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장례식장 직원들은 나를 끝까지 따라오며 우산을 씌워주었다. 부담스러운 마음에 극구 괜찮다고 해도 그러면 우산을 드릴 테니 쓰고 길 끝에서 돌려달라고 했다. 그것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주가 비를 맞게 둘 수는 없다며 우산을 씌워주며 나를 쫓아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물거리며 그들을 피하려 도망치듯 버스정류장까지 걷다 보니 결국 끝까지 그들이 내게 우산을 씌워준 셈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생전 처음 받는 대접에 내가 쭈뼛거리며 감사 인사를 전하자, 그들은 가볍게 목례하고 돌아섰다. 내가 상주라니. 가족과도 연을 끊고 나와 혼자 사는 내가 상주라니, 말이 좀 이상하게 들렸다. 하지만 상주는 상주였다. 빗속으로 검은 인영 둘이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심지어 검은 옷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괜찮은 옷 몇 벌을 입고, 작고 빳빳해진 너를 네가 좋아하던 분홍색 구름무늬 극세사 담요에 감싼 채 꼭 안고 택시를 타고 왔을 뿐이다. 이제 너는 없다. 대신 장례식장 직원이 챙겨준 네 소지품과 담요가 담긴 쇼핑백을 덩그러니 들고 서 있다. 몇 주 정도 시간이 지나면 네 뼈로 만든 보석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다음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했다. 2개 정류장 전, 5분 후, 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버스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적어도 버스가 멈출 때 바퀴가 물웅덩이를 꾹 누르면서 튄 오물이 내게 튈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가다가 타이어가 펑크 나서 길 한 가운데 멈추고 죄송하지만, 손님, 여기서 내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나는 전혀 모르는 이 동네에 혼자 남겨질 거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 모든 행운을 잃어버린 사람이니까.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안에서 눈물을 쥐어짜듯 흘린 터라 더 나오는 눈물은 없었다. 와중에 배가 고팠다. 돌아가면 분식집에 들러 김밥을 먹어야지. 오늘은 너무 힘들었으니까 참치김밥을 먹어야지.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울고 싶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었다.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는 30분 후에나 올 것이다.
만약 반려동물이 딱 한 마디만 할 수 있게 된다면 무슨 말이 가장 듣고 싶어?
인터넷을 보던 중 누가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었다. 제목을 보고 클릭하기 전 잠시 생각했다. 떠오르는 말은 딱 하나였다. 아파. 그 말이 가장 듣고 싶었다. 아프다는 말. 그러면 병원에 데려갈 텐데. 적어도 그렇다면 아픔을 덜어줄 수는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후에는? 아프다고 말해서 치료를 하다가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서 ‘아파’라고 말하는 걸 내가 잘못 받아들인다면 어떡할까.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고, 지니의 소원이 세 가지였던 것처럼 이것 역시 세 가지로 해주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망상에 불과한데. 꼭 이렇게 빡빡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고.
다비와는 서른 살 때 만났다. 이십 대에는 나이가 서른 정도 되면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서른이었다. 뭐라도 하고는 있었지만, 어린 내가 기대했던 만큼 안정적인 일은 아니다.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해서 오후 여섯 시에 칼같이 퇴근한다. 누구도 내게 잔업 하라고 말하거나, 야근을 종용하지 않는다. 연가를 쓸 때 눈치 볼 일도 없다. 비정규직이니까. 회사에서 비정규직에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다. 근무 시간에 열심히 해달라는 것. 그래서 나는 열심히 일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이 적은 만큼 돌아오는 것도 적었다. 내가 기대치 이하로 일해도 돌아오는 것이 없듯, 기대치 이상으로 일해도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동료들과 웃고 떠들어도 나는 그 사이에서 붕 뜬 존재였다. 나는 정규직이 아니야. 모르고 있다가도 그 사실을 깨달으면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오한에 시달렸다.
나는 차가 없어 늘 지하철로 출퇴근했다. 그 시간대에는 언제나 사람이 붐볐고, 조금이라도 일찍 쉬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 사이를 치열하게 파고들다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씻고 소파에 잠시 기대어 시계를 보면 여덟 시. 하루가 끝나기 네 시간 전이었다. 배는 고프고, 마음은 허하고. 텔레비전을 켜놓고 냉동실의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김과 함께 먹는다. 대충 차려 먹고 설거지를 쌓아둘 수 없어 바로 그릇을 씻고 이를 닦고 돌아온다.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한숨 쉬는 사이 시계는 땡, 종을 울린다. 하루가 끝났다고.
처음 취직하고 일을 시작했을 때는 견디기 힘들었다. 시간이 덧없이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규칙적으로 잠들고 일어나 눈 뜨면 씻고 회사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 게, 그리고 돌아오면 내 시간은 단 하나도 남지 않고 달력의 빨간 날만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는 게 너무 싫었다. 내게도 꿈이 있는데. 나도 무언가를 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돈 없이는 사람은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었다. 당장 월세를 내야 하고, 공과금을 내야 하고, 통신비를 내야 했다. 정수기가 없어 물도 사 먹어야 하는 판에 그저 꿈만 좇고 싶다는 배부른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일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해보자는 계획이 있었다. 참 이상했다. 내 안에도 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욕심이 있는데, 그건 분명 거짓말이 아닌데 왜 “진짜 열정”을 찾은 사람들만큼 나는 열정적이지 못한 건지. 피곤하고 지쳐서 쓰러져 드러눕고 코를 골며 자는 게 내 모습이었다.
이렇다 보니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내 상황이 이렇게 불안정한데, 혹여 내 외로움을 못 이겨 데리고 왔다가 반려동물의 삶을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리고 분명 잘 책임져줄 수 없을 것 같았다. 반나절이 넘게 혼자 있어야 하는 반려동물을, 돌아와서 살뜰하게 보살펴줄 자신이 없었다. 내 꿈도, 내 몸도 못 챙겨주는데 반려동물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다비를 가족으로 품게 된 건, 처음부터 내가 그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마음 대신 잠시 내 장소를 빌려주겠다는 안일한 마음으로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첫 만남은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 아홉 시쯤 되었을까. 맛있는 고기도 먹고 얼큰하게 취했지만, 오늘 하루가 세 시간밖에 남지 않아 우울해진 내가 잠시 멈춰 바라본 전봇대 아래에 웬 더러운 털뭉치가 있었다. 그 전봇대 아래에는 알게 모르게 자꾸 쓰레기가 쌓여 있었던지라, 또 누군가가 여기에 쓰레기를 버렸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할 때, 그 털뭉치가 꿈틀 움직이는 것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나는 사실 그때까지도 그게 강아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술에 취한 탓도 있었고, 다비의 털이 더러워서도 있었다. 나는 부러진 대걸레 자루의 안에 쥐가 들어가 움직인다 생각해서 큰 소리를 낼 뻔했다. 그러나 느릿하게 뒤돌아보는 그 털뭉치의 눈과 축축한 코를 보고 멈췄다.
강아지?
털이 많이 긴 시츄였다. 관리를 받지 못한 것인지 꾀죄죄한 것은 물론, 눈곱이 잔뜩 껴서 눈이 지저분했다. 나를 보더니 다비는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뒷걸음질 쳤다. 병균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물러서자 다비는 더 다가오지 않고 꼬리만 홰홰 쳤다. 나는 다비가 혹시라도 쫓아올까, 그래서 내 다리를 물어버리기라도 할까 두 손으로 펜스를 만들 듯 앞으로 내민 채 조심조심 원을 그려 다비를 지나쳤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때 내가 신고 있던 스타킹은 일본에서 사 온 500엔이나 하는 고급스타킹이었다. 아끼는 거여서 절대 구멍을 뚫고 싶지 않았다. 이 점은 다비도 이해한다고, 나중에 얘기해줬다.
나는 다음날 회사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다비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식사 자리에서는 무슨 이야기든 이야깃거리가 필요했다. 매일 지하철 타고 집 돌아가서 바로 쓰러지는 내게는 그다지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다비를 본 일은 무척 특별하고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일이었다. 저는 걸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강아지였지 뭐에요. 그 말을 들은 직원들의 분위기가 한순간 싸해졌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든 늘 호응을 잘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반응을 얻은 건 처음이었다. 나는 내가 무언가 말실수한 건지 초조해졌다.
그 강아지, 혹시 유기견은 아닐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그렇게 길에 그냥 두면······
거기까지 듣자 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비난받고 있었다. 요즘처럼 쌀쌀한 날에 유기된 강아지를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있었느냐고. 나는 급히 변명하기 시작했다. 저도 정말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지만 (거짓말이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골목에서 유기동물을 마주한 건 처음이어서 (여태까지 수많은 길고양이들을 봤다.) 어쩔 줄 몰랐다. 내 말을 들은 그들은 그럴 수 있지, 라고 말하면서도 석연치 않아 했다. 다년간 사람들 비위 맞추는 게 내 일이었던지라, 나는 잽싸게 그들에게 물었다. 그럼 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말 그 조언을 받아들여서 어떻게 해보려던 건 아니었다. 사람이 몰랐다는 걸 인정하고 조언을 구하는 순간, 그리고 그렇게 모르는 아둔한 사람을 자기가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을 향했던 빡빡했던 마음이 조금 풀린다. 그런 사람 마음 좀 이용해보겠다고, 아랫사람인 양 고개 숙이고 그렇게 들어갔던 것뿐이다. 119에 신고하라는 둥 (119에 신고하면 123에 신고하라고 하고, 123에 신고하면 112에 신고하라고 하더라! 애초에 긴급한 상황 아니면 걸지 말라고 혼난다. 누구도 유기동물은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더라.) 동물보호단체에 연락하라는 둥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그런지 여기는 전화를 안 받았었다.) 임시보호를 하라 (말이 쉽지 이 사람아!) 는 둥······ 나는 내가 점심을 먹는지 회식자리에 온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가 웅웅,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밥은 또 맛있어서 먹으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네, 네. 근데 계란말이 안 드세요? 제가 먹을까요?
그리고 그날 저녁 다비를 다시 만났다.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내가 우산을 안 가져왔다며 곤란해하자, 옆자리 직원이 마침 그 동네를 지난다며 태워주겠다고 말했다. 비를 축축하게 맞고 지하철 탈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던 참이었다. 나는 고맙다고, 나중에 커피라도 한 잔 사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차를 타고 느긋하게 귀가한 데다가, 차에 남는 우산 하나를 찾았다며 빌려준 덕에 비 한 방울 맞지 않게 되어, 비록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꿉꿉해도 기분만큼 상큼하게 차에서 내린 그 순간. 직원이 아,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저기, 저 강아지예요? 혹시?
네?
돌아보니 푹 젖은 털뭉치가 오들오들 떨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다. 세상에. 내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자 운전석의 직원이 차창을 내리고 내게 명령조로 말했다. 우산 씌워요, 얼른! 마치 수술실의 의사처럼, 손에 메스를 쥐어달라고, 한시라도 급한 상황에 김 간호사! 정신 안 차려요?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허둥거리며 달려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그가 또 말했다. 어서 119에 신고해요! 나는 얼떨결에 네, 네 답하면서도 망설였다. (아니 119에 신고하는 게 맞나? 119는 나도 전화한 적이 없는데. 정말 아픈 거 아니면 전화하는 거 아니지 않나?) 119는 빠르게 응답했다. 나는 조금 추워서 털뭉치랑 같이 덜덜 떨며 말했다. 여기 강아지가 버려져 있는데요. 119는 그건 123에 전화해서 말해보라고 했다. 친절한 답변에 감사합니다, 답하고 다시 123에 전화했다. 그동안 직원은 매서운 눈으로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또다시 내가 그 털뭉치를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애초에 나는 그 털뭉치를 주운 적도 없는데. 그저 그 앞을 지나갔을 뿐인데······ 123에 전화하니 연결되지 않았다. 업무 시간이 아니라고 했다. 112에 전화하니 난처한 목소리로 그건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고 했다. 동물보호단체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내가 어쩌죠? (선생님?) 그를 향해 물었다. 그는 환부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의사처럼 나와 털뭉치를 번갈아 보다가, 지금 시간은 너무 늦었고, 이대로 뒀다가는 강아지도 나도 감기에 걸릴지 모르니 어서 들어가보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 얼어버렸다. 들어가라니? 이 털뭉치도 같이? 하지만 그렇게 해서 데리고 들어가면 앞으로는 어떻게? 일단이라고 했지만 그게 정말 일단인가? 나는 무언가를 책임지는 게 두려웠다. 그러나 당당히 맞서 싸우기에는 그가 나를 단죄하는 눈빛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나는 축축한 털뭉치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집으로 들어갔다.
오들오들 떠는 털뭉치는 힘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내 품이 마음에 든 건지 얌전했다. 나는 따뜻한 물로 털뭉치를 씻겨주었다. 검색해서 알아보니 개의 피부는 연약해서 사람 쓰는 샴푸로 씻겨서도, 비누로 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 동네 어디에 동물병원이 있는지 몰랐고, 나가서 마트를 다녀오자니 차를 타고 있던 그가 어디를 가냐며 막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급한 대로 내 샴푸를 조금 희석해서 씻기고,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주었다. 허리 아프다, 한숨을 쉬며 드라이기를 끄고 털뭉치를 보았다. 그러자 나와 같은 향을 품은, 뽀송뽀송해진 강아지가 나를 바라보며 웃는 게 보였다. 불안해졌다. 이 아이가 더는 털뭉치가 아닌 강아지로 보이는 게 무서웠다.
깔아줄 만한 방석이 없어, 되는 대로 재작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선물로 받았던 분홍색 구름무늬 극세사 담요를 네 번 접어 깔아주었다. 도톰하게 접힌 그 위로 강아지를 올려주자, 담요를 벅벅 긁더니 한 바퀴 빙그르르 돌고 그 위에 자리 잡고 누웠다. 진짜 쓸모없는 걸 준다 생각하고 받았던 담요였는데, 그 순간만은 그 담요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원해서 데려온 것은 아니지만 나도 생명을 경시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루만 재우고 보낼 곳을 찾아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새벽 두 시나 되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 평소보다 늦게 눈을 뜨는 바람에 지하철을 놓쳤다. 그렇다고 택시를 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고, 탄다고 해서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전화를 걸어 대리님, 오늘 제가 지하철을 놓쳐서 늦을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다. “지각만은 하지 말자”라고 말하던 대리님은 그날따라 의외로 선선히 천천히 오라는 말을 했다. 낌새가 이상하게 느껴져서 뭘까, 하며 회사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어제 내가 그 강아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 게 회사 전체에 퍼져 있었다. (전체라고 해봐야 작은 사무실에 여덟 명 정도 근무하는 게 다이지만.) 나를 집에 데려다줬던 직원이 말해줬다고 했다. 김 선생님, 정말 큰 결심했네요. 나를 추켜세우며 칭찬했다. 아니, 무슨 결심을요? 제가 언제요? 분명 일단이라고 했잖아요. 내 안에는 분명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어제의 일을 설명하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큰 비난을 받을 것만 같았다. 다만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됐어요, 임시 보호에요. 라는 말은 겨우 덧붙였다. 업무 중간중간 나는 펫 카페를 가입하고 동물보호단체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강아지를 입양 보내는 절차에 대해서도 검색했다. 빨리 보내야만 했다. 이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하지만 강아지를 보내는 건 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명 나 어릴 적만 하더라도 강아지 키우실 분? 하면 저요! 하고 믿음으로 보내는 게 다였는데, 이제는 입양비도 받아야 해서, 예방접종은 몇 차까지 했는지, 등록 여부, 그리고 입양 보내는 가정의 가정환경에 대해서도 꼼꼼히 고려해야만 했다. (1인 가구는 아닌지, 혹여 1인 가구라면 강아지가 아플 때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등등······) 나는 강아지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이 아이가 몇 살인지. 그리고 모두가 사진을 그렇게 요구하는데 나는 줄 사진이 없었다. 찍지 않았으니까. 퇴근하고 할 일이 많았다. 우선 동물병원에 데려가고, 사진을 좀 찍고······
병원에서 말하기를 다비의 나이는 추정컨대 여섯 살이라고 했다. 칩은 박혀 있지 않아 원래 주인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건강 상태는 양호하며 접종도 모두 무사히 마친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입양은 쉽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왜요?
나이가 많이 들었으니까요.
어렴풋이 무슨 뜻인지 알아서 더 묻지 않았다. 다비는 예쁘게 생겼고, 건강도 나쁘지 않지만, 나이가 무려 여섯 살이나 됐으니까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다. 찾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걸 비난할 수는 없었다. 생명은 모두 똑같은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질 수는 없었다. 누구나 사랑한다면 좀 더 오래, 그리고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다비가 안쓰러웠다. 내 서른이라는 나이가 괜히 다비의 곁에 같이 떠서 어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의사의 말마따나 여러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지도 벌써 3주가 지났지만, 다비의 입양처는 정해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비가 있는 일상이 어느덧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다비는 영리해서 배변훈련을 따로 해주지 않았는데도 (아니면 전 주인이 해주었던 게 분명하다.) 배변패드에 배변할 줄 알았고, 밥도 스스로 조절해서 먹을 줄 알았다. 산책할 때 다른 개를 향해 마구 짖은 적도 없었다. 예의가 바른 강아지라 내가 먹는 밥을 탐낸 적도 없었다. 보면 볼수록 이렇게 똑똑한 아이를 왜 버린 걸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애교도 많았다. 처음 2주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시간이 지나자 내가 잘 때 그 곁에서 함께 자고 싶다고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픈 줄 알고 왜 그래, 다비야. 했었는데. 내가 안아 올려 곁에 놓자 자리를 잡고 잤다. 그때부터 우리는 함께 침대에 눕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돌아오면 나는 늘 녹초였고, 텅 빈 방 안에서 씻고 데운 밥을 먹으며, 밀린 세탁물을 널고 청소를 하며 그렇게 지냈다. 다비가 온 후로는 일이 두 배로 늘었다. 여전히 녹초가 된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웃어야 한다. 잘 있었어? 묻고 잠시만 기다려. 하고 양해를 구한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데운 밥을 먹으며 다비의 밥과 물을 챙겨준다. 세탁물은 널지 못해 밀려있는데 다비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간다. 그리고 돌아와 다비의 발을 미지근한 물로 씻기고 함께 침대에 눕는다. 고생스럽기 그지없다. 회사 사람들은 일주일은 다비에 대해 궁금해하더니 이젠 묻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모두가 강아지 전문가라도 되는 양, 강아지 사료는 이게 좋다. 샴푸는 이게 좋다. 어린 강아지에게 필요한 건 (다비는 따지면 노견이에요.) 노견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건······ 가끔 이야기를 꺼내면 아, 그 강아지. 아직도 있어요? 라고 말한다. 내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났다.
그날은 유독 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은 날이었다. 안 하던 실수를 해서 대리에게 혼나고, 비정규직이라는 서러운 직함이 들먹여졌다. 다비와 산책도 나갈 수 없을 만큼 너무 힘들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렇게 말하며 다비를 꼭 끌어안은 채 파란 빛이 쏟아져나오는 텔레비전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다비는 버둥거리지도 않고 얌전히 내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도 함께 침대에 누웠다. 내 옆구리에 닿는 다비의 푹신하고 따뜻한 체온. 나는 그간의 모든 고생스러움이 생각나 한껏 억울해져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또 다비를 끌어안았다. 한참 울다 잠들었다. 다시 일어났을 때 그렇게 개운할 수 없었다.
나는 오늘 연가를 냈다.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았던지라 눈치가 보였다. 김 선생님, 지금이 바쁠 때인 거 알죠? 대리는 그 말만 넌지시 하고는 알겠다고 했다. 인사에 반영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혹시라도 가엾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강아지 기억하시냐고, 그 강아지가 죽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대리는 대답이 없었다. 인생은 내 기대대로 가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겠구나. 빠르게 체념하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했다. 하필이면 또 금요일이었다.
내 상황이 난처한 걸 안다. 그렇다고 딱딱하게 굳은 다비에게 언니 회사 다녀올 테니까, 저녁에 보자. 말할 수 없었다. 더는 다비를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혼자 집을 지켜야만 했던 다비. 그렇지만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의젓하게 있었다. 누군가는 내게 참 이기적이라고 했다. 혼자 살면서 개를 키우다니.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키우지 않으려 했다. 정 주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려 했다. 이런 말들조차도 변명이 되겠지만, 나는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내게 돈이 없어 애견유치원이나 펫시터를 고용해서 다비를 보살피지 못한 게 부채감으로 다가온다. 이래서 돈 없는 사람은 개 키우지 말라고 하는구나, 생각했다. 다비가 아픈 걸 뒤늦게 알고 동물병원에 갔을 때, 나는 카드를 긁으면서 앞으로 어쩌지 생각했다. 다비의 검사비, 수술비, 1일 입원비까지 해서 모두 70만 원이 넘게 나왔다. 하루만으로. 나는 카드를 긁으면서 다비를 사랑하는 내 마음만은 진심인데, 돈 앞에 쪼그라드는 내가 너무 미웠다. 호흡이 불안정에 산소방에 들어간 다비를 면회하며 다비야, 아프면 버티지 않아도 돼. 라고 마치 호의라도 베풀 듯 말했다.
다비가 떠나기 전 동물병원에 갔었다.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고 다비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도 했던 것 같다.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겠지.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품 안의 그 복슬복슬하고 작은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으며 별 미친 소리를 다 했다. 급격히 쌓여가는 카드빚에 나도 어딘가 반쯤 돌아버렸던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다비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때도 아파, 라고 말해줬다면 나는 말했을 텐데. 미안하다고. 곧바로 내 실수를 인정했을 거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나서야 집에 도착했다. 다비와 살기 전처럼 조용한 집. 그러나 다비의 물건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다비가 쓰던 밥그릇부터 시작해서 배변패드, 좋아하던 인형······ 다비가 잃어버린 것도 많았으니 청소하다가 그 흔적을 찾게 될 것이다. 나는 씻지도 않고 젖은 몸뚱이로 침대에 누웠다. 배가 고팠다. 김밥을 먹기로 했었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 집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집 앞 골목 분식집에 들어갔다.
먼저 온 손님들이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살펴보니 주인은 잠시 주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분명 내가 들어올 때 문의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 나는 벽 쪽 자리에 앉아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메뉴판을 붙잡고 저기요, 하고 누군가를 불렀다. 목소리가 갈라져서 희미하게 나왔다. 나는 가다듬지 않고 다시 유령 같은 목소리로 저기요, 말했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식사하는 손님들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잠시 후 주방에서 나온 주인이 손님들에게 순대를 갖다 주었다. 나는 다시 주인을 부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눈치챌 때까지, 입술을 꽉 깨문 채 그 자리에 앉아 있기로 했다.
주인이 뒤돌아 다시 주방으로 향할 때, 그때 나를 눈치챌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은 끝내 나를 보지 못하고 주방으로 쏙 들어갔다. 나는 내가 점점 차가운 벽에 빨려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껏 펴고 있던 어깨가 조금씩 수그러들고 고개는 자꾸만 아래로 내려갔다. 가게 안에는 에어컨을 틀어놓은 건지 너무 추웠다. 덜덜 떨며 몸을 웅크렸다.
짧은 글입니다.
브런치북이 10화 이상이어야 발간 가능하다는 걸 이제 알아서, 정말 옛날 글까지 긁어오고 있어요.
이 글은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을 때를 추억하며 쓴 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