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언니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전해 들은 레오의 말은, “독특한 향이 나시네요.” 였다. 그 말을 전하는 민주 언니는 그게 칭찬인 양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과장되게 웃었지만, 나는 재밌지 않았다. 나는 향수를 뿌리지 않았다. 날이 추워서 데오드란트를 바르지도 않았고, 땀을 흘리지도 않았다. 내게서 날 수 있는 채취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쪽 눈썹을 찡긋거리자 민주 언니가 말했다. 레오가 향에 좀 민감해. 우리 첫 만남 때도 레오가 내 향기 때문에 말을 걸었거든.
그날 민주 언니는 강변에 앉아서 빵집에서 산 2유로 짜리 바게트 빵을 뜯어 먹고 있었다. 세느강은 민주 언니가 상상했던 것보다 아름답고 고즈넉하지 않았다. 뒤로는 시끄럽게 술을 마시며 떠드는 사람들이 있었고, 앞으로는 비가 오는 바람에 흙탕물이 된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민주 언니는 서울에 있는 한강을 떠올렸다. 사람 사는 곳은 결국 다 똑같네. 저녁이 되고 에펠탑의 불빛이 일제히 점등되는 것을 보며 감탄할 적에는 프랑스에 올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마땅한 음식점을 찾지 못하고 오래 걸어 지쳐버렸다. 결국 프랑스까지 와서 먹고 있는 건 바게뜨였다.
이럴 바에는 집에 돌아가서 김치찌개나 먹고 싶어.
민주 언니가 계획하고 간 유럽 배낭 여행의 기간은 열흘이었고, 이제 곧 이틀 뒤면 그 일정이 끝날 것이다. 그동안 민주 언니는 현지의 맛을 즐기고 싶다며 느끼한 것들 위주의 식사를 했다. 한국인이 추천하는 음식점에는 일부러 가지 않았다. 한국인과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추천해준 곳은 가면 이미 한국인 식당이야. 그럴 바에는 홍대의 파스타집을 가지, 내가 프랑스를 왜 갔겠니?
맞는 말이라 생각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프랑스의 음식이 어땠느냐는 말에는 항상 머뭇거리는 민주 언니를 보며 한 번쯤은 속는 셈 치고 모른 척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한, 프랑스의 한국인 식당에 가보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어려웠다. 어느 정도냐면, 나는 운전면허가 있지만 내가 운전할 수 있는 차는 3년 전에 중고로 산 연두색 모닝뿐이다. 나는 모닝 외의 차량을 몰 줄 모른다. 다들 방법은 다 똑같다고 말해줘도 운전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매고 나면 갑자기 차에서 뛰쳐나가고 싶어진다. 이렇게 커다란 차를 운전할 수는 없어요. 옆에서 기가 차 하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선하다. 그런 나니까, 정보 하나 없이 불쑥 현지인이 많아보인다는 이유로 식당에 들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해보면 쉬워.
민주 언니는 내게 언젠가 프랑스에 놀러 오라고 말했다. 프랑스에 오면 너도 알게 될 거야. 그 자유로운 분위기. 나는 결국 그 분위기에 반해서, 봐. 민주 언니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언니는 십 년 전에 봤을 때나 지금 보았을 때나 외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다. 나이는 나 혼자 다 먹고 있는 건지, 영양크림 한 번 바르지 않고 1+1 올인원을 얼굴에 끼얹는 게 전부라는 민주 언니는 여전히 학생 같다. 나와 같이 전철을 타고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대학원을 통학하고, 금요일에는 가끔 한강에 가서 맥주를 마시던. 그러나 민주 언니와 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생겼다. 언니는 프랑스인이고, 나는 한국인이라는 차이다.
그 쯤, 민주 언니는 임신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얼른 프랑스에 놀러 와. 애 낳으면 너 못 챙겨줘.
나는 민주 언니의 결혼식 때도 프랑스에 가지 못했다. 비행기를 탄다는 게 무서웠다.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면 어떡해. 민주 언니는 코웃음을 쳤다.
비행기 사고율이 얼마나 낮은지 알아?
하지만 사고가 나면 사망률도 거진 100%잖아.
야. 그렇게 따지면 지하철도 그럴걸.
나는 지하철도 무서웠어.
나는 내가 타는 모든 것들이 무서웠다. 택시도, 버스도, 지하철도, 심지어는 기차도 무서웠다. 분명 안에서는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것처럼 평온하기 그지 없는데 기차 바깥의 풍경을 보면 빠르게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 창문의 표면이 자잘한 진동으로 떨리는 걸 바라보며 나는 숨을 오래 멈췄다가 쉬었다를 반복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노트북을 꺼내서 일을 하거나 핸드폰으로 넷플릭스를 보기도 하던데 왜 나만 창 밖을 내다보는 걸 멈출 수 없을까. 꼭 설국열차에 갇혀버린 사람처럼, 저 멀리 얼어버린 시체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처럼 두려움에 떨었다.
민주 언니는 끝내 가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일을 많이 아쉬워했다. 그때도 우리가 연락만 주고 받고, 서로 직접 못 만난 지 벌써... 그러니까 2004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9년이었다. 내년이면 10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가 연락하는 건 다행이지, 뭐. 이내 민주 언니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민주 언니는 아쉬워했지만 내내 그걸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올해엔 꼭 갈게.
‘올해’라고 말했을 때 민주 언니가 작게 치,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이야기와 같았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한 교수님이 민주 언니와 내가 상을 탔을 때 축하한다 말하며 저 말을 덧붙였었다. 그때 우리는 네, 교수님. 깍듯하게 인사하고는 뒤돌아서서 평생 밥 안 먹겠네. 했다. 하기사 대학원 다니면서 교수한테 너무 당해서 나도 보고 싶지 않으니 상관 없지. 언니의 말에 나는 몸을 뒤로 젖히며 웃었다. 민주 언니와 한 교수님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처럼 편하고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쉬는 시간이면 자판기 앞에서 두 사람이 커피를 나눠 마시며 쓸데 없는 이야기, 예를 들면 학교 안에 고양이가 너무 많아서 담배 피우기가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해괴한 주제의 토론은 볼 때마다 계속되었다. 한 학기 내내 두 사람은 쉬는 시간 10분 동안 자판기 앞에서 고양이 이야기를 했다. 가끔은 한 교수님이 냐옹냐옹, 냥냥. 하는 고양이 울음 소리를 따라 냈고 민주 언니가 미쳤나봐, 징그러워요! 하는 걸 본 적도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한 교수님은 유부남이었고, 언니는 한 교수님보다 여섯 살 어린 학생이었다.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 그 이상의 관계를 원한다거나 이성적인 분위기를 띈 적도 없었다. 그저 담배와 고양이에 대한 토론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기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민주 언니는 학교를 휴학했다. 그리고 그 길로 곧장 프랑스로 배낭 여행을 떠났다. 머리 식힐 겸 떠난 민주 언니는 그곳에서 레오를 만났고, 그날 새벽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족도 아닌 나에게.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기뻤다. 내가 언니에게 가족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어쩌면 가족보다도 가족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아서.
언젠가 내가 민주 언니에게 언니, 언니는 나한테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아. 라고 말하자 언니는 보러 오지도 않으면서 무슨 개소리냐고 단박에 일축했다. 나름 진지하게 꺼낸 말이었는데 언니는 깔깔 웃는다. 그래도 정말 올해는 언니를 보러 가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해에 언니를 보러 가지 못했다. 대신, 바로 그 다음 해 봄에 나는 허겁지겁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떠났다.
비행기를 타기 전 청심환을 먹었다. 멀미약도 먹어야 할까. 청심환과 같이 먹어도 괜찮은 걸까. 의사에게 물어본다는 것을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깜빡하고 물어보지 못했다. 비행기는 처음이라 수속부터 시작해 짐을 부치는 일, 탑승구를 찾아가는 일. 모든 것이 다 어려웠다. 무엇보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영등포의 ak플라자보다 훨씬 더 넓었다. 당연했다. 머리로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차로 가운데에 우뚝 서버린 사람처럼 길을 잃고 선 내 곁으로 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사라지는 일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내장이 아래로 쏠리는 오싹한 감각에 이를 꽉 깨물었다. 바이킹이 올라갈 때의 느낌과는 또 차원이 달랐다. 이 또한 당연했다. 화가 났다. 당연한 게 왜 나에게는 이렇게 당연하지 않은 거지. 비행하는 동안 크고 작은 난기류를 만났다. 그때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핸드폰을 꺼내 자꾸만 미끄러지는 화면 속 키보드를 꾹꾹 누르며 유언을 남겼다. 나중에 프랑스에 도착해서 보니 기존에 30개였던 메모의 수가 두 배로 늘어 있었다. 그 중 가장 첫 번째로 쓴 유언에는 그래도 내 티셔츠 버리지 마. 라고 적혀 있었다.
공항에는 연락을 받고 마중 나온 민주 언니가 서 있었다. 민주 언니는 새까만 하드보드지에 노란색 굴림체로 ‘기다렸어 수연아’라고 적은 것을 들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민주 언니는 벅찬 표정을 지으며 팔을 크게 허우적거렸다. 그 노란색을 보는 순간 왈칵 눈물이 터져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인천에서 그랬듯 파리에서도 사람들은 나를 스쳐지났다. 그러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떠나기 전날, 나는 엄마와 대판 싸웠다. 엄마가 내 옷을 함부로 버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옷은 빨아도 역겨운 냄새가 났다. 몇 번을 빨았는데도 냄새가 올라왔다. 엄마는 내 옷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잘 말려두면 냄새가 없어질까 볕 드는 거실 한켠에 몇 번 걸어두었는데, 엄마는 매번 그 곁을 지날 때마다 과장되게 코를 킁, 하고는 으! 하고 고개를 도리질 쳤다. 버리지, 좀. 비싼 것도 아니고 목 늘어난 건데. 그걸 왜 갖고 있어. 엄마는 투덜거렸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음식을 먹다가도. 진절머리가 났다.
결국 고구마를 먹다 말고 나는 껍질을 그릇 안으로 패대기 치며 말했다.
나 그 옷 안 버려.
목 늘어난 티잖아.
무슨 상관이야.
냄새도 나잖아.
안 나.
나잖아. 나니까 너 안 입는 거잖아.
입어!
마지막 한 입 남아있던 고구마를 입에 쏙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이 막혀왔다. 엄마 들으라는 듯 고등학생 때처럼 문을 쾅 닫고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고 옷걸이에 소중하게 걸어둔 구린 냄새가 나는 티셔츠를 집어들었다. 억지로 꿀꺽 삼킨 고구마가 가슴 언저리에 얹힌 것 같아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내리치고는 티셔츠를 입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문을 열고 나갔다. 봐! 나 입잖아! 그 말을 하려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나온 것은,
부욱.
하는 방구 소리였다.
엄마는 뭐야, 눈을 치켜뜨고 못마땅하게 나를 보다가 방구 소리에 뒤로 구르며 웃었다. 수치스러웠다. 이 집에서는 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이 옷이 내게 왜 중요한지, 왜 버려선 안 되는 옷인지 가장 가까운 가족인 엄마조차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아이고, 아이고 하며 웃었지만 나는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엎어져서 울었다. 한참 울고 배가 고파 새벽에 또 고구마를 까먹으며 민주 언니를 보러 가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출국도 입국도 고집스럽게 그 옷을 입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레오가 독특한 냄새가 난다고 말한 건 당연한 말이었다. 오히려 굉장히 젠틀하게 에둘러서 표현한 말이었던 거다.
그 티셔츠를 입고 자면 그날의 꿈을 꾼다. 아마도 그 지독한 냄새 탓이 아닐까? 민주 언니가 말했다. 냄새가 워낙 짙게 배어 있다 보니 자면서 자꾸 맡고, 냄새에 각인된 기억을 뇌가 자연스럽게 불러와서 꿈이라는 영사기로 보여주는 거지. 나는 일리 있는 생각이라고, 동의한다 말했다.
새끼 고양이의 속에서 나온 것이 이렇게 진하고 독한 냄새를 남길 줄은 나도 몰랐다. 그때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 옷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든 말든, 나는 내 품 안에 안긴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달려갔다. 마음이 조급한 나머지 신고 나온 슬리퍼의 한 짝이 어디선가 벗겨졌다.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내 급한 마음과 달리 단 한 대도 멈추지 않았다. 당연하겠지. 목 늘어난 티셔츠에 새끼 고양이의 토사물을 잔뜩 묻히고 츄리닝 바지를 입은 여자. 게다가 슬리퍼는 또 한 짝만 신고 있다.
종종 걸음으로 제자리를 돌면서 어플로 호출을 불렀다. 새끼 고양이가 아파요. 요금을 더 드릴게요. 하지만 내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발, 거기 아무도 없나요? 돌아오지 않았다. 택시 여러 대가 내 앞을 스치고 지났지만, 멈추는 택시는 하나도 없었다. 신호등에 걸려 멈춘 한 택시는 창문을 내리고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고양이가 아파요. 제발 태워주세요.
아이고, 그래요?
아저씨.
신호가 바뀌고 택시는 출발해버렸다. 창이 닫히기 전 아저씨가 힘내요! 하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내게 필요한 건 아저씨의 응원이 아니라 아저씨의 차였어요. 아저씨의 차를 타고 내 고양이를 구해주는 거라고요! 꿈 속에서야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날엔 그러지 못했다. 길 잃은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민주 언니는 종종 레오가 쓴 연애편지를 읽어주었다. 언니의 편지 속 레오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남자였다. 마카롱이 왜 그렇게 단 줄 알겠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말하자 민주 언니는 속으로는 좋으면서 아닌 척 내 어깨를 고양이처럼 툭툭 건드렸다.
민주, 나는 우리도 언젠가는 헤어질 거라 생각하면 견딜 수 없어요. 그 이유가 죽음이든, 무엇이든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아아. 나는 우리가 이별을 위해 사랑한 건 아니었나, 하는 슬픈 생각마저 드는 겁니다.
민주 언니는 프랑스어로 한 번, 한국어로 한 번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의 고백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언니는 편지마다 다른 톤으로 읽었다. 사랑을 말하는 목소리는 하나인데 그를 표현하는 감정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 언니의 낭독을 다 듣고 나면 보송보송한 솜털이 달린 귀이개로 귀를 간지럽힌 것 같은 기분에 어깨를 움츠렸다가 털었다. 민주 언니가 열정적으로 편지를 읽고, 마라톤을 뛰고 온 사람처럼 땀을 흘리며 물을 마시면 나는 박수를 쳐주었다. 정말 행복해 보여, 언니. 내가 말하면 언니는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그러면 우리의 작은 연극이 완성된다. 어디에도 상연되지 못하지만, 그걸로 충분한 연극이다.
나와 민주 언니는 떨어져 지낸 세월이 무색하게 어색한 줄 모르고 지냈다. 다짜고짜 연락을 하긴 했지만, 그동안도 연락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실제로 얼굴을 보고 대하는 건 다를 거란 생각에 연락하고 나서도 후회했다. 그러나 민주 언니는 나를 위해 레오와 함께 사는 집의 작은 방도 비워주었다. 잠시 머물더라도 편하게 머물고 갔으면 좋겠다는 민주 언니에게 나는 너무 큰 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에 돌을 얹어놓은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민주 언니는 내 등짝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아기 방으로 비워둔 방이라 힘들지도 않았어. 얼굴 펴.
갑자기 등짝을 맞아 깜짝 놀라 내가 악! 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예방접종 같은 거였다. 언니에게 등짝을 맞은 후, 나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민주 언니와 나는 차를 몰고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레오를 두고 둘이서만 다녀도 되는 건지, 내가 불편한 것과는 별개로 언니의 남편인 레오도 함께 초대했어야 하는 게 아닌지 마음이 불편했다. 직접 민주 언니에게 물어본 적도 있다. 레오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일이었겠지만, 나는 프랑스어를 몰랐다. 무엇보다 나는 처음 레오가 내게 독특한 향이 난다고 말한 것을 잊을 수 없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다가가면 그가 예의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찡긋거리고, 코 밑을 검지로 벅벅 긁어댈 것 같았다. 민주 언니는 레오도 그만큼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프랑스인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게 무슨 말이래.
뭐, 한국인은 모르는 그런 게 있어.
뭐? 언니 진짜 프랑스인 다 됐네. 건방지게.
언니한테 건방져? 말 다 했지? 쬐끄만 게.
인터넷으로 프랑스의 결혼 문화, 프랑스인 남자 따위를 검색해봤다. 개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확인하고 싶었다. ‘프랑스인’이란 무엇일까? 한강이 아닌 세느강 물로 손을 씻으면 좀 달라지는, 그런 게 있었던가.
영 찝찝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지만 레오는 나와 민주 언니가 둘이서만 잦은 외출을 즐기는 게 못마땅해 보이지 않았다. 사실 레오는 무색무취나 마찬가지였다. 레오는 몹시 조용했다. 나와는 말이 통하지 않아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언니와는 사실 수다를 많이 떠는 백인 남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는 집 안의 가구와 구분이 가지 않아 내가 모르고 스쳐지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민주 언니가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 잠시 식당에서 레오와 둘이 남은 적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프랑스어는 봉주르, 주뗌므. 딱 두 개뿐이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방금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 내내 옆에 있었으면서 새삼스럽게 안녕이라 인사하는 것 이상했다. 친한 언니의 남편에게 장난으로라도 사랑한다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영어로 말을 할까 싶다가도 프랑스인들은 영어 쓰는 외국인을 안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들은 모국어에 대한 자긍심이 깊어 영어로 말하면 알아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민하던 나는 핸드폰의 번역기를 돌려 레오에게 말했다. 최대한 칭찬처럼 말하려면 무슨 말이 좋을까 하는 치열한 고민 끝에,
레오는 조용하네요. 꼭 고양이 같아요.
고양이란 말에 레오의 눈이 빛났다. 관심을 끄는 것은 성공했으니 이야기를 더 이끌어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조용하잖아요, 라고 짧게 적어서 번역기를 돌렸다.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따로 무슨 말을 하지도, 제스처를 취하지도 않았지만 불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레오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나에게 뭔가를 불가피하게 전달해야 할 때는 몸짓을 사용했다. 불필요한 말 없이 거리를 유지하며 건네오는 그 몸짓들이 나는 편안했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민주 언니와 레오는 몇 마디를 주고 받았다. 그러자 언니가 의자 뒤로 바짝 기대며 머리를 젖히고 웃었다. 어찌나 크게 웃던지, 입을 가리고 웃는데도 내가 다 주변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 테이블을 주목하지 않았다. 지나던 웨이터가 흘끔 보았을까. 그마저도 사실 내가 그를 봤기 때문에 시선을 느껴서 돌아본 것 같다.
민주 언니와 레오가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민주 언니가 웃는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언니는 다 웃은 뒤에는 감정을 추스리고 내게 레오가 한 말을 그대로 번역해주었다. 나는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언어보다 중요한 감각들이 있다. 그 순간 우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감각하는 것. 나는 대화에는 동참하지 못했으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다. 의도된 소외도 아니었을 뿐더러, 나는 반드시 그 불완전한 삼각형의 세계 속에 초대받을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민주 언니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프랑스로 여행지를 결정했다. 영어도 잘 못하고, 불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빵이 맛있다는 이유로 프랑스로 떠나겠다 결심한 민주 언니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곳에서 다 해결하겠다고 결심했다. 뭘? 내가 되물으면 민주 언니는 그걸 알려달라고 하면 어떡해! 하고 큰 소리로 타박했다. 혼자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놀던 레오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민주 언니는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검지 손가락을 입술로 갖다대고 말했다.
이런 건 스스로 생각해야 해.
나처럼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어.
따라 목소리를 낮추며 언니에게 말했다. 이쯤 되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해져서 레오가 올 법도 한데, 레오는 끼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텔레비전 화면만 바라볼 뿐이다. 그는 처음부터 그랬다. 모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양인 여자들 사이에 끼어들기를 거부했다. 나는 그가 우리를 배려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고 구태여 그를 대화에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텔레비전을 보는 레오의 등을 보는 게 좋아서였을 수도 있겠다. 레오를 이성으로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으로 좋아한 것도 아니다. 나는 레오의 고양이 같은 면이 좋았다.
내가 구조했던 새끼 고양이도 텔레비전을 보는 걸 좋아했다. 내가 껴안으면 평소에는 싫다고 발버둥을 치고 난리를 피우다가도, 어린 아이에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틀어준 것처럼 텔레비전을 틀어주면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그러면 나는 그 사이에 털이 덜 날리도록 조심스럽게 새끼 고양이를 빗질해주었다. 꽃가루처럼 몽실몽실 떠다니는 털 때문에 나는 중간중간 기침을 했다. 그때마다 새끼 고양이는 조용히 좀 해요, 라고 말하듯 발을 허우적거렸다.
모두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렇지?
자막에 속보로 뜬 뉴스를 읽고 내가 말한다. 새끼 고양이는 알아듣는 것처럼 야옹. 하고 운다. 나는 새끼 고양이를 들어 촉촉한 그 코끝에 내 코를 갖다댄다. 계속 꽃가루와 씨름하고 있던 터라 코가 예민했던 걸까. 나는 그만 고양이를 앞에 두고 에취! 크게 기침한다. 순간 눈을 꽉 감았다가 뜨면 나는 초라한 모습으로 까만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아침에 분유를 먹을 때만 해도 건강하던 나의 새끼 고양이는 갑자기 구토한다. 나는 모든 게 엉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래서 말이야, 마롱 크림은.
맞아, 마롱 크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마롱 크림은 밤으로 만든 잼 같은, 스프레드인데 튜브에 넣어서 만든 걸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가 제기한 의문 때문이었다. 마망잼은 떠먹으라고 만들어두었는데, 왜 마롱 크림은 굳이 치약 튜브에 넣어 만든 걸까.
밤으로 만든 거잖아.
그렇죠.
밤은 깔 때 무진장 번거롭고?
그렇죠.
그래서 한국에서는 게 같다고도 하잖아.
개 같다고요?
민주 언니가 웃었다.
아니, 갑각류! 껍질 까는 데 힘들잖아.
그건 껍질 아니고 껍데기 아니에요?
벗기는 건 똑같지.
밤만 벗기나?
아침에도 벗기지.
텔레비전을 보던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기지개를 한 번 쭉 펴더니 턱을 매만졌다. 나는 그가 매만진 턱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깎지 않은 수염이 푸르게 돋아나 있었다. 까슬까슬한 레오의 턱. 이제 곧 위잉 소리가 날 것이다. 레오는 그 털들을 모두 밀어버리겠지. 아주 손 쉽게. 나는 언니를 곁눈질하며 장난스레 말했다.
부끄러운 줄도 몰라.
민주 언니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마롱 크림을 빵에 짜서 입에 넣었다. 그건 너겠지. 농담이라는 걸 아는데도 가슴이 묵직해져서 순간 숨을 멈췄다.
셋이서 도시락을 싸서 벨르빌르 공원으로 놀러 갔다. 민주 언니는 도시락으로 샌드위치, 와플, 샐러드, 과일, 그리고 충무김밥을 쌌다. 한국에서 친정 엄마가 보내준 오징어무침과 무김치를 예쁘게 넣고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4단 도시락은 겉으로 봐서는 누구도 그 안에 충무김밥이 숨어 있다고는 예상 못할, 굉장히 이국적인 디자인이었다. 도시락은 레오가 들었다. 레오는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나는 레오가 냄새에 예민하다던 민주 언니의 말을 떠올렸다. 서양인들은 김치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눈치를 살피자 민주 언니는 괜찮다고 했다.
집에서 차려주면 잘 먹어.
민주 언니는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먹으라고 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서 우리는 도시락을 먹었다. 레오는 몇 입 먹더니 둘이 먹는 동안 잠시 걷다 오겠다며 자리를 아예 피해버렸다. 민주 언니와 나는 젓가락으로 충무김밥을 맛있게 먹으며, 어디선가 들려오는 우아한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다. 언니는 벨르빌르 공원은 자주 공연을 한다고 했다.
프랑스인들이 원체 그런 걸 좋아해, 예술.
나는 프랑스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빵이 맛있고, 세느강이 있고, 에펠탑이 있다 정도만 알았다. 나머지는 소매치기를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고, 프랑스인들은 인종차별이 심해서 영어를 쓰면 받아주지 않는다는 하등 쓸모없고 괜히 신경쓰이기만 하는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언니의 말이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나는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일 년 뒤에 생각난 걸 보면 말이다.
추운 초겨울, 바타클랑 극장 앞에 자신의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를 끌고 400마일이나 떨어진 독일에서부터 찾아온 한 피아니스트를 안다. 나는 그를 직접 보지 못했다. 다만, 영상을 통해서 보았다. 그는 바타클랑 극장을 찾았던 수많은 취재진과 사람들 가운데에서 존 레논의 <imagine>을 연주했다. 그 노래는 내가 학생 시절 가장 좋아했고 자주 들었던 노래였다. 피아노 선율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에이브릴 라빈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가사를 들을 수 있었다. 상상해보세요. 하지만 이봐요, 존. 상상은 괴로운 거예요. 나는 선율을 들으며 그가 제안한 상상을 모두 비껴나가는 상상만 한다. 종교 없는 세상, 국경 없는 세상, 지옥도 천국도 없는 세상. 그 대신 내가 걷는 길, 내가 타는 차, 내가 이용하는 공공시설이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는 상상.
그는 왜 먼 독일에서부터 프랑스까지 피아노를 가져왔을까. 그는 의무라고 말했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실천으로 옮겼다. 나는 그 영상이 공개되고 자주 찾아보았다. 보다 보면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분명 장갑을 꼈는데도 긴장 탓에 손이 차갑다. 어그부츠를 신은 발은 이미 발끝에 감각이 없다. 루돌프 부럽지 않은 빨간 코를 하고 의자에 앉는 남자를 서글픈 눈으로 바라본다. 그가 연주를 시작한다. 벨르빌르 공원에서 엊그제만 해도 이 노래를 같이 들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저린다. 나는 프랑스인이 되어서 먼 타국에서부터 위로의 마음을 전하러 수고롭게 와준 독일인에게 박수를 친다. 감히 박수를 쳐서도 안 될 것 같은 연주였다.
많은 나라가 비극에 공감하고 안타까워 한다.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움직임을 박해하거나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또 나는 화가 난다. 당연한 일이 왜 자꾸 내게 당연하지 않은 거지?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나에게만 당연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간 후, 민주 언니와 한동안 활발하게 메일을 주고 받았다. 스카이프로 서로 얼굴을 보고 통화하기도 했다. 어쩔 때는 옆에 레오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듯 민주 언니와 나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가끔 가다 문자를 주고 받는 사이로 돌아왔다. 민주 언니는 내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임신했다. 나는 진심을 담아 축하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보러 프랑스에 다시 한 번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때는 선물도 들고 갈게.
그래, 너무 무리하지는 마.
민주 언니의 문자는 담백했다. 갑자기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낯설어서 문자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언니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국제전화를 걸고, 스카이프를 하자고 남겼지만 언니는 지금 좀 바빠서, 상황이 정리되면 연락하겠단 말을 남기고 연락이 끊어졌다.
새끼 고양이는 내가 자주 가는 슈퍼 앞에 버려져 있었다. 박스에 담겨진 새끼 고양이는 흠 없이 건강하고 예뻐 보였다. 비가 많이 오고 있었고, 고양이가 들어간 상자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흐물거렸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무엇보다 고양이가 너무 가엾게 몸을 떨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생명을 눈 앞에서 죽으라고 버려둘 수는 없었다. 나는 고양이를 안아들고 대책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무슨 고양이를 데리고 왔느냐며 깜짝 놀랐지만 당장 고양이를 내쫓으라고 하진 않았다.
나는 그 전까지 동물을 길러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뼈가 단단한 강아지나 조금 만져본 적이 있을 뿐이지, 유연하고 틈만 나면 액체처럼 늘어지는 고양이는 안아본 적도 없었다. 그것도 아주 작은 새끼. 나는 우선 고양이가 춥지 않게 담요를 둘러주고 털을 말려주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병원을 찾고 택시를 잡았다. 고양이가 보이지 않게 담요로 꽁꽁 두르고 탔다. 가서 이동장이라도 사야 하는 걸까. 그러면 그때부터 나는 이 아이를 키우게 되는 걸까.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은 없었다. 나에게는 무언가를 책임질 능력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몇몇 직장을 전전하며 돌아다니다가 결국 지금은 변변찮은 스펙도 없이, 어중간한 경력으로 사회에서 튕겨나와 실업급여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는 중이었다. 임시보호, 임시보호를 해야지. 다른 좋은 가정으로 보내기 전까지 너는 잠깐만 우리 집에 있는 거야. 이름은 지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동물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카운터의 직원이 내게 내민 것은 아이의 이름과 보호자의 이름이었다. 나는 적당한 아무 이름이나 적어서 냈다. 레오. 아이의 푸른 눈과 하얀 털이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늠름한 사자 캐릭터를 닮았다. 좀 더 그럴싸한 이유를 대자면 나는 이 새끼 고양이 레오가 건강하기를 바랬다. 그랬던 것 같다.
동물병원의 병원비는 내가 언젠가 손을 베는 바람에 응급실에 갔을 때보다 3배는 더 비싸게 나왔다. 그때는 실비보험이라도 되었다지만 이 작은 새끼 고양이는 보험도 없었다. 순식간에 실업급여의 60%를 잃은 나는 레오의 몸에 다른 이상은 없으나, 눈이 아무래도 안 보이는 고양이라 버려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의사는 간단하게 고양이를 돌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복잡했다. 레오는 젖을 참 자주 먹었다. 세네 시간 간격으로 젖을 먹여야 해서 새벽에도 일어났다. 물 마시러 나왔다가 레오에게 젖병을 물리는 나를 보고 엄마는 참 지극정성이라고 했다. 분유는 그때그때 깨끗하게 씻어둔 분유병에 새로 분유를 타서 줘야 했다. 미리 만들어놓으면 안 된다고 했다. 피곤에 찌든 내가 밤에 미리 해두려고 하자 엄마가 말렸다.
사람이네, 사람.
고생스러웠다. 민주 언니도 아이를 낳으면 이렇게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낼까. 아이를 키워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드라마에서도 했고, 우리 조부모도 나에게 그랬다. 넌 아직 모를 거다, 죽어도 모를 거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레오를 돌보는 동안 나는 간접적으로 육아를 경험했다. 아기는 손이 많이 가는구나. 그래도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고, 독립심이 강하다고 하니 어느 정도 키운 후에는 괜찮지 않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건 또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 정성을 많이 들인 만큼 사랑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입양 보내지 말고 그냥 우리가 키울까? 콩나물 대가리를 따는 엄마 옆에서 레오를 쓰다듬으며 슬쩍 물었다. 마지막까지 레오를 책임지고 싶었다. 레오가 자라서 성묘가 될 때까지,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다시 프랑스에 방문했을 때, 나는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보다 덜 어수룩하게 택시를 잡아 타고 지도의 주소를 보이며 이곳으로 가달라고 영어로 정확하게 요구했다. 기사는 불어로 무어라 말하고는 차를 출발했다. 나는 그가 가는 방향을 구글 맵으로 체크하고 맞게 가고 있음을 확인한 뒤 창 밖을 보았다. 한국에서도 성당은 가본 적 없었다. 그런 내가 설마하니 프랑스의 성당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레오와 민주 언니는 마중을 못 가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의례적인 말이었다. 레오와 민주 언니가 오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레오와 민주 언니가 주인공인데, 멋대로 자리를 빠져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인공은 그들의 아기지만.
미리 민주 언니에게서 날씨가 흐리다는 얘기를 들은 덕에 나는 미리 우산을 준비해갔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성당 앞에 서서 우중충한 건물 외관을 어색하게 바라보았다. 이국적인 풍경이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우산을 접고 안으로 들어섰다.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연다고 신경 썼는데도 몇몇 사람들이 나를 돌아보았다. 식은 진행 중이었다. 나는 우산을 놓을 곳을 찾지 못해 손에 쥐고 앉을 자리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맨 뒷자리를 비롯해 적당한 자리는 다 차 있었다. 중간중간 빈 자리도 눈에 들어왔지만, 그런 자리는 정말 “중간” 자리여서 들어가려면 양해를 구해야 했다. 나는 결국 밀리고 밀려서 세 번째 줄까지 갔다. 대각선 방향에 레오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성당 내부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비 때문인지 침울하게 느껴졌다. 간간히 훌쩍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레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단상 앞으로 나간다. 준비해온 봉투를 품에서 꺼내 곱게 접어두었던 종이를 펼쳐 단상 위에 올린다. 레오는 여전히 말보다 몸짓으로 많은 것을 말한다. 깊고 푸른 눈동자가 성당 안에 모인 가여운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레오의 목소리를 이토록 명징하게 들어본 적 있던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마이크에 대고 레오는 말한다.
나는 레오의 불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소외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레오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레오는 연극 무대에 선 배우처럼 방백을 하고 있다. 분명히 레오는 말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듣지 못한다. 공감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오롯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가 함께 있음을,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어딘가에서 민주 언니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레오가 사랑해, 라고 말했어. 내게 전달해주는 그녀의 목소리를.
프랑스에서 총기 난사 참사가 일어났을 때 비틀즈의 이매진을 치는 사람을 보며 애도를 생각하는 곳에서부터 소설은 시작되었습니다.
부득이하게 소설을 올리는 업로드하는 시점에도 참사가 발생하여 몹시 마음이 아픕니다.
잊지 않고 애도하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