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했지만 엄마가 죽어서 기뻐

제넷 맥커디,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

by 지지


줄거리


아역배우 출신 제넷 맥커디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작성한 에세이로, 원치 않게 연기를 시작하고 엄마로부터 칼로리 제한법이라는 이름으로 거식증을 강요당했음을 폭로하는 내용이다.


감상


읽으면서 많이 고통스러웠다. 나에게 있어서 어린 아이가 방송에 출연하는 일은 늘 고통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어린아이들은 전적으로 자신의 보호자를 믿고, 그들에게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에 어른과 같은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설령 그 당시에 방송에 나가고 싶다거나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해서 시간이 흘러 독립적인 어른이 되어서 봤을 때 그때의 결정을 용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는 아이를 미디어로부터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에 독일은 지정된 나이 이하의 아이들이 방송에 노출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관련된 비평을 작성하여 공모전에 투고한 적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이들의 방송 출연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연히 요즘 방송되고 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 또는 <금쪽 같은 내 새끼>의 이야기도 하게 된다. 최근에 육아유튜버가 아이에게 함부로 접촉하지 말아달라는 공지를 올린 것도 생각난다. 사실 내 생각은 그 전에 아이를 좀 더 보호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화자가 자신의 연기생활의 시작이었던 <아이칼리>의 리부트를 거절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로 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또한 어린 시절 극본을 쓰고 어머니에게 보였으나 좌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시 글을 써서 세상에 자신의 내면을 털어놓은 것에도 박수를 보낸다.



인상 깊었던 구절


“아,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한테 뭔가를 바랄 때부터 교회를 나갔던 거네요?”


“그러니까 우리가 고용한 계집애가 지시를 잘 따르지 않더라고요. 슬픈 표정을 지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자꾸 배시시 웃고요. 하지만 당신 딸은 그러지 않았어요. 무지하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더라고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엔 에밀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에밀리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기분이 처음이라 겁이 났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이런 감정적 트라우마를 강요하는 내 마음에 저항하고 있었다.


우리는 왜 죽은 사람들을 미화할까? 그들에 대해서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까? 특히나 엄마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낭만적으로 미화할까?


엄마의 죽음은 내게 대답보다 질문을, 치유보다 고통을 더 많이 남겼다. 그리고 켜켜이 쌓인 슬픔을 안겼다.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원초적 슬픔, 나를 학대하고 착취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슬픔, 그런데도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데서 오는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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