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자가 힘들었던 시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대기를 통해 역경을 극복하려는 시도와 깨달음을 담은 인문교양에세이
솔직하게 말해서, 글을 읽는 동안 많이 힘들었다. 어떤 책이든 빠르게 속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늘 내게는 내재되어 있었는데 이 책만큼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나는 화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했고, 그가 그렇게 열정적이고 대단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끈기 있게 화자를 따라 책을 읽은 끝에, 화자가 그토록 롤모델로 삼고 시련을 넘어가는 데에 참고하고 싶었던 인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완벽한 인물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을 때 쾌감을 느꼈다. (화자는 물론 고통스럽고 곤혹스러웠겠지만.)
그리고 화자가 어떻게 이 역경을 넘을지 궁금했다. 큰 시간을 할애하여 탐구한 인물이 사실은 우생학의 아버지나 다름 없는 이였다는 사실을,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는지를 알고 이제 화자가 취할 태도가 궁금했다.마침내 화자가 알아낸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너무나 평온하게 생을 마감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 그가 모든 생애를 바쳐 연구한 물고기,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연에 선을 긋는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우주를 탐구하면 탐구할수록 우리는 “중요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장애인이자 질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내게 있어서 화자가 깨달은 바는 내게 몹시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종의 기원》을 작성한 다윈도 다양성을 강조했다는 점을 다시금 알게 되어 반가웠다.
그의 요지는 단순하다. 인간의 정신이 세상을 조각해내는 일을 늘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라는 것, 우리가 만물에 붙인 이름들은 잘못된 것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노예”는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자유를 누릴 가치도 없는 존재였던가? “마녀”는 화형을 당하는 게 마땅한 존재들이었던가? 그가 의자를 예로 든 의도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겸손을 유지하라는 것, 우리가 믿는 거들, 우리 삶 속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늘 신중해야 한다는 걸 되새겨보게 해주는 사례인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그 생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화형을 당하기 전 브루노는 이렇게 일갈했다고 한다. “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학문이다. 아무런 노동이나 수고 없이도 습득할 수 있으며, 정신에 우울함이 스며들지 못하게 해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견의 핵심은 《종의 기원》에 있었다. 어째선지 데이비드와 프랜시스 골턴은 둘 다 그 결정적인 사실을 흘려버렸다. 한 종을 강력하게 만들고, 그 종이 미래까지 지속하게 해주며, 혼돈이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기온 급변, 경쟁자, 약탈자, 해충의 침략 등 가장 강력한 형태의 타격을 가해올 때도 그 종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다윈은 무엇을 꼽았을까? 바로 변이다. 행동과 신체의 특징에 변화를 일으키는, 유전자에 생긴 변이 말이다.
동질성은 사형선고와 같다. 한 종에서 돌연변이와 특이한 존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그 종이 자연의 힘에 취약하게 노출되도록 만들어 위험을 초래한다. 다윈은 《종의 기원》의 거의 모든 장에서 “변이”의 힘을 칭송한다. 그는 다양성이 있는 유전자 풀이 얼마나 건강하고 강력한지, 서로 다른 유형 개체 간의 이종교배가 그 자손에게 얼마나 큰 “활력과 번실력”을 만들어주는지, 심지어 완벽하게 자기 복제할 수 있는 벌레들과 식물들까지도 새로운 변이형을 만들어낼 수 있게끔 유성생식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이 사실들은 정말 이상하구나!”하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따금이라도 서로 다른 개체와 교배하는 것이 유리하거나 필수 불가결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사실은 아주 간단히 설명된다!
이를 달리 표현하자면 “당신의 유전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라”가 될 것이다. 상황이 바뀌면 그 상황에 어떤 특징이 더 유용하게 적용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다윈은 간섭하지 말라고 특별히 강력하게 경고한다. 그가 보기에 위험한 것은 인간의 눈에서 비롯된 오류 가능성,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이다. “적합성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서는 불쾌하게” 보일 수 있는 특징들이 사실 종 전체나 생태계에는 이로울 수도 있고, 혹은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 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초략) 이것이 바로 다윈이 예언했던 그런 상황이다. 그가 지구의 수많은 생명들의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그토록 뚜렷이 경고한 이유는 “어느 무리가 승리하게 될지 인간은 결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약초 채집가에게 민들레는 약재이고 간을 해독하고 피부를 깨끗하게 하며 눈을 건강하게 하는 해법이다. 화가에게 민들레는 염료이며, 히피에게는 화관,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주는 존재다. 나비에게는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벌에게는 짝짓기를 하는 침대이고, 개미에게는 광활한 후각의 아틀라스에서 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간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의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철학자 트렌턴 메릭스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는 그의 화살통 속 화살의 수만 하나 늘어났을 뿐이다. “내겐 그리 충격적이지 않네요.” 내가 어류의 범주가 해체된 일에 관해 숨 가쁘게 설명하고 나자 그가 한 말이다. 그것은 정확히 그가 자기 학생들에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자연에 이름 붙이기》
《그 물을 건너다》
《살아야 할 이유》