대’라고 말하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위를 거대하게 짓누르고 앉은 꿈, 믿음, 희망, 노력. 그런 말이 가장 증오스러웠다. 알 수 없었다. 왜 청춘이라고 하는지. 무엇이 푸른 봄인지. 정말 행복한 이십 대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공무원 학원의 창문 하나 없는 독서실에서 두꺼운 책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 옷장 하나가 테트리스처럼 딱 들어맞게 박힌 고시원에서 귀마개를 끼고 잠을 청하는 날들이 그의 청춘이었다.


많은 이들이 청춘을 찬양하고 가장 소중하다고 말할 때 그는 청춘이면서도 청춘이 아니길 바랐고, 이십 대이면서도 이십 대가 아니길 바랐다.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는 사이 그는 삼십 대가 되었다. 그리고 창문닦이가 되었다.




그는 방금 자신이 닦은 창문에 비친 눈과 마주쳤다. 외꺼풀에 작지만 뚜렷한 눈매가 아버지를 쏙 닮아 있었다. 그는 그 자리를 다시 한 번 걸레로 슥 문질렀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매일매일 아버지의 영정을 닦는 기분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가 훅 몰려왔다. 그가 신을 벗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밥솥의 뚜껑을 열었다. 텅 빈 밥솥을 확인한 그는 라면 물을 올려두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고시원을 나와 원룸을 얻고 난 후 생긴 버릇이었다. 고시원에서는 옆방에서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심지어는 하품하는 소리까지 다 들렸었다. 살 때는 그게 불쾌해서 어쩔 줄 몰랐는데 막상 원룸에서 살게 되니 적막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끓는 물에 스프를 넣고 면을 반으로 쪼개 넣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음악방송이 하고 있었다. 그는 따라 부르지도 못할, 난해한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라면냄비를 들고 거실로 나올 때쯤엔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그때 그가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가 나왔다. 대학생이 흥얼거린 노래였다. 꽤 인기 있는 가수인 모양이었다. 1위 후보라고 상단에 적혀 있었다. 언제 이런 것도 못 따라가는 진성아재가 되어버린 거지.


그가 퉁퉁 불은 라면을 신 김치로 말아 입으로 가져가려 할 때였다. 갑작스럽게 방광이 찌르르하며 조였다. 그는 젓가락을 상 위에 거칠게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그는 바지를 벗고 차고 있던 기저귀를 떼어내어 동그랗게 굴린 뒤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러고는 변기에 앉았다. 이전에는 그도 다른 남자들처럼 서서 보았었지만 전립선비대증을 앓는 지금은 소변을 보는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앉아서 소변을 보게 되었다.


방광이 뒤틀릴 듯 조이며 마려운 느낌은 분명한데 좀처럼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몇 달 째 약을 먹고 있는데도 그의 전립선비대증에는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기저귀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지만 창문을 닦던 도중 요의를 느낀 적이 있었다. 허공에서 오줌을 지릴까 등골이 서늘했었던 걸 다시 떠올리자 그는 소름이 돋았다.


삼십 분 넘게 대변을 보는 것처럼 끙끙거리다 배를 짓눌러서 겨우 한 두 방울 내보내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가 손을 씻고 나오자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어머니였다. 다시 걸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한 번 더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망설이다 텔레비전을 끄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 엄마야.”


어머니는 한숨을 쉬는지 잠시 멈추고 말했다.

“우리 아들 잘 지내지?”

“그럼요.”


그는 대답하고 후회했다. 역시 받지 말고 문자를 할 걸 그랬다.


어머니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예 연락이 끊은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매주 한 번씩은 통화하고 살갑게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머니와 통화하는 건 아무래도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어머니와의 전화통화는 늘 거짓말만 하게 되어서였다.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지? 저야 늘 잘 먹잖아요. 일은 안 힘들고? 할 만해요. 따위의 그런 거짓말들.


“그래. 잘 지낸다면 다행이고.”


어머니가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일은 무슨. 그냥 보고 싶어 전화한 거지.”

“그래요?”


적당히 대꾸한 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는……”


어머니는 말끝을 흐리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이대로 있으면 어머니는 곧 포기하고 전화를 끊을 것이다.


어머니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그가 사이가 나쁜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가 집으로 돌아오길 바랐다. 이제 고시원이 아니라 원룸에 살고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지낸다고 해도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한참 침묵이 이어졌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어머니였다.


“집에 한 번 오지 않겠니?”


어머니가 확실하게 만나보라는 말을 한 건 이번이 음이었다. 어머니는 늘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돌려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뜻밖에 던져진 직구에 어쩔 줄 몰라 우물거렸다.


“생각해볼게요.”


거절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차마 어머니에게 냉정하게 잘라 말할 수 없어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밝은 목소리로 반찬은 부족하지 않느냐고, 가지러 올 때 듬뿍 챙겨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며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새까만 액정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문득 닦고 싶다고 생각했다.


취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누가 봐도 변변치 않은 창문닦이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할까. 너무 뻔해서 그는 웃음이 났다. 텔레비전 속 그도 따라 웃었다. 새까맣고, 어딘가 일그러진 얼굴. 섬뜩해진 그는 텔레비전을 켰다.




일주일 하고 그만 둘 줄 알았던 아르바이트생은 그 다음 주 새벽에도 늦지 않고 나왔다. 처음에는 다리가 저렸지만 지금은 너무 재밌다고 아르바이트생은 말했다. 이 일을 하면서 단 하루도 즐거운 적이 없었던 그에게는 놀라운 말이었다. 허세를 부리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르바이트생은 그의 곁에서 일하는 내내 어제 흥얼거렸던 콧노래를 부르며 긴 팔을 휘적거렸다.


“여긴 정말 높네요.”


아르바이트생이 뒤를 슬쩍 건너보며 말했다.


“저기 저 골목 자주 다녔는데.”

“그래? 고시 준비했어?”

“아니요. 전 여기 컵밥 먹으러 왔었어요.”


그는 멍청하게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노량진 컵밥은 유명했다. 값도 저렴하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고명을 무엇을 얹느냐에 따라서 취향에 맞춰 먹을 수 있기도 해서 인기가 좋았다. 그도 자주 컵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아무리 맛있는 거라고 해도 계속 먹다보면 물리기 마련인지라 그는 이제 컵밥이 지겨워졌다. 어쩌면 자신의 이십 대가 이 아르바이트생처럼 활기차지 못했던 건 이렇게 불평불만이 많아서가 아닐까 그는 잠시 반성했다.


“전 한국 뜨면 그게 제일 그리울 것 같아요.”


그는 창문 가운데에 보지 못했던 얼룩이 하나 진 것을 발견하고 힘주어 박박 닦았다.


“저 다음 달에 유학 가거든요.”

“일은?”


팔에 힘줄이 설 정도로 밀었지만 얼룩은 닦이지 않았다.


“알바요? 형이랑 친해져서 아쉽기는 한데 그만둬야죠.”


그는 갑자기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곤돌라를 타고 한 층 내려가다 말고 아르바이트생이 외쳤다. 33층이다! 창문이 또 열려 있었다. 그는 천천히 내려와 창문 안을 살폈다. 일주일 전과 마찬가지로 안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작게 들렸다.


“저기요. 창문 좀 닫아주세요.”


아르바이트생은 또 시작한다, 하는 개구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창문을 두드리며 여자를 불렀다. 청소 중입니다. 닫아주세요. 그는 이제 더는 소리치지 않았다. 소리를 크게 한다고 해서 여자가 돌아볼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몇 번 말을 걸다 포기하고 옆의 창문을 닦았다. 창문을 닦으면서도 여자가 돌아보지 않을까 흘끔흘끔 보았다. 어쩌면 마네킹인지도 몰랐다.




점심작업이 끝난 뒤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둔다고 하자 실장은 눈에 띄게 실망했다. 오랜만에 광현 씨처럼 오래하는 사람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어 그는 깜짝 놀랐다.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어떡해. 아무리 알바여도 그렇지.”

“죄송합니다.”

“그래. 광현 씨는 그만 둘 때는 적어도 이 주 전에는 말해야 한다?”


실장이 돌아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심장이 뒤집어진 것처럼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부끄러워졌다. 그럼요, 그래야죠. 대답하는 그의 귀가 겨울철 차가운 날씨에 오래 방치된 귀처럼 빨갛게 되었다. 동시에 방광이 콕콕 쑤셔서 내팽개치듯 퇴근하겠습니다, 말하고는 잰 걸음으로 누가 볼까 빙 돌아 63빌딩 건물 안으로 뛰어갔다.




새벽부터 함께 일하던 동료 한 명이 기침을 거세게 한다 싶더니 끝내 점심작업에 나오지 못했다. 아르바이트생이 그만두게 되면서 작업량이 늘어나 무리를 하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았다. 갑자기 여섯 명이 하던 일을 네 명이 하게 될 위기에 처하자 실장은 고민하는 척하다가 그에게 시급을 더 줄 테니 사람 구할 때까지만 고생해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세 사람분의 구역을 맡아 닦게 되었다. 시급을 얼마나 더 주겠다고 정확하게 금액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분명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금액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그는 불평할 만한 처지가 아니었으므로 조용히 곤돌라에 올라탔다.


평소보다 바람이 더 자주 불어 몸이 많이 흔들렸다. 그는 창문닦이 일을 한 이래 처음으로 뱃멀미를 하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아래를 보았다. 까마득하게 먼 바닥을 한참 응시했다. 그 또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언제나 3초 이상은 아래를 보고 있기 무서워 급히 창문에 달라붙고는 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을 때면 그는 시체처럼 축 늘어져 곤돌라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다 바람이 멎으면 움직여서 부지런하게 창문을 닦았다.


한 칸 한 칸 창문을 닦으며 내려가다 33층의 열린 창문이 보였다. 그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33층의 창가로 다가갔다. 오늘도 여자가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그는 여자를 부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고 옆 창문을 닦았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데 마음마저 어지러울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허우적거리고 싶었다.


문제는 30층쯤에서 발생했다. 요도가 짜릿하더니 방광부터 옭아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렸다. 그러면서 아래를 보았다. 헉 하고 들이마신 숨에 한 순간 힘껏 긴장하는 바람에 오줌이 한 방울 샜다. 기저귀 솜이 축축해진 것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나오라고 해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 데서 지리다니. 그는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기저귀를 까발려서 보여준 것처럼 열이 올랐다.


아무리 기저귀를 했다고 해도 지리는 건 별로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다. 평소처럼 그냥 요의만 느껴지는 것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새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는 허벅지 안쪽에 힘을 주고 습관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른쪽을 보아도 허공, 왼쪽을 보아도 허공, 당연히 허공이었다. 그는 33층의 열린 창문을 보며 망설였다. 잠깐 들어가서 화장실만 들리고 나온다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다. 그는 께름한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오 분 정도 그러고 있는데 다시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몸이 흔들거리자 곧 오줌보도 따라 요동치기 시작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줄을 당겨 위로 올라갔다. 세 층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멀리서 그를 바라보는 동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잠시 실례합니다!”


그는 33층 창문 앞에 이르러 여자를 향해 외쳤다. 그리고 창턱에 손을 올렸다. 단단하게 붙잡은 뒤 한쪽 발을 올렸다. 허공에서 한 발이 사정없이 달랑거렸지만 이상하게 두렵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훌쩍 창문 안으로 들어갔다. 창턱을 넘는 순간 그는 온몸이 전율하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딱딱한 바닥에 발을 쿵 딛자 느낌이 이상했다. 금방이라도 바닥을 내려찍으면 밑으로 쑥 꺼질 것 같았다. 그가 들어와도 여자는 처음 그가 봤을 때와 똑같은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곁눈질하지도 귀를 쫑긋 세우지도 않았다. 그는 여자의 눈치를 보며 사무실을 나왔다. 문을 지날 때쯤 여자의 시선을 느낀 것도 같았다.


흐르던 시간이 고인 것처럼 한적했던 사무실 안과는 달리 바깥에서는 지난번 방문했을 때보다도 더 바쁘게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서로에게 말을 걸 거나 인사하지는 않았다. 마치 교차로의 횡단보도에서 스쳐 지나는 사람들 같았다. 서로가 있는 것은 인식하지만 인정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화장실은 구조가 비슷해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칸에 쏙 들어가 바지를 벗고 변기에 앉았다. 안도감이 느껴졌다. 자신을 둘러싼 좁은 벽과 딱딱한 바닥에 편안함을 느꼈다. 볼일을 보고 나와 세면대에서 손을 씻을 때부터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쯤 동료들은 얼마나 내려갔을까. 그는 손에 물기도 제대로 털지 않고 화장실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유령처럼 투명하고 빠르게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처음 그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자신이 들어온 열린 창문이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옆을 보았다. 여자가 앉아 있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정말 마네킹은 아닐까? 하지만 곧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창문으로 다가가 나가기 위해 창턱을 잡았을 때였다. 숙였던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하늘을 보았다.


그의 시야를 막는 건물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창문에 비친 하늘보다 더 높고 더 선명한 빛으로 빛나는 푸른 하늘만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는 넋을 잃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순간이었지만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건너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했다. 동시에 바람 탓에 눈이 시렸다. 그제야 왜 이렇게 사람들이 창문을 닦으라고 유난을 떠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로막히는 것 하나 없이 뻥 뚫린 하늘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게 보고 싶었겠지.


그는 창턱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섰다.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불안정한 저 허공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등을 돌려 문간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나가기 전 여자를 보았다. 여자의 모습은 일렁거리고 있었다. 환상이었을까? 그동안 나는 환상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걸까? 그는 더는 분간이 가지 않았다.


—오늘 날씨가 참 좋아요.


그 말을 뱉은 순간 그는 속에 뭉쳐있던 커다란 핏덩어리를 통해낸 것처럼 목울대가 뜨겁고 입안이 자꾸 끈적거렸다. 코끝이 화끈거리고, 눈이 시큰거렸다. 그는 이런 자신을 들킬 세라 허겁지겁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무미건조한 사람들 사이로 그는 혼자 먹먹한 얼굴로 걸었다. 하지만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마냥 괴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복잡미묘한, 이상한 기분.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마침내 내팽개쳐졌을 때 느꼈던 그 감정과 비슷했다.


그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갔다. 삼십삼, 삼십이, 삼십일…… 한층 한 층 내려갈 때마다 묵직하게 땅을 밟는 발이 잊었던 감각을 불러왔다. 땅에 서 있다는 감각. 너무나 당연해서 잊고 지냈던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입구에서 그를 발견한 실장이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야! 너 이리 와! 미쳤냐! 그는 실장의 말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실장이 뒤에서 몇 마디 더 덧붙이는 것 같았지만 그는 듣지 못했다. 실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어서야 그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착용했던 하네스는 아까 그가 내린 곳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쪽에, 그러니까 창가에 누군가 그 위에 있었다. 너무 멀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창가의 누군가는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필요한 장비가 있어서 밑에 사인을 보낸다고 생각했다. 혹은 문제가 생겼으니 도와달라는 의미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를 눈치챈 것은 그 뿐인 것 같았다.


그는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쩌면 아르바이트생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가 손을 흔들기 시작하자 신이 난 건지 누군가가 방방 뛰며 두 손으로 흔들며 인사했다. 그도 함께 두 손을 마구 흔들었다. 허우적허우적, 창문을 닦는 것 같았다.



재밌게도 브런치북의 사작과 끝이 열린 창문입니다.

여러 느낌으로 각색을 시도했었는데, 이건 그 중 하나입니다.

내일은 에필로그 업로드로 돌아오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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